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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수 May 18. 2016

당신은 남자라서 살아남았습니다.

 지난 17일 오전 1시 20분께 서울 지하철 2호선 강남역 인근 상가의 화장실에서 직장인 A씨(23·여)가 숨진 채 발견됐다. A씨는 1층 주점에서 지인들과 술을 마시다 2층 노래방으로 올라가는 계단 중간의 화장실에 들어갔다가 변을 당했다. 용의자 김 모(34) 씨는 여자들이 자신을 무시해 A 씨와 알지 못하는 사이임에도 살인을 저질렀다고 자백했다. (출처:아시아투데이 디지털뉴스팀)


 이 기사를 읽고 무슨 생각이 드는가? '새벽 1시에 강남역 인근 화장실이라니, 여자가 부주의했네.'라고 생각하는가? 물론 우리는 누군가 살해당했다는 이야길 들으면, 인적이 드문 골목길과 같은 공간을 떠올리기 십상이다. 그러나 이번 피해자가 당시 술을 마시고 있었던 장소는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어두컴컴하고 위험한 공간이 아니었다.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강남에서도 굉장히 큰 노래방 건물이었다. 그러니 당연히 사람도 많았을 것이고, 즉 그 피해자가 아니었더라도 누구든 범죄의 대상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 '누구든'에는 여성들만 포함된다.


 이제 공간에 대한 의문이 풀렸다. 그렇다면 시간은? 여자가 왜 새벽에 술을 먹냐고 말할 것인가? 진심으로 당신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당신은 명백한 여성 차별주의자다. 성별에 관계없이 모든 개인은 낮이든, 밤이든, 커피를 마셨든, 술을 마셨든, 안전하게 귀가할 권리가 있다. 비난받아야 할 대상은 가해자 남성이지, 피해자 여성이 아니다. 부디 당신의 어머니, 딸, 동생, 애인이 당했다고 생각해보라. 그래도 여전히 피해자의 잘못이라고 생각된다면 더 이상 이 글을 읽지 말아줬으면 한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여자친구를 포함한 여자 지인들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런 사건이 있었대, 그러니 너도 조심해." 나는 이 말을 들을 때가 가장 의문스럽다. 대체 어떻게 조심하라는 것인가? 실제로 내 친구는 오후 4~5시쯤 성추행을 당한 적이 있다. 내 친구는 평소 과하게 붙거나 짧은 옷을 선호하지도 않으며, 그냥 집 앞 편의점을 다녀오던 길이었다고 한다. 여자들이 대체 뭘 어떻게 해야 때리지 않고, 죽이지 않을 것인가? 방법이 있으면 제발 좀 누가 알려줬으면 좋겠다.


 이 사건을 묻지 마 살인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가해자 남성은 화장실에서 1시간이나 숨어서 기다렸다고 한다. 그렇게 1시간을 기다리면서 조폭 혹은 해병대 군복을 입은 남성이 오길 바랐을까? 용의자가 범행 동기를 '여자들이 자신을 무시해서'라고 밝혔듯이 이건 분명한 '여성 혐오' 범죄다.


 나를 꼴페미, 메갈년, 부정적이고 예민한 인간 등으로 욕하는 사람은 없었으면 한다. 여성들은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성별로 인해 언제 어디서든 성희롱은 기본이고, 성추행, 성폭행, 심지어 살인까지 두려워하며 살아야 한다. 일부인지 대다수인지 모르겠지만, 남성들이 "요즘 여자들 기쎄다, 여자가 살기 좋은 세상이네"라고 툴툴 거릴 때 여성은 생존문제를 고민해야 한다. 이런 세상에서 어떤 여자가 부정적이지 않을 수 있을까? 이런 사건을 보고도 내 일이 아니니까 괜찮다고, 나는 이런 일 당하지 않을 거라고 방관하는 사람이 내 주변에 있다면 물어보고 싶다. 그 믿음이 정말 확실한지. 네 가족, 네 친구, 그리고 네가 살면서 절대 당하지 않을 거라고 백 퍼센트 확신하냐고. 과연 이 피해자 여성은 언젠가 자신이 그렇게 죽을 거라고 예상했을지.

 



 내가 이 글을 쓴 건, 남성-여성의 대결구도를 심화시키기 위함이 아니다. 그저 여성 혐오 범죄의 본질과 여성들의 심정을 조금이라도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쓴 것이다. 여성들은 조선 후기부터 남성의 아래로 인식되며 각종 무시, 차별, 폭행 등을 당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이런 강력범죄의 가해자 대다수는 남성이고, 피해자는 여성이다. 여성들은 남성에게 무시당한다고 해서 길 지나다니는 남성 아무나 막 잡아서 죽이거나 때리지 않는다.


 여성들이 마치 모든 남성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는 게 기분이 나쁜가? 하지만 여성들은 단지 '조심'을 할 뿐이다. 조심하지 않으면 당장 내가 죽을 수도 있는데, 어쩌라는 말인가? 피해자가 칼에 맞고 죽어간 그 시간에, 같은 공간에 있었음에도 살아남은 남성들은 단지 남성이기 때문에 살아남았다. 부디 감사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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