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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수 Feb 26. 2016

때때로 환기를 시켜주세요

 여자의 몸과 마음은 참으로 어렵고 복잡하다. 여성이 남성에 비해 감상적이라든가, 예민하다는 편견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생물학적으로 그런 구조를 가지고 태어난 것이다. 분명 나는 어제까지만 해도 내 삶을 사랑하며  만족스러워하고 있었는데, 밤새 내 호르몬 체계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오늘은 갑자기 모든 게 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 평소처럼 내가 "에이, 긍정적으로 생각하자!"라고 생각하는 정도로는 기분이 쉽게 바뀌지 않는다. 사람에 따라 그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나는 그렇다. 그리고 그 상태는 보통 하루 이틀이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고, 괜찮아진다. 그런데 문제는 젊은 여자의 경우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든가, 환경의 변화가 있다든가 하게 되면 주기가 매우 불규칙하게 바뀌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나는 그런 경우를 빈번하게 겪는 편은 아니었는데, 이번엔 일주일이 밀려버렸다. 모든 게 내 탓같고, 니 탓같고, 밉고, 짜증스럽고, 재수없게 느껴지는 그 상태가 자그마치 일주일이나 지속되었다. 이런 인과관계가 과학적으로 성립이 가능한지 확신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씩 몇 년을 겪어본 내 몸과 정신상태의 인과관계는 그랬다.

 인간이 한 달에 이틀 정도는 우울에 빠져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자기 인생을 돌아보고, 반성도 좀 하고 얼마나 발전적이고 좋은 시간인가. 그런데 일주일씩이나, 강제로, 그렇게 지낼 필요는 없지 않을까? 빨리 좀 벗어나고 싶은데 왜 이러는 건지 이유도 모르겠고 그렇게 한참을 답답해하고 있던 상태로, 친구를 만났다. 

 오후 12시에 만나 오전 12시를 넘겨, 새벽 3시라는 시간을 보고 우리는 그제야 어쩔 수 없다는 듯 헤어졌다. 나는 크게 놀랍지 않았다. 친구의 계획은  어땠는지 모를 일이지만 말이다. 그동안 하도 붙어 다녀서 그런지, 우리는 서로의 생각도, 감정선도 비슷해져 있었다. 서로가 안타깝고, 걱정스럽고, 그러면서도 믿고 있었다. "그래도 너라면 잘 해낼 거야" 하는 그런 믿음이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우리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만약 누가 옆에서 들었다면 '대체 이 여자들은 뭘 보고 들었길래 이렇게 세상에 부정적인 거야?'라고 생각할만한 얘기들이 8할이었는데도, 자고 일어나니 그간 쌓여있던 감정들이  온데간데없이 싹 환기가 됐다는 기분이 들었다.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는 모르겠으나 몸과 마음이 함께 안정이 됐다. 허리는 좀 땡겨서, 약을 먹어야 할까 고민이 되지만 기분이 이렇게 산뜻할 수가 없다.

 이것이 단순히 누군가에게 내 찌든 말들을 내뱉어냈기 때문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상대에 따라 털어놓은 내 속을 다시 꾸역꾸역 집어 삼키게 되는 경우도 있는데, 아마 어제의 내 상대가 내 속에 쌓인 먼지를 털어주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으리라. 늘 고마웠는데, 이렇게 또 고맙다. 자기 자신이 별 특징 없는, 너무 평범한 인간으로 느껴진다는 내 친구는 그래도, 적어도, 이렇게, 나에게만은 특별하다. 많이 보고싶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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