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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어가는 아름다움

나도 이제는 엄마의 그때를 닮아간다

by 현월안




호박은 언제나 억울하다. 겉껍질의 울퉁불퉁함 때문에, 사람들은 그것을 미운 것으로 비유를 한다.
못생겼다는 말 한마디가 호박의 모든 생을 덮어버린다. 그러나 호박은 묵묵히, 제 시간을 견딘다. 호박꽃은 해가 뜨면 입을 활짝 벌려 노랗게 웃고, 해가 지면 조용히 입을 다문다. 밤이슬을 맞으며 홀로 견디는 그 침묵 속에, 생의 진실이 깃들어 있다.



어릴 적 친정집 담장 아래에서 자라던 호박넝쿨 앞에 의자를 두고 앉아 관찰했던 기억이 있다. 호박꽃은 화려하지 않다. 들꽃처럼 수줍고, 흔히 말하는 예쁨과는 거리가 있다. 그러나 그 노란 꽃은 햇살을 품은 듯 따스했고, 내 안의 고요와 닮아 있다. 사람들의 눈길에 닿지 않아도, 그 나름의 자리에서 온전히 피어나는 모습이 좋았다. 아름다움이란, 누가 알아봐 주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빛을 잃지 않는 일이다.



애호박이던 시절, 호박은 은밀히 자란다.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담장 밑, 풀잎 사이에서 조용히 숨을 불어넣는다. 여름의 뜨거운 햇살 아래서도, 장마의 억센 비를 맞으면서도 꿋꿋이 버텨낸다. 그리고 계절이 바뀌고, 가을 끝지락 찬 서리가 내릴 때쯤, 사람들은 그제야 늙은 호박의 무게를 발견한다. 무심히 지나쳤던 담장 끝에, 묵직하게 매달린 한 덩이의 황금빛 존재. 그제야 사람들은 말한다. 보물 같다고.



인생도 그렇다. 푸르던 시절에는 누구나 애호박이 된다. 빛나고 부드럽고, 쉽게 사랑받는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세월은 사람을 조금씩 무겁고 둥글게, 또 단단하게 만든다. 그 과정을 견디지 못하는 이는 방황을 하고 고민을 한다. 하지만 묵묵히 버티는 이는 마침내 단맛을 품는다. 그 단맛은 세월의 맛, 견딤의 맛, 사랑의 맛이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은 호박을 그림 소재에 많이 쓰고 그린다. 화폭 위에는 언제나 늙은 호박을 소재로 그린다. 빛바랜 껍질의 주름마다, 삶이 그려져 있다. 그 속에 녹아든 햇살과 비바람, 된서리의 흔적들을 붓끝으로 따라가며 그려 낸다. 그 주름은 늙음의 흔적이고, 생의 경전이다.



사람들은 종종 외모로, 겉모습으로 세상을 판단한다. 화려한 이는 쉽게 주목받고, 조용한 이는 곧잘 잊힌다.
하지만 늙은 호박처럼 묵직한 존재는 그 속에 단단히 여문 영양과 이야기를 품고 있다. 세월의 풍상을 받아들인 자만이 내공의 향기를 낸다.



늙은 호박은 늙을수록 귀해진다. 당도를 높이고, 영양을 농축한다. 누군가는 그것을 엿으로 달이고, 누군가는 호박죽으로 끓여낸다. 한 시대의 가난을 달래던 호박범벅의 기억 속에서도, 호박은 늘 사람의 곁에 있었다. 인생의 절정은 젊음이 아니라, 무르익은 익어감의 시간 속에 있다.



호박을 볼 때마다 친정 엄마를 떠올린다. 출산을 마친 딸을 위해, 늙은 호박을 가지고 먼 길을 오시던 그 모습. 손끝이 터지고 어깨가 아파도, 무거운 호박을 꼭 품고 오셨다. 그 안에는 사랑이 담겨 있었다. 나를 위해 여문 세월을 건네던 그 손길을 생각하면 지금도 눈시울이 젖는다. 그 따스한 호박물 한 모금이 내게 생의 단맛을 가르쳐 주었다.



이제 나도 엄마의 그때를 닮아간다. 젊은 날의 뾰족함은 어느새 둥글어졌고, 삶의 무게는 어느새 새털처럼 가벼워졌다. 그래서 지금이 가장 좋다. 시간이 나를 늙게 한 것이 아니라, 단단하게 익혀준 것이다. 나는 이제 안다. 진정한 삶의 가치는 화려한 꽃의 순간이 아니라, 비바람과 된서리를 견디며 속을 익혀가는 일이라는 것을.



누군가 언제가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때인가를 물으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대답한다. 바로 지금, 나이 들어가고 있는 지금이라고. 왜냐하면 지금의 나는, 내 안에서 달게 익어가고 있으니까. 지금이 모든 시간의 온기와 삶의 균형을 이루고 있으니까. 그리고 엄마의 미소가 함께 여물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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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호박은 알고 있다. 세월의 무게는 결코 짐이 아니라, 기쁨이라는 것을. 인생 또한 마찬가지다. 시간은 삶을 시들게 하지 않는다. 그저, 더 단단히 여물게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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