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과 무계획, 둘로 나눈다면 나는 계획형 인간에 속한다. 계획 안에 나를 맞추고 성취감을 느끼며 행복을 찾았다. 시간을 낭비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진 자원을 낭비하는 것. 시간을 낭비했음을 자각하는 순간 허탈한 한숨이 나온다. 스스로를 한심하게 여기며 자책하는 편이다. 그럼에도 잠시 쉬어가는 순간, 저마다 느낄 수 있는 호흡이 있다.
나를 괴롭히는 감정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정의할 수 없지만 위로가 필요한 날이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자 산책길에 나섰다. 밤 산책을 하며 발길이 닿는 곳마다 자연을 느끼고 싶었다. 반투명한 물이 흐르고, 양옆으로 푸른 빛의 풀과 나무들이 무성했다. 두리번거릴 때마다 귀 옆을 스치는 바람에 잔머리가 흩날렸다. 자연의 소리와 함께 잠시나마 시간이 멈췄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혼란 속에서 평온함과 안정감을 찾는 건 나의 몫이지만 자연의 흐름에 맡기고 싶었다.산책 중에 나비와 풀벌레를 만나 몇 분간 그 자리를 지켰다. 흘러가는 감정이 일시 정지된 순간이었다. 어느 곳에 안착하지 못한, 붕 뜨고 미지근한 마음이 차분해지는 순간. 누군가 내게 나비가 되어 훨훨 날아다니고 싶다고 했다. 방해받지 않고 자유롭게, 어디든 편하게 갈 수 있는 그런 존재로. 내 마음속에 걸림돌을 나비가 날갯짓하는 곳에 톡톡 내려놓고 싶었다. 생각 정리를 위해 산책을 하다보면 나를 괴롭히는 스트레스가 미지근해진다. 애매하게 걸었다간 잡생각으로 가득 채우다 돌아오기 십상이지만 이마저도 돌아오는 계단에서 어중간한 결심으로 마무리 한다.
무용하지만 유용한 것. 글쓰기는 단순히 문장을 나열하는 것 이상을 의미한다. 산고의 고통과 같다는 창작의 고통을 느끼지만 그럼에도 글쓰기를 사랑한다. 지난 여름 책 출간을 앞두고 여러 차례 퇴고를 거치며 글이 주는 에너지를 더욱이 알게 되었다, 글을 읽을 때 같은 표현에도 각자 상상하고 간직하는 장면은 다채롭다. 한 가지 주제를 두고도 저마다의 표현법이 있다. 글은 나를 돌아보고, 발견하고, 표현하는 시간이다. 글을 쓰며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더 사랑하게 되었다. 사유하고 표현하고 무언가를 깊이 있게 알 수 있는 것. 말보다는 글이 편해서 글을 쓰는 순간들. 나와 세상을 연결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성취욕이 강한 편이라 꾸준히 운동하려 노력한다. 고칼로리를 섭취한 날엔 더 많은 시간을 운동에 할애한다. 헬스장에서 중량을 치거나 야외에서 산책한다. 귀찮음을 감수해야 얻는 행복감이 있다. 나를 괴롭히는 근육통에 마사지하고 스트레칭하며 앓는 소리를 낸다. 심한 날엔 잠을 자는 것조차 편치 않다. 며칠 전, 광배 운동을 하며 왼쪽 어깨가 자극됐는지 스트레칭을 해도 통증이 남아있다. 그럼에도 성취감이 주는 행복을 포기할 수 없다. 근육통의 공존을 즐기기로 했다. 산책길에서 만난 밤 공기와 달빛은 매일 다른 모습으로 나를 반겨준다. 오늘 밤엔 상쾌한 바람이 폐 속 모세혈관까지 퍼지도록 실컷 호흡하며 씩씩하게 걸어야겠다.
-노을로 물든 가을날, 무용함 속에서 행복을 찾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