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의 우리

by 주디



캠프가 끝난 후에도 몇 달 혹은 연에 한 번씩 둘 혹은 셋이 모여 연말을 보내거나 밥과 술을 나누며 추억을 쌓았다. 한번은 그의 여자 친구가 연락하지 말라며 날선 메시지를 보냈다. 그의 여자 친구가 나와 연락하는 걸 싫어한다는 말에 몇 달간 연락을 끊기도 했다. 그 사건 이후로 한동안 멀어졌고 내내 마음이 쓰였다. ‘누나 미안해. 그땐 전 여친이 자꾸 욕하면서 연락하지 말라고 해서.’라는 연락 한마디에 굳었던 관계가 풀어졌다. 그가 이별하고 힘들어할 땐 그가 사는 동네에 가서 위로를 해주며 고기를 먹고 노래방을 가고 여느 평범한 대학생들처럼 놀았다.


[기분 전환이 필요해. 누나, 내가 고기 사줄 테니까 우리 동네로 올래?]

[진짜로 사줄 거야? 우리 집에서 지하철로 1시간이네. 금방 가지!]

[당연하지. 오기만 하면 내가 사지. 얼른 와.]


겨울 방학에 시간만 낭비하며 놀고 있는 대학생 백수 둘. 그의 제안에 나는 처음으로 그가 사는 동네에 놀러 갔다.


”오란다고 진짜로 오면 어떡해. 남자가 가야지.“


그는 장난기 가득 걸린 입꼬리를 씰룩거리며 애써 무덤덤한 척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안 오면 서운해 할 거 면서. 말로만 그런 거 뻔히 알거든.”


나의 말에 입술을 앙다문 채 입꼬리를 쭉 빼며 씩 웃었다. 그는 이따금 그가 사는 동네, 그가 다니는 학교에 놀러 오라고 말했다. ‘내가 재밌게 해줄게. 여기 구석구석 다 구경시켜 줄게.’라는 말과 함께. 이후에 공중보건의를 하거나 지방으로 이직했을 때도 틈만 나면 ‘나 보러와!’라는 말을 했다. 그 말 한마디엔 많은 것이 담겨 있었다.


‘여기 심심하고 외로워. 놀아줄 사람이 필요해.‘

‘요즘 우울해. 위로가 필요해.’

‘이렇게 말하면 진짜로 올 거야? 왔음 좋겠어.‘


그땐 그의 표정과 말투만으로도 의중을 알아차렸는데 그와 사랑에 빠진 이후엔 깊은 속뜻을 알지 못해 오해가 쌓이기 일쑤였다.


“officially missing you 알지? 내가 랩 할 테니까 누나가 노래해.“


고기 뷔페에 가선 우삼겹만 먹고 노래방에선 1시간 내내 officially missing you 하나만 부르고. 다른 듯 비슷한 성향에 이렇다 할 갈등 없이 친분을 이어갔다.








나는 졸업 후 모교 대학병원에 입사해 사회 초년생으로 바쁜 생활을 했고, 그는 지방에서 대학 생활을 하느라 각자의 삶에 집중하며 몇 년간 얼굴을 보지 못한 채 안부 연락만 주고받았다.


[누나 번호 맞지? 나 핸드폰 고장 나서 번호 날아갔는데 누나 번호는 기억해.]


그는 숫자 기억력이 좋았고 그 중 내 번호를 항상 기억해 줬다. 번호를 바꾸지 않은 1n년 동안 인연이 끊길 만 하면 그의 노력으로 연락을 이어갔다.


[나 이제 돈도 버는데 맛있는 거 사줄게! 서울 오면 연락해.]







"커피가 왜 이렇게 비싸. 누나 아기야? 무슨 커피에 솜사탕을 먹어?"


홍대 근처에서 만나 일본 가정식을 먹고 커피를 마셨다. 여전히 장난기 가득하게 툴툴대는 그의 모습에 한참을 웃었다. 나는 신규 간호사로 고군 분투하느라 잠이 부족해 피로가 가득했고 그는 유급 걱정과 끝없는 시험에 지쳐 있었다. 나의 병원 생활 고충과 그의 퍽퍽한 학교생활을 나누며 켜켜이 추억을 쌓았다. 무슨 말을 해도 편하고 장난을 쳐도 즐겁고 사소한 웃음이 가득했다.


나는 알고 있다. 그때의 우리를 그리워할 순 있어도 다시 돌아갈 순 없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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