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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수 Jan 19. 2016

애초부터 객관적일 수 있을 리가 없잖아


 그 옛날 한 똑똑하셨던 철학자분들의 모든 선택은 결과적으로 다 옳았을까, 그들의 숱한 명언들이 아직까지 전해져 내려오는 것은 그 말들이 모두 정답이기 때문일까. 


 이 세상에 '객관적'일 수 있는 것은 단 하나도 없다.


 우리는 분명 방금 전까지만 해도 바나나 우유가 정말 먹고 싶은 마음에 골랐는데, 한 입 먹어보니 생각보다 너무 달다거나, 입맛에 맞지 않는 경우들을 종종 겪는다.

 평생 동안 자신을 괴롭혀 온 남자와 이혼하고 자신의 행복을 찾아 떠나는 것이 객관적인 답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 여자에겐 어떤 이유로 남편의 존재가 절실히 필요할 수도 있다. 

 "야, 나 로또 해볼까?"라는 말에 "역시 인생은 한방"이라며 권하는 친구가 있으면 "아무리 인생 한방이라지만 그게 되겠냐"며 말리는 친구가 있다. 분명 로또 당첨의 확률은 숫자가 이미 계산되어져 있는, 누구에게나 같은 값인데도 이렇게 받아들이는 양상이 다르다.


 누군가에겐 1번이 명확한 정답으로 보일 수 있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 1번은 명확한 오답일 수 있다. 100명 중 80명이 찬성하고, 20명이 반대하는 법안이 나왔다면 우리는 반드시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인가?


 평생을  고통받으며 살다 죽어 간 수많은 예술가들의 인생은? 현생이 힘겨웠으니 실패한 인생인가? 그래도 죽고 나서 후세에 이름을 어마어마하게 날렸으니 성공한 인생인가?


 우리가 치러 낸 수학 능력 검정 시험은 과연 모두에게 객관적이라고 할 수 있는 시험일까? 객관식 시험이니까, 객관적인 시험인 걸까? 수능 국어 과목에 출제되는 문학 작품들은 왜 다 죽은 작가들의 작품들일까?  그분들이 자기 작품에 대한 문제를 풀게 된다면, 다 만점을 받으실까?


 이걸 어쩌자고 이렇게 주절주절 써버렸는지 모르겠다. 혼란스럽다. 객관적으로 생각을 해보자고 아무리 되돌아봐도 모르겠다. 알 수가 없다. 그러자 악에 받치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처음부터 내가 객관적일 수 있을 리가 없잖아. 나보다 훨씬 더 똑똑하고 현명한 사람들도 결국 자기 주관 속에 살아가는 인간일 뿐인데. 그래, 내가 뭐라고. 너무 머리 아프게 생각하지 말고 버티자. 끝까지. 처음 생각했던 대로 흔들리지 말고. 지금은 그렇게 밀고 나가야 할 때라고, 믿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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