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관찰 일기 2 - 잃어버린 생기를 찾습니다
남편과 나는 한 달에 한 번 꼴로 우리가 사는 곳에서 멀리 떨어진 쇼핑센터에 간다. 산속에 위치한 우리 집 주변엔 큰 슈퍼가 없다. 여기서 말하는 큰 슈퍼란 한국의 이마트 같은 슈퍼를 말한다. (참고로 나는 이탈리아에 산다) 우리가 장을 보러 대형 슈퍼를 찾는 이유는 아무래도 유동 인구가 많다 보니 물건 종류가 다양하고 대용량 제품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재미날 것 없는 산골 생활의 유일한 낙이었던 슈퍼 나들이마저 시큰둥해졌다. 사람 볼 일 없는 산골 생활을 하다 보면 인프라가 갖추어진 도시 느낌을 주는 장소가 그리워질 때가 있었는데 요즘은 이마저도 귀찮을 따름이다. 이불 밖은 위험하다는 어느 프로그램 이름처럼 만사가 귀찮아져서 건조대 위에서 축 늘어진 오징어처럼 그렇게 말라가고 있는 기분이다. 이런 나를 일으켜 남편이 운전하는 자동차의 보조석에 앉아 집에서 40분 떨어진 대형슈퍼로 향했다. 출발 직전까지 그냥 혼자 다녀오라고 말할까 말까를 수십 번 고민하다 이렇게라도 움직여야 하지 않겠냐며 스스로를 다독였다는 사실을 남편은 모른 채. 이동하는 차 안에서 말없이 창밖을 바라보며 ’왜 이렇게 의욕이 없을까 ‘를 고민했다. 노오란 꽃이 가득 들판을 수놓았고 연초록 잎을 햇살에 뽐내는 여린 잎들도 생기를 내뿜었지만 나는 살아있지만 살아있지 않은 사람 같았다. 여기까지 읽으면 마치 좀비처럼 살아가고 있을 것 같지만 겉보기엔 그렇지 않다. 사람답게 걸어 다니고 배꼽시계가 울리면 음식을 먹고 함께 사는 남편에게 때때로 농담을 건네기도 한다. 문제는 이렇듯 살아있는데 살아있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는 것이다. 의지의 문제인가? 절실함이 없나? 무엇을 하고 싶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이 둥둥 떠다니기만 할 뿐이다. 이런 상태인 자신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장을 보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정말 극심한 피로감을 느꼈다. 한 것이라곤 보조석에 앉아 있다가 점심을 먹고 장을 보기 위에 슈퍼에 들린 것뿐인데 밀려오는 피로감에 되려 자신이 당황할 정도의 피로감이었다. 몸에 이상이 있는 건가 하는 불안이 엄습하자 아마 무엇부터 시작할지 몰라 방황하는 주인에게 몸이 보내는 신호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초 체력 기르기’라고 검색을 해보니 다양한 영상과 정보가 뜬다. 역시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드는 것일까. 그럼 난 오늘부터 완전 건조 오징어를 꿈꾸며 시작을 해야 한다. 생기를 잃고 건조대에 안착한 오징어가 다시 살아나는 방법은 아주 바짝 말라 단단해지는 수밖에 없다. 근육들이 단단해지는 만큼 마음도 단단해지기를 바라며 행동하는 수밖에 없다.
자기 관찰 일기 1에서 ’화‘에 대해 이야기했다.(이전글 참고) 화가 스위치 on 되는 순간은 남편의 ’ 나중에‘라는 말을 들었을 때이다. 나중에 한다는데 뭐가 문제인가 싶겠지만 숨 쉬듯 미루고 바로 잊는다. 그래서 결국 안 한다. 더 나아가 반복해서 같은 이야기를 하고 또 해야 한다. 웬만한 것은 부탁하지 않고 내가 해버리는 것이 차라리 속 편한데 도움을 받아야 되는 일은 계속 기다려야 한다. 남편의 미루는 습관과 잊어버림이 반복되면서 ’아, 이 사람은 내가 한 말이 중요하지 않구나.‘하는 느낌을 받게 된다. 이 느낌이 싫다. 오! 글을 적다 보니 남편에게 이런 기분을 직접적으로 말해보지는 않았던 것 같다. 비슷하게는 말을 했던 것 같은데 나의 부족한 언어 실력 탓에 잘 전달되지 못했을 수도 있다. 번역기를 써서라도 잘 정리해서 전달을 해봐야겠다. 이렇게 내 마음을 전달했는데도 변화가 없으면 좀 속상할 것 같다. 그럼 다른 방법을 찾아야겠지. 포기하는 것이 가장 쉽긴 한데 그건 내 우울감을 치료하는데 별 도움이 안 될 것 같으니 애써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