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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수 Apr 26. 2016

나는 생각이 너무 많아

PESM, 감각 과민증, 정신적 과잉 활동인


 얼마 전 인터넷 서핑을 하다 'PESM 증후군'의 존재를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그때만 해도 그냥 대충 슥슥- 읽어보면서 '아 좀 내 얘기 같기도 하고? 근데 내가 뭐, 증후군이랄 것까진 아니잖아.'하고 넘겨버렸는데, 이 단어가 며칠째 자꾸 내 머릿속에서 맴도는 것이다. 그래서 PESM이 뭔지 제대로 알아나 보자 하고 검색을 하던 와중 '나는 생각이 너무 많아'라는 책의 자세한 리뷰를 읽어보게 됐고, 나를 평생 놓아주지 않았던 괴로움의 원인을 깨닫게 되었다. 사실 그 책은 예전에 제목이랑 표지 디자인만 보고 또 그저 그런 심리학 책이 하나 나왔구나 싶어서 별 관심도 안 뒀던 건데, 이런 내용이었을 줄이야.

 우선, PESM 증후군은 감각 과민증이라고도 하고, 이 증후군을 겪는 사람들을 정신적 과잉 활동인이라고 한다. 이렇게 얘기하면 굉장히 심각한 질병인가 싶을 수 있는데 그렇지는 않다. 단지 다른 사람들에 비해 유난히 예민한 오감을 타고난 사람들이다. 그 예민한 오감 덕분에, 풍부한 감수성을 갖게 되고, 일반 사람들이 인지하지 못하는 작은 부분들까지 알아차리게 되고, 그로 인해 생각이 많아지고, 다른 사람들에게 예민하고 까다로운 사람으로 오해를 받곤 하는, 그런 사람들을 말한다.

 여기까지 봤을 때는 내 얘기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는 예민하긴 무슨, 오히려 털털하고 무던한 사람이라는 얘길 듣는 편이니까. 그런데 PESM의 특징들을 쭉 읽어내려 가는데, 나는 누가 내 뇌를 꺼내서 여기다 해체시켜놓았나, 싶었다.

 

 1. 교사와 학습 내용에 감정을 싣지 못하면 학습이 불가능하다.

 2. 자연과의 일체감을 경험한다.

 3. 절대적 이상주의자이며, 예리한 통찰력을 가지고 있다. 

 4. 타인에게 감정이입을 아주 깊게 한다.

 5. 다각적으로 사고하는 사람이기에 별의별 것을 다 생각해 보고 끝없이 곱씹는다.

 6. 자기가 대체로 산만한 데다 남들이 쉽게 해결하는 일상적인 문제들 앞에서 쩔쩔맨다고 생각하고, 더 중요하고 어려운 문제들은 잘 해결하는 편이라는 것을 모른다. 대단한 성과를 내고도 자기 자신을 자랑스러워하기 보단 평가 절하한다. 운이 좋았다거나, 시험 문제가 쉽게 나왔다거나 하는 식으로. 겸손과는 다른 문제.

 7. 정신적 과잉 활동인은 가슴으로 생각을 한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들은 마음이 깃들지 않은 생각은 할 수가 없다. 매사에 감정을 실을 뿐 아니라 사물에 대해서까지 마음을 쓴다.

 8. 어린 시절 자기답게 행동했다가 거부당한 경험이 있다.

 9. 거짓 자아를 가지고 있으며, 그것은 모두에게 개방된 VIP 살롱과도 같다. 이 살롱은 모든 VIP들의 욕구와 견해를 고려하여 조용하지만 기분 좋게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진짜 자아는 기나긴 지하 통로 안쪽 독방에 감금되어 있다.

 10. 정신적 과잉 활동인은 관용의 수준이 매우 높은 편이다. 그들은 다양한 차이를 잘 수용한다. 


 같은 증후군을 겪는다고 해도, 사람마다 정도와 증상의 차이는 다를 수 있지만 이 짧은 문장들을 읽다 나는 눈물이 날 뻔했다. 진작에 알았으면 나 자신을 그렇게 비난하지는 않았을 텐데, 좀 더 마음 편히 지낼 수 있었을 텐데 싶으면서 그래도 지금이라도 알게 되어 다행이라는 감정이 쑥 올라와서.


 그런데 특징 3번, 4번, 10번 같은 것은 오히려 장점이 아니냐고 의문을 갖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뭐든 적당해야 좋은 법인데, 정신적 과잉 행동인은 보통 사람들보다 그 정도가 과하다. 이상주의자인데다 예민한 감각을 타고나면, 세상의 온갖 사소한 부조리, 거짓, 가식들을 너무 쉽게 아주 자주 포착하게 된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말이다. 그래서 자주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게 되고, 또 그런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자신을 부정하게 된다.

 타인에게 감정을 이입하게 되는 정도가 심한 만큼, 자신의 일도 아닌 걸 가지고 감정 소모를 하게 된다.

 자신이 남들에게 베푸는 관용, 사랑, 이해 같은 것들을 언젠가 자기도 받게 될 거라는 기대는 무참히 박살 난다. 


 PESM 증후군인 사람들이 겪는 고통의 과정을 간단하게 정리해보자면 이렇다. 그들의 감각은 아주 예민하다. 그래서 어떤 한 가지 자극에 열 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그 열 가지 생각들 중에는 긍정적인 생각들도 있지만 당연히 부정적인 생각도 포함된다. 감정 기복이 심해진다. 예민한 감각 탓에 타인으로부터 상처도 쉽게 받고, 그 와중에 타인의 단점도 잘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인간관계가 어려워진다. 그런 자신의 모습을 싫어하게 된다. 자존감이 떨어진다. 부정적인 생각들을 원천 차단하려고 해보지만 감정을 제대로 발산시키지 못한 채 억누르기만 해서 상황이 더 악화된다. 이런 상황들은 순차적으로 일어나기도 하고,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기도 한다.




 지금 자기 자신이 PESM이었구나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주변 누군가의 이야기인 것 같다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좀 더 자세히 알아보고 싶다면, 책에는 자세한 해결방안도 제시되어있다고 하니, 직접 읽어보기로 하자. 나도 조만간 사서 읽어볼 생각이다.



※ 인터넷 서핑 결과, PESM은 아직까지 많이 연구된 주제가 아니라는 얘기가 있다. 그러니 시간이 지나면 이 글의 내용과 달라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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