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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쩜, 그대로야~'

그 말에 우린 서로를 바라보고 웃었다

by 현월안




한때 가깝게 지내던 지인과 오랜만에 만났다. 커피잔 위로 따스하고 그간의 오랜 시간이 부드럽게 피어오른다. 서로를 바라보며 거의 동시에 같은 말을 한다. "어머 어쩜, 그대로야, 하나도 안 변했어~"



말에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다. 그 웃음 속에는 단순한 인사 이상의 마음이 담겨 있다. 세월의 흐름 앞에서도 여전히 그대로라는 위로와, 시간이 흘러도 서로의 기억 속에서 여전히 같은 자리에 머물러 있다는 안도감이다.



그녀가 살짝 웃으며 말했다. "시술 좀 했어. 살짝~" 그 고백이 어찌나 순수하고 솔직하던지, 서로 또 한 번 웃음을 터뜨렸다. 조금은 예뻐진 얼굴이고 부드럽게 당겨진 피부 속에 여전히 예전의 그녀가 있다. 시술은 돈을 들여 젊음을 붙잡는 일이라지만, 그보다 더 빛난 것은 여전히 따뜻한 그녀의 눈빛이다.



하지만 시술을 하고, 화장을 하더라도 시간은 그 모든 것 위에 가만히 내려앉는다.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조금씩, 분명하게 시간이 흘러간다. 피부의 탄력이 줄고, 머리카락에 흰 빛이 스며들고, 아침에 일어날 때 어딘가 모를 뻣뻣한 것조차 삶이 건네는 조용한 신호다.



나이 들어간다는 것은 몸이 조금씩 변하듯 마음도 함께 변한다. 조금은 둔해지고, 그 둔함 속에 또 깊어지는 통찰이 있다. 급히 판단하지 않고, 말보다 침묵을 더 귀하게 여긴다. 시간은 그렇게 단단하게 나를 빚는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마음의 방향이 바뀌는 일이다.
젊을 때는 바깥세상으로 향하던 시선이 이제는 조용히 내 안으로 향한다. 내가 어떤 사람으로 살아왔는지,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를 되돌아보게 되고 그 안에서 나를 이해하게 된다.



그러나 나이 듦에는 역할이 줄어들고, 많던 모임은 하나둘 시들해진다. 전화기 속 연락처는 늘 그대로인데
그 연결은 점점 줄어든다. 낯섦은 잦아지고, 남겨진 자리엔 고요해진다. 외로움은 그렇게 찾아올 것이다.



하지만 그 외로움은 두려움이기보다 외로움은 나를 아는 깊은 시간이다. 그때엔 바빠서 지나쳤던 물음이 다시 문을 두드린다. 삶은 무엇을 이루는 것보다 무엇을 이해하고, 무엇을 놓아주는가의 과정임을 안다.



나이 듦은 내 안의 순수가 쌓여가는 시간이다. 기억 속의 풍경과 실패의 눈물과 기쁨의 웃음이 모두 나를 이루는 시간의 결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기억은 왜곡되고 희미해지기도 하고, 때로는 마음이 덧칠해 다른 빛깔로 물든다. 그럼에도 그 안에는 진실이 있다. 그때의 삶과 그때의 진심이 여전히 숨 쉬고 있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약해지지만, 그 약함 속에 삶의 온기가 있다. 이제는 부드러움으로 세상을 감싼다.
기다리고 또 받아들인다 그것이 나이 듦이 주는 성숙이다. 세월이 흘러도 마음의 중심이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괜찮은 나이 듦일 것이다.


-~-~-~==-~-~-ㄹ


언젠가 다시 그녀를 만나면 우리 둘은 또 웃으며 말할 것이다. "어머, 그대로야 하나도 안 변했어~"

그 말 한마디 속에는 시간이 데려간 모든 순간에 대한 감사와, 서로를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는 따뜻한 믿음이 담겨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마음은 시간이 주는 아름다운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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