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 볕 아래 가슬가슬 말리던 풍경이 되살아난다
가을 배춧국을 끓이다가 문득, 오래전 늦가을 친정집 마당 풍경이 생각났다. 커다란 우무 다발에서 뿌리 쪽을 싹둑 잘라내던 엄마의 손끝, 그것을 살짝 삶아 늦가을 볕 아래 가슬가슬 말리던 그 풍경이 되살아났다. 따사로운 햇빛이 오랫동안 마당을 머물던 그때, 그 냄새와 기억이 조용히 피어올랐다.
친정집 마당 한쪽에는 큰 가마솥이 걸려 있었다. 종갓집의 사대 봉제사와 크고 작은 행사는 늘 이어졌고, 그때마다 미당 한편에 놓인 가마솥은 늘 무언가를 품고 있었다. 여러 사람이 먹을 고깃국이 끓고, 시래기가 푹 삶아지고, 부엌에서 처리하기 벅찼던 음식들이 그 큰 솥에서 차례를 기다렸다. 해거름이면 어김없이 작은 장작불이 타오르고, 바람이 스치는 소리 사이로 장작이 부러지는 소리가 청명하게 울렸다. 엄마는 종종걸음으로 장작을 보태고 국물을 저으며 마당을 오가던 그 발걸음까지도 또렷하게 기억난다.
그때의 저녁 마당은, 해가 져도 어둡지 않은 공간이었다. 솥뚜껑 사이로, 장작불의 주홍빛 사이로 일가친척들과 분주히 그 가장자리에 서서 일을 거들던 사람들. 지금 생각해 보면 종가의 살림을 진두지휘하며 엄마의 손끝에서 시작되어 마당을 환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종부로서의 책임을 묵묵히 견디며, 자신에게 주어진 몫을 뭐 하나 흘리지 않으려는 그 의지. 누구보다 넉넉한 마음으로 집안을 지키던 엄마의 삶이 마당의 불빛처럼 반짝였다.
지금은 돌아가시고 안 계시지만 오늘 저녁 밥상에 오른 가을 배춧국에서 엄마 냄새가 난다. 푹 익은 배추 사이로 스며드는 담백한 단맛, 뚝배기에 얇게 감기는 구수한 향기, 배춧국은 엄마의 맛을 닮았다. 엄마는 평생 단 한 번도 싫은 내색이 없으셨다. 바쁜 중에도 웃던 얼굴 속에 얼마나 많은 고민과 고단함이 숨어 있었을까. 세월이 많이 흐르고 늦게야 그걸 알게 된다.
철학자들은 흔히 말한다. '사람은 자신이 선택한 방식으로 세상을 사랑한다'라고. 엄마가 사랑한 세상은 거창하지 않았다. 가마솥에 가득 끓는 국 한 솥과, 김이 서리는 이른 부엌에서 삶, 환하게 웃는 종부의 얼굴, 엄마는 그 세상을 너무도 성실하게 사랑했고 만들어 내셨다. 엄마의 삶은 말보다 배려가 앞섰고 책임이 깊었다. 그래서 엄마의 삶은 누구도 해 낼 수 없는 삶이었다.
배춧국이 오늘 더 구수하고 맛있다. 그때 엄마는 어떻게 그 많은 나날을 견디고 웃으셨을까. 어떻게 그 고단한 길을 매일 흔들리지 않고 걸어가셨을까. 그것은 종가를 흔들림 없이 지탱하려는 의지였고 평생 몸소 보여주신 희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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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배춧국 냄새가 오래된 기억의 문을 열어준다. 마당의 불빛, 아궁이의 장작 타는 소리, 저녁 공기를 헤치며 바삐 움직이던 엄마의 분주한 손길, 환하게 웃으며 부엌을 오가던 일가친척들... 그것이 내 삶의 기본이고, 나를 버티게 하는 힘이라는 사실을 안다. 늦가을의 저녁, 엄마의 사랑을 가만히 되새긴다. 엄마가 남긴 따뜻한 세상이 아직도 내 안에서 천천히 데워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