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이면 마음이 먼저 놀란다
12월이 오면 마음이 먼저 놀란다. 달력이 한 장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보다, 그 사이를 채웠을 수많은 날들이 너무도 빠르게 지나가 버렸다는 감각 때문이다. 한 해가 이렇게 속절없이 흘러가 버렸다는 깨달음 앞에서, 자연스레 걸음을 늦추고 마음은 차분해진다. 돌아보지 않으면 사라져 버릴 것 같은 시간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12월은 기억의 계절이다.
며칠 전, 철학서를 함께 읽고 토론하는 크루 사람들을 만났다. 논술과 함께하는 공통된 과제를 가지고 있고 철학서를 두루 섭렵하려는 의지가 강한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과 조촐한 망년회를 가졌다. 소란스럽지도, 요란하지도 않은 조용해도 너무 조용한 사람들이다. 오래된 책처럼 차분하고, 낮은 불빛 아래서 서로의 얼굴이 더 또렷이 보이는 시간이었다. 모두 각자의 한 해를 꺼내 놓았다. 잘 지나온 시간에 대한 감사와, 모두에게 남기는 바램과, 서로를 향한 염려와 격려가 테이블 위를 천천히 오갔다. 한해를 꽉 차게 잡아 준 시간이 감사했던지 다른 촉촉한 눈빛이었다. 한 해 동안 알차게 서로가 서로를 팽팽하게 당겼다고 또 놓아주고 저마다의 사유에 뭔가를 가득 넣어 두고는 여유가 가득한 눈빛이다. 자리를 파할 시간이 되었음에도 누구 하나 쉽게 일어나지 못했다. 이미 많은 시간이 지났음에도 더 남기고 싶은 말이 있었던지 쉽게 파하지 못했다. 하루가 꽉 차게 꼬박 저물 때까지 같은 자리에 앉아서 저마다의 생각을 꺼내 놓았다.
돌이켜보면, 올 한 해의 시간 속에는 양식처럼 마음을 채워 준 순간들이 적지 않았다. 그 대부분은 글을 쓰고 책을 읽고 나누는 시간이었다. 글을 쓴 것을 나눈다는 것은 내가 살아온 시간을 건네는 일이다. 숨기고 싶은 부분은 숨긴 채로, 드러내고 싶은 부분은 드러낸 채로, 그러나 그 너머까지도 자연스럽게 전해진다. 글 앞에서 서로의 삶을 읽는다. 그리고 그 삶이 맞물리며 돌아가는 감각을 함께 겪는다. 시간을 주고받고 삶을 나누고 살아 있음을 확인하는 일이다.
크루 속 한 사람이, '올해 마지막'이라는 제목으로 내게 편지를 건네준 여인이 있었다. 나로서는 작은 마음이라 여겼던 어떤 마음이, 그녀에게는 크게 와닿았던 모양이다. 구구절절 마음이 담긴 편지를 받으며, 나는 편지가 가진 고유한 온기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그 편지 속 한 문장, "글은 함께 쓰는 것 같아요"라는 글귀는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다.
사실 그것은 내가 모두에게 자주 들려주던 생각이기도 했다. 때로는 사람들에게 조심스럽게 꺼내 보이던 말이었다. '글은 함께 쓰는 것이다' 그런데 그 문장을 타인의 언어로 되돌려 받는 순간, 전혀 다른 울림으로 다가왔다. 그렇다. 글은 혼자 쓰는 것처럼 보이지만, 혼자 쓰는 것이 아니다. 나를 이해하려는 힘으로 타인을 알아가고, 타인을 이해하며 얻은 시선으로 세상을 다시 바라본다. 백지 앞에 앉아 있는 물리적 고독의 순간에도, 누군가의 목소리와 기억과, 관계의 잔향 속에서 문장을 써 내려간다.
그 감각은 글쓰기에만 적용되지 않는다. 모든 일은 함께의 조건 위에서 가능하다. 일하고, 먹고, 입고, 잠들며, 기뻐하고 슬퍼하는 일들까지도 다른 이와 얽혀 있다. 원하든 원치 않든 끊임없이 무언가를 서로 주고받으며 살아간다. 삶은 보고자 하는 만큼 보이고, 알고자 하는 만큼만 드러난다. 사유 역시도 관계 속에서 깊어진다.
그래서 철학서를 함께 읽고 토론하는 이들과의 관계는 더 소중하다. 그곳에서는 정답보다 질문이 존중되고, 속도보다 깊이가 소중하다. 함께 철학서를 읽고 서로 생각을 나누지만, 사실은 서로의 삶을 읽는다. 한 문장을 두고 각자의 경험과 사유가 포개지고 생각은 혼자가 아닌 서로의 것이 된다. 그 과정 속에서 나는 여러 번 나의 세상이 확장되는 경험을 했다. 지나고 보니 알겠다. 크루가 있었기에 나는 더 자주 만족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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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가 저문다. 그러나 함께 나눈 사유와 문장들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것들은 이미 나의 삶 속으로 스며들어, 다음 계절을 살아갈 힘이 된다. 새해에는 철학서 크루가 더 건강하게, 더 재미있게 삶을 사유하기를 바란다. 함께 읽고, 함께 묻는 사랑이 계속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