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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수 Nov 25. 2018

감정적 에너지를 아끼고 싶어졌다.


 10대 후반, 20대 중반까지의 나는 정말 감정적인 사람이었던 것 같다. 감성적으로 풍부했다. 크게 고마워하고, 크게 미안해하고, 크게 슬퍼하고, 크게 감동했다. 작은 자극에도 심장은 빠르게 뛰며 울렁거렸다. 표정이 풍부하거나 말을 청산유수로 잘해서 그때그때 나의 감정을 밖으로 잘 표현하지는 못했지만, 혼자서 속으로 느끼는 감정은 나의 표현 이상으로 깊었다. 그런데 요즘은 긍정적인 감정이 아니면 내 안으로 받아들이고 싶지가 않아졌다. 정치인들의 비리에 대해서 깊게 알고 싶지 않고, 소시민들의 안타깝고 가슴 아픈 뉴스도 듣고 싶지 않다. 누군가와 언쟁을 하고 싶지도, 누군갈 설득하고 싶지도 않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지금의 나는 정말 이런데, 누군가에겐 내가 생각 없고 개념 없어 보일 수도 있겠지.


 하지만 모두가 개천 용이 될 필요는 없다며 개천을 아름답게 만들겠다던 사람들이 실제로는 개천 물을 흙탕물로 만들고, 상황을 낫게 만들려는 노력은 하지 않으면서 입으로 불평만 하고, 남성의 억울함에는 함께 분노하던 사람들이 여성이 칼에 맞고 쓰러져 있을 땐 눈길조차 주지 않고, 유명한 사랑꾼은 사실은 상대가 아닌 사랑에 빠진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있는, 이런 모습들을 보고 있노라니 그냥 내 인생만 생각하자는 생각이 절로 드는 것이다. 어차피 세상은 내가 보고 느끼는 것과 관계 없이 어느 정도는 모순적으로 굴러간다. 이런저런 모순들이 내 눈에 들어오는 이상, 때로는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분노하고 슬퍼할테지만 그 빈도를 줄이고 싶어졌다. 그래야 내가 버틸 수 있을 것 같다. 나의 에너지엔 한계가 있고, 지금은 열심히 일하고, 쉬고, 내 주변 사람들 챙기는 데에만 써도 부족하다.


 나 살기 바쁘니 사회 이슈들에 대해서는 눈 감고 귀 막겠다는 의미는 아니다. 감정적 에너지를 아껴서, 좀 더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행동을 하는 게 좋지 않겠나 싶다. 소액이라도 기부를 하고, 연대 해야할 땐 연대하고, 실천할 수 있는 건 실천하며 사는 삶이 더 의미있는 삶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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