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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 아름다운 결혼식

사랑을 품은 가족의 연결은 따뜻하다

by 현월안




늦가을은 유난히 결혼식이 많다. 단풍이 절정에서 빛을 거두고, 바람이 부드럽게 차가워지는 계절은 묘하게도 새로운 시작과 잘 어울린다. 끝과 시작이 함께하는 계절, 그 사이의 공기에 사랑의 약속이 스며드는 것이다. 지난 토요일 결혼식에 다녀왔다. 부산에 터를 잡고 사는 사촌 동생의 아들이 서울에서 결혼을 했다. 평소엔 멀리서 소식만 전하던 친척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친정아버지의 형제들, 그리고 그 자녀들인 사촌들이 오랜만에 얼굴을 마주했다. 그날 결혼식장은 흩어졌던 가족의 기억이 되살아나는 시간이었다.



예식장 분위기는 온화하고 따뜻했다. 늦가을의 햇살은 유리 천장을 부드럽게 스며들고 신랑 신부의 얼굴을 비추었다. 마치 천사가 내려앉은 듯, 신부는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흰 드레스의 주름 하나하나가 빛을 머금고 있었고, 신랑의 눈빛은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두 사람의 서약을 들으며, 문득 세월의 길 위에서 이어져 온 삶의 연결이라는 말을 떠올렸다. 사랑은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전해지는 마음의 유산이다.



피로연 자리에선 오랜만에 사촌들과 둘러앉았다. 반가움이 앞서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요즘은 어떻게 지내는지 또 아이들은 잘 크고 있는지 사소한 안부 속에 각자의 세월이 녹아 있었다. 한때 명절이면 자연스레 모이던 우리 집, 아랫목이 떠올랐다. 우리 친정은 사람 많고 행사 많은 종갓집이었다. 어렸을 때는 제사 때마다 친척들이 모여 웃음꽃을 피웠고, 부엌에서는 음식 끓는 내음과 웃음소리가 동네를 떠들썩하게 했다. 그때의 따뜻한 온기 사람 냄새, 음식 냄새가 뒤섞인 그때가 문득 떠올랐다.



세월이 흘러 모두 제 삶의 궤도를 찾아 흩어졌다. 부모님 세대는 모두 돌아가시고 막내 작은 아버지만 살아계신다. 사촌들은 모두 인생의 중반쯤을 건너고 있다. 서로의 얼굴에 묻은 세월의 흔적이 낯설지 않았다. 삶은 모두 다르지만, 그 결을 따라가 보면 결국 같은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다.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모습이 기특하고, 또 뿌듯했다. 모두가 고르게 잘 살아가고 있는 듯 보였고 서로의 존재가 조용히 위로가 되어주는 자리였다.



결혼식 후 우리 사촌들은 모두 자리를 옮겨 커피를 마셨다. 오랜만에 얼굴을 본 사촌은 자녀의 좋은 대학 소식을 전했고, 또 누군가는 건강을 이야기했다. 인생의 이야기는 거창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사소한 대화 속에서 묘한 안정감이 번져왔다. 함께 나이 들어간다는 것, 그 자체가 한 편의 드라마처럼 따뜻하게 느껴졌다.



결혼식은 한 집안의 역사가 다시 한번 이어지는 의식이다. 결혼은 또 다른 세대의 생김을 예고하고, 그 속에 부모 세대의 삶이 녹아 있다. 결혼식장에 앉아 신부를 바라보는 신랑의 부모 얼굴엔 자부심이 번졌고, 그 뒤편에서 서로의 어깨를 다독이는 사촌들의 미소 속에는 가족의 연대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끈이 있었다.



그날 가장 인상 깊었던 순간은 신랑이 신부의 손을 잡고 퇴장하던 모습이었다. 천천히 걸어 나오는 두 사람의 모습이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꽃잎이 흩날리고, 음악이 흐르는 그 장면에서 나는 잠시 숨을 멈추었다. 세상의 모든 사랑이 저렇게 평온하게 빛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신랑의 아버지, 사촌 동생은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다. 아마 그 눈물 속엔 자식을 떠나보내는 아쉬움과, 성장을 완성해 낸 안도감이 함께 녹아 있었을 것이다.



결혼식은 내게 작은 철학적 울림을 남겼다. 삶은 관계의 연속이고, 사랑의 연결이다. 누군가의 시작이 또 다른 이의 기억을 불러오고, 한 세대의 이야기가 또 다음 세대의 꿈으로 이어진다. 늦가을의 결혼식은 그 연결의 아름다움을 조용히 일깨워 주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창밖의 은행잎이 바람에 흩날리고 있었다. 노랗게 물든 잎사귀 하나가 내 발끝으로 떨어졌다. 문득 그것이 하루의 상징처럼 느껴졌다. 떨어지는 잎도, 새로운 싹을 틔우기 위한 과정이라는 걸 안다. 결혼은 그 자체로 또 하나의 봄을 준비하는 가을의 끝자락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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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그렇게 이어진다. 세대에서 세대로 또 마음에서 마음으로, 사랑에서 사랑으로. 사촌 동생의 아들 결혼식은 우리 사촌들 모두의 이야기였다. 가족의 끈이 단단히 이어주고, 서로를 묶어주는 따뜻한 온기의 사랑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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