가을에 느끼는 고요

외로움은 인간을 약하게 만들지 않는다

by 현월안




낙엽은 지고, 바람은 제 그림자를 길게 늘어뜨린다. 은행나무의 잎새가 반쯤 남은 가지 끝에서 금빛으로 떨고 있을 때, 계절의 숨결 속에서 묘한 쓸쓸함을 감지한다. 구르몽의 시처럼, '낙엽은 버려진 채 땅 위에 흩어져 있고, 발끝에 스치는 순간 영혼처럼 운다'라고. 그 울음은 어떤 슬픔의 언어이고, 사라짐의 미학처럼 느껴진다. 가을은 언제나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만든다. 모두가 시인이 되는 계절, 어쩌면 외로움이 내 안의 가장 투명한 감각을 깨우기 때문일 것이다.



한강 작가의 수상 소감을 들었을 때, 고요한 파문을 느꼈다. 그는 술을 마시지 않고, 카페인을 멀리하고, 좋아하던 여행도 하지 않는다고. 대신 한강은 걷기를 좋아하고, 책장을 좋아하며, 가족과 친구들의 웃음을 사랑한다고 했다. 그 말속에는 삶의 중심을 밖이 아니라 안으로 돌린 사람만이 지닐 수 있는 평온의 온기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세상은 여전히 요란하지만, 그 속에서도 조용히 숨 쉬는 사람들 자신만의 고요를 지키는 사람이다.



어쩌면 진정한 용기는 세상의 속도가 아니라, 그 속에서 멈출 줄 아는 능력이 아닐까 한다. 떠들썩한 삶 속에 있더라도, 문득 찾아오는 침묵의 순간을 난 사랑 한다. 사람들로 둘러싸인 공간에서도, 불현듯 한줄기 고요가 마음을 파고들 때가 있다. 그 고요는 때로 두려움처럼, 때로 위로처럼 다가온다. 좁은 공간에 있을 때, 세상이 멀어지며 나 자신이 또렷해지는 순간이 있다. 그때 비로소 알게 된다. 고요는 외로움이 아니라 충만의 다른 이름임을.



세상은 누구보다 빠르게, 끊임없이 연결되라고 요구한다. 손바닥 안의 화면은 쉼 없이 타인의 일상을 흘려보내고, 그 흐름에 휩쓸리며 뒤처지는 듯한 불안에 시달린다. 그 무한한 연결 속에서 가장 깊게 느끼는 감정은 역설적으로 단절과 상실이다. 모두와 닿아 있으나, 누구에게도 닿지 못한 듯한 공허. 그것이 외로움이다.



때론 외로움은 부정의 감정으로 여겨지곤 했다. 홀로 있는 사람은 어딘가 이상하다고, 무언가 부족하다고 말하는 시대가 있었다. 생각해 보면, 모든 위대한 사유와 예술은 외로움 속에서 피어난다. 외로움은 인간이 자신에게 귀 기울이는 첫 번째 통로이고, 세상과 다시 연결되기 위한 준비의 시간이다.


한강 작가가 말한 '고요'는 바로 그런 외로움의 또 다른 이름 같다. 외로움을 견디는 사람은 자신과 화해한 사람이다. 세상의 속도가 아니라 자신의 리듬에 맞추어 걷는 사람, 타인의 시선이 아닌 내면의 온도에 맞추어 사는 사람. 그런 사람은 평온이라는 이름의 결을 품게 된다.



외로움은 인간을 약하게 만들지 않는다. 오히려 사랑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이다. 홀로 서는 법을 배운 사람만이 타인에게 온전히 다가갈 수 있으니까. 혼자 있을 때의 나를 사랑할 줄 모른다면, 누구의 손을 잡아도 결국 그 손을 놓치게 된다. 사랑은 각자의 고요가 만나 조용히 공명하는 일이다.



가을의 빛은 서늘하지만 따뜻하다. 은행잎은 떨어지면서도 금빛을 잃지 않는다. 어쩌면 외로움이 인간을 고운 사람으로 빚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쇠락의 계절을 통과하면서 사라짐의 아름다움을 배우고, 덧없음 속에서도 지속되는 마음의 온기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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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그리 요란할 필요가 없다. 햇살이 머문 창가, 책장에 기대 선 듯한 한 권의 시집, 누군가의 조용한 웃음소리. 그것이면 충분하다. 대부분 거대한 사건이 아니라, 아주 작은 순간들 속에서 진짜 행복을 발견한다. 외로움이 깊을수록, 그 행복은 더욱 또렷한 빛으로 다가온다. 낙엽이 떨어지고, 봄의 씨앗을 품은 채 흙으로 돌아간다.


외로움 또한 다음 생의 희망을 품게 하는 과정이다. 그러니 외로움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그것은 다시 사랑하기 위한 예비의 시간이다. 가을바람에 부드럽게 나뭇가지를 흔들린다. 은행잎 하나가 내 발치에 내려앉는다. 그 빛은 쓸쓸하지만, 이상할 만큼 따뜻하다. 그 순간, 아주 조용히 미소 짓는다. 고요 속에서도 삶은 여전히 사랑스럽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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