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드라마를 볼 때, 책을 읽을 때 한번씩 마음 속 저 깊은 곳까지 섬뜩해지는 기분을 느낄 때가 있다. ‘나는 어떤 어른이 되어 가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면서 두려워진다. 멋있고 젠틀한 어른이 되고 싶은 마음과, 절대로 꼬장꼬장한 모습으로는 늙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동시에 불쑥 올라온다. 사실 난 아직 사회생활도 제대로 안 해본 어린애인데, 20대 후반이라는 나이가 의식되긴 하나보다.
얼마 전, 정말 오랜만에 ‘명탐정 코난’을 처음부터 주요 화들만 골라서 다시보기를 했다. 여전히 재밌었다. 코난은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보기 시작해서, 10대 시절 내내, 그리고 20대가 되어서도 종종 봐왔다. 늘 재밌었다. 그런데 이번엔 등장인물들의 나이가 낯설게 눈에 들어왔다. 20대 초반의 아르바이트생, 20대 중반의 직장인, 20대 후반의 순경 등. 어렸을 땐 엄청 어른으로 보였던 등장인물들이 지금은 나보다도 어리거나 친구가 되었다. 나도 모르는 새에, 나는 ‘엄청 어른’이 되어 있었던 거다. 그러니 오랜만에 만난 사촌동생이 저도 모르게 꾸벅 인사를 하고 민망한 웃음을 지었던 거겠지.
나를 모르는 사람들 눈에는 내가 벌써 결혼해서 애가 있을지도 모를, 그런 나이가 되었다. 나이 드는 게 싫진 않은데, 자기가 둥근 줄 아는 뾰족한 어른이 될까봐 걱정된다. 나이가 들수록 내게 쓴 소리 해줄 사람들은 줄어들 것이다. 그럼 스스로 자기 언행을 돌아볼 수 있게 눈치라도 좀 빨라야 하는데, 다른 감각들도 다 무뎌지고 낡는데 눈치라고 혼자 멀쩡할 수 있을까?
좋은 모습으로 나이들 수 있는 방법은 모르겠다. 그걸 아는 사람이 있을까? 다만 방법을 알 수 없다고 해서, 이미 나이 들어버렸다고 해서, 먼 미래의 내가 쉽게 포기해버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이듦과 상관 없이, 사람은 누구나 살다보면 때때로 못난 모습을 보이면서 살아간다. 하지만 가끔 어떤 어른들이 자기 스스로를 꼰대라 칭하며 자신의 꼰대짓을 상대가 웃으며 받아들이게끔 하는 걸 보면 나는 다른 방향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엄청 어른이 되었다는 걸 알지만, 그래도 마음으론 내가 애 같아서 그런지 어떤 모습이 좋은 어른의 모습인지는 아직은 잘 모르겠다. 지금은 그냥, 타인이 내 나이를 생각해서 해주는 배려에 고마워할 줄 알고, 나이 든 사람이 해줄 수 있는 배려는 하면서 살아가는 어른이 되고싶다. 이렇게 생각이라도 하고 있으면, 그런 어른이 될 수 있는 방법들도 가끔 떠오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