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을 오르며

산에서 느끼는 침묵의 언어

by 현월안



가파른 비탈이야말로
단단한

삶의 기름길이라 믿었던 때가 있었다
숨이 찰수록 옳은 방향이라 여기며
미끄러질수록 더 힘껏 발을 디뎠다
오늘, 북한산은 그 믿음을 조용히 접어
순한 길 하나를 내 앞에 펼쳐 보였다


산다는 것은 더 높이 오르는 일이 아니라
더 깊이 스며드는 일이라는 듯,
걸어도 걸어도 제자리 같은 시간 속에서
발걸음은 내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오름에 대한 기대를 아직 놓지 못한 나에게,
세상 욕심이 아직 남아 있는 나에게
북한산은 말 대신 침묵으로
좀 더 낮추라 속삭인다


산을 오르고 있지만
산보다 더 크게 다가오는 것은
산속에서만 감각하는 시간,
바람이 피부를 스치고
빛이 겨울나무 사이를 통과하는 은은한 미소,
정상은 점점 가까워지고
내딛는 발걸음의 묘한 단맛,


산 아래에서의 삶이 왜 그토록 가파른지
북한산에서 조금은 알 것 같다
경사는 땅에 있지 않고
욕망의 각도에 있다는 것을
더 빨리, 더 위로, 더 많이라는 말들이
길을 급경사로 만들었다는 것을,


오늘 북한산이 가르쳐준 것은
서두르지 않는 것이다

높이를 재는 대신
호흡의 깊이를 헤아리고,
정상이 아니라 동행으로
길을 읽는 것이다


산은 말하지 않는다
다만 낮은 자세로 오래 서 있고,
그 오래됨이 나에게 일러준다
정상에 서서 얻는 이름보다
중턱에서 내려놓는 마음이
더 오래 남는다는 사실을,


오늘 잠시 숨을 고른다
어깨를 낮추고
겉의 속도를 늦추고
삶이 나를 앞질러 가지 않도록
산은
오르지 않아도 도착하는 법을
조용히, 아주 순하게
내게 가르쳐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