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 날씨는 어때?

by 주디


우리는 여전히 서로 조심하며 이따금 일상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나는 그가 사는 동네의 날씨를 매일 확인하고 우리가 나눈 메시지들을 되새기며 그가 웃고 있기를 바랐다. ‘거기 날씨는 어때?’ 직접 묻진 못 했지만 마음속으로 여러 차례 그에게 물었다. 그는 서울에 올라오면 함께 가자며 음식점 지도를 보내고 나는 그의 하루를 질문했다.


[이제 셔츠에 넥타이 매고 진료하라네. 업무도 많고 의상까지 신경 써야 하고 연차도 없고 퇴사하고 싶다.]

[안쓰러워.]

[나도 알람 없이 일어나고 싶다. 후우.]

[한숨이 꽤 깊네. 걱정되게.]







“00야 힘내! 누나가 있다.


이 말은 진심이었다. 세상이 그를 힘들게 해도 난 항상 그의 편이었으니까. 그는 주 6일 출근하고 명절 연휴에 하루 이틀 겨우 쉬는 일상에 지쳐 있었다. 상사의 지시에 셔츠와 넥타이를 사야한다며 투덜대는 그를 위해 위로가 되었을지 모르지만 셔츠를 선물했다. 괜찮다며 극구 거절을 하는 바람에 결국 선물은 취소했다. 그를 위하는 마음만은 가닿았을 것이다.


며칠 후, 그는 나와 통화를 하며 함께 캠프 생활을 하던 시절 좋아했던 여자가 궁금하다고 했다. 아마 그 말은 2년 전에도 5년 전에도 들었을 것이다. 그때야 공감해 주며 들었지만 그 순간엔 굳이 왜 나를 찾아와 다른 여자 이야기를 하는지, 배려가 없다고 느껴졌다.


[걔는 어떻게 사는지 진짜 궁금하다. 한 번은 보고 싶어.]

[연락해 봐. 그러다 후회해. 좋은 사람 다 놓쳐.]

[내가 지금 어떻게 연락해.]

[그럼 몇 년째 이러는 건 나보고 말해달라는 건가?]

[아니. 그런 건 아니고… 음. 난 누나가 캠프 때 만났던 남자친구 보면 나랑 스타일도 다르고 되게 신경이 쓰이더라고. 나한텐 관심이 없겠다 생각했지.]

[그건 아닌데. 우리가 이렇게 될 운명이었나 보네.]


그 여자 아이가 궁금하다는 말이 하고 싶었는지, 나한테 호감 표시를 하고 싶었던 건지 그렇게 어설프게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이쯤에도 본인 상황에 대해 자신감과 확신이 없었던 것 같다. 이따금 떠보듯 결혼 이야기를 하며 ‘누가 날 좋아해 주나.‘라거나 ‘누나랑 결혼하면 진짜 좋을 것 같은데. 누나는 나랑 결혼할 생각이 있어?’라는 질문을 넌지시 던졌다. 그가 불안과 회피를 반복하고 관계에 대해 중심을 잡지 못하고 하염없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며 나 또한 확신의 말을 점점 아끼게 되었다. 나는 그에게 결혼에 대한 답을 한번도 들려준 적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그는 제법 고민의 흔적이 깃든 질문을 했다.


[누나는 나랑 만나면 진짜 결혼할 마음이 있어?]


지인들 중 연상을 만날 때 연애를 이어가다 비혼주의라며 이별하는 경우들을 보고 우리 둘 사이에 대입하니 눈물이 났다고 말했다.


[나는 너랑 연애하면 당연히 결혼할 거야.]

[그럼 1~2년 후에 결혼해도 괜찮아?]

[응. 나도 당장 결혼할 생각은 없어서.]


처음으로 그에게 확신이 담긴 대답을 했다.


[그럼 우리 다시 만나자. 누나는 좋은 사람이니까.]








주말 이틀 오프에 그와 급 약속을 잡고 광주로 향했다. 눈이 소복소복 쌓여 인도와 도로의 경계를 무너뜨린 날이었다. 나는 회식을 하고 오는 그를 기다렸다. 그는 찬바람에 양볼이 붉어진 채로 검은색 롱패딩을 입고 나타났다. 볼이 둥글게 부풀만큼 환하게 웃고 있었다. 손을 마주 잡은 채 핫팩 하나를 함께 쥐고 쌓인 눈을 조심스레 밟으며 돌아다니는 시간조차 즐거웠다.





오랜만에 하이볼을 마시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그가 좋아하는 애슐리도 방문했다. 맛있는 음식 앞에 두고 인생 사는 이야기, 서로에 대한 궁금함을 나눴다.


“누나는 현모양처가 될 거야. 남동생한테 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어.”

“너도 좋은 남편이 될 거야. 가시돋친 모습일지라도 내면은 따뜻한 사람이니까.”


꾸밈없이 소박하고 같이 있으면 웃음을 주려고 노력하고, 지루하지 않도록 새로운 경험을 선물하고, 소소한 것에서 즐거움을 찾고 공유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에게 안전기지가 되어주고 싶었다. 우리가 함께 하는 순간만큼은 현실에서의 스트레스를 잊고 ‘추억’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그는 앞으로 우리 관계에 있어 줏대 없이 흔들리거나 회피하지 않으려 노력한다고 말했다. 혹여나 연락이 잘 되지 않을 땐 마음이 너무 힘들 시기일 테니 조금만 이해해 달라며 노력한다고 했다. 애석하게도 그와 대화를 나누며 우리는 곧 볼 수 없을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얼마 뒤 그는 다시 동굴로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