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매번 그를 정리하려 애썼지만 사랑에 묶인 채로 제자리였다. 우리는 늪에 빠진 사람들처럼 허우적거리며 서로를 놓지 못했다. 그는 갈등이 있을 때마다 관계를 이어가려 노력했지만 이젠 어떠한 의지도 없어 보였다. 나는 머리로는 정리해야 함을 알았지만 그 자리에 묶여 허우적거렸다. 그에게 가끔 안부 연락을 했고 생일 선물을 보냈다. 그는 한 번씩 답장을 하거나 전화를 걸었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흔적을 덜어내려 노력했다.
[일찍 연애했으면 좋았을 걸. 그랬으면 누나랑 무조건 결혼했을 거야. 그런데 지금은 너무 불편해.]
[내가 연락하는 게 불편하구나. 내가 좋은 사람 만났으면 좋겠어?]
[만나겠지...]
[그렇구나.]
[안 만나겠다는 말은 안 하네.]
[너를 정리해야 만날 수 있는 거야.]
나는 그와 마찬가지로 내내 그를 대하는 게 불편했다. 밤새 통화하고 장난을 치고 편하게 마주 앉아 밥을 먹던 둘의 모습은 추억 속에만 남아있었다.
친구와 여행을 가기로 했고 친구는 부산을 꼭 가고 싶다고 말했다. 부산에 가도 그를 떠올리지 않을 수 있을까. 그가 했던 말과 행동을 보며 더 이상 재회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내가 힘들 게 분명해 그를 정리하기로 했다. 부산에 가기 전날 밤 그와 통화를 했다. 그는 나에게 하고 싶은 말과 쌓인 불만이 많아 보였다.
[누나. 내가 전부터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말라고 했잖아. 휴우. 부산 오면 연락해. 돼지국밥 먹자. 아니다. 보지 말까.]
부산 여행 첫날 종일 그를 만나도 될지 고민했다. 친구가 저녁 시간 동안 강의를 들어야 해서 홀로 밖으로 나왔다. 그의 퇴근 시간이 다가올즈음 얼굴 보고 작별 인사를 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만남을 요청했다. 맛도 제대로 못 느끼며 불편한 마음으로 마주 앉아 밥을 먹고 사람 가득한 해운대를 걷다가 술집으로 들어갔다. 울지 않겠노라 결심했지만 내 마음과 생각을 덤덤하게 털어놓으며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그간 홀로 울던 순간들이 떠올라 애틋하고, 최선을 다 하지 못해 아쉽고, 다시 볼 수 없다는 생각에 마음이 텅 빈 느낌이었다. 그는 나에 대한 마음이 깊지 않았다는 듯 선을 긋는 말을 했고 나는 그를 원망했다.
“그런 마음이면 그때 날 놔줬어야지. 불만이 있으면 말해달라고 했고 노력할 마음이 아니면 놔달라고 했잖아.”
기회는 많았는데 왜 그냥 흘려보냈어. 서로 힘들게 왜 여기까지 오게 만들어. 원망하며 울었다. 그는 방어하는 말만 털어놓았다. 그의 속마음은 대부분 들을 수가 없었다.
[누나. 다음에 한번 보자. 서울 가서.]
[아니야. 서울로 올라가면 이젠 너랑 연락 안 해야지.]
나는 그와 작별 인사를 하고 다시는 보지 않겠노라 말했다. 더 이상 연민과 미련에 끌려가지 않으리.
[널 많이 좋아해 주는 남자 만나. 넌 좋은 사람이니까.]
[그래야지.]
부산에서 술에 취해 그가 했던 말과 행동으로 인해 다시 만날 수 없음을 알았고 정리를 못해 이따금 연락을 이어갔지만 정리를 할 것이라고. 그가 방황과 회피를 하는 동안 시들어갔고 홀로 생각할수록 부정적으로 흘러가 서로 소통에 있어 부딪혔다고 말했다. 그동안의 내 모습을 떠올리면 너무 힘들었다. 나를 갉아먹는 관계를 이어갈 이유가 더 이상은 없었다. 예전의 관계로 돌아가면 난 분명 후회할 것이다. 난 매 순간 서툴고 찌질했다.
부산을 떠나기 전 작별 인사를 마지막으로 남기고 떠나려 결심했다. 좋게 마무리할 수 있었는데 그는 만남 다음날 종일 연락을 했다.
[크루즈 내리면 몇 시야? 저녁 먹을래? 아니다. 점심 같이 먹자. 점심 먹고 가지… 그럼 이따가 회식 끝나고 잠깐 볼래?]
나는 점심을 같이 먹자는 말을 거절했다. 애써 좋게 마무리한 상태에서 일모의 미련을 품고 고단하고 싶지 않았다.
[누나. 지금 어디야? 이따 보러 갈게. 어디니.]
나는 의도적으로 연락을 피했고 그는 어딘가 불안해 보였다. 이제 마지막이라는 나의 말에 불안했던 건지 회식 자리에서 무리해서 마신 알코올에 흔들린 건지 그는 나에게 오겠다고 말했다.
[너 앞으로 당장 만날 사람 없지? 나랑 만나자. 난 너한테 갈래. 너랑 결혼할 거야. 근데 내가 설명할 게 많아. 그러니까 이따 잠깐 만나자.]
기분이 이상했다. 좋고 기쁘고 그립다 보다 앞선 감정은 불안함이었다. 그는 불안과 회피를 오가며 우리 관계에 대해 여러 차례 번복 했다. 이번에도 그럴 거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어 경계심이 가득 차올랐다.
[누나 있는 곳으로 내가 갈게.]
그는 회식 후 만취한 상태로 나타나 구부러진 발음으로 나에게 투정을 부렸다.
“누나는 나 좋아한다면서 너무 함부로 대했어.”
“미안해. 더 잘해줄 걸 표현에 서툴렀어.”
“누나 닮은 딸 낳고 싶어.”
불안했다. 그가 방황하고 회피하고 끝내자는 말을 쉽게 하고 나를 다시 붙잡을 때마다 그를 항상 믿었는데. 마지막으로 너를 믿어도 될까. 경계심 가득한 내 마음을 조금씩 열어도 될까.
“넌 이제 나랑 만나면서 나한테 집중할 거야?”
“누나만 변하지 않으면 그럴 거야.”
우리는 그날 만나지 말았어야 했다. 그 과정에서 그는 신뢰를 크게 잃었고 나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줬다. 충격이 커 눈물도 나지 않았다. 내가 믿었던 그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그가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이유를 말하면서도 내내 나를 탓하고 원망했다.
“확실하게 맺고 끊음을 했어야 하는데 우유부단하게 했네. 누나랑 얘기를 할 때 불편하고 맘에 걸리는 게 많아서 술 먹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대화를 하다 부딪히는 일이 많았고 평소엔 피하기 급급했어. 그래서 나는 아무 사이가 아니라고 생각하려고 했던 것 같아. 고쳐서 나가기엔 결혼까진 아니라고 생각이 들었나 봐. 내가 나로서 말을 못 하는 거지. 너는 좋은 사람이니까 널 정말로 좋아해 주는 사람 만났으면 좋겠다.“
아무 사이가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더 이상 연락하지 말라더니 그는 되려 종일 전화와 카톡을 했고 그 안엔 많은 이야기가 있었다. 평소엔 힘든 일이 많다며 회피하더니 종일 나를 탓하고 원망하고 불만을 늘어놓았다. 아마 그게 그의 속마음이겠지. 나는 배신감이 차올라 그에게 화를 냈다.
“우리가 알고 지낸 세월이 얼만데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가 있어? 내 시간, 노력, 마음 전부 부정당한 것 같아. 나한테 미안함이 있긴 해? 넌 매번 말과 행동에 책임을 지기 싫은 거잖아. 이렇게 끝난 적은 처음이야. 진짜 최악이다.“
우리는 아름답지 않은 모습으로 서로를 찌르고 상처 주고 아프게 하며 싸웠다. 그는 심신이 매우 불안정해 보였고 나는 이내 화낼 힘이 없어졌다.
“홀연히 두고 떠난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연락을 계속해서 좋은 게 없을 거야. 둘 사이의 이야기를 하려고 하면 나는 계속 피하잖아.”
그는 나를 두고 홀연히 떠났다. 좋게 마무리할 수 있었는데 왜 나를 붙잡아서 우리 사이를 어그러뜨려. 분노에 손발이 부들부들 떨렸다.
“앞으로는 우유부단하게 하지 말고 책임질 수 있는 선택하길 바란다. 진짜 네 마음과 심장이 가는 대로.”
“누나, 미안해…”
정작 사과 한 마디가 필요할 땐 회피하더니 왜 하필 이 타이밍에 하는 거야. 개자식. 영원히 마주치지 말자. 속으로 온갖 욕을 끌어다 저주를 퍼부었다. 그 순간에 슬픈 건 최선을 다 하지 못하고 상처 준 것들이 떠올라서였다. 그는 종일 울었고 나는 마음속으로만 울었다. 한 동안 부산 여행은 어려울 것 같다. 시간이 지나고 지금보다 마음이 한결 편해지면 다시 부산 여행을 가서 다시 좋은 추억으로 덮고 와야지.
데이먼스 이어 - Busan
내게 남은 너의 향기가 이제는 희미해져서
나는 어떤 그리움으로 살아가야 하나
눈에 보이는 기억은 찬란하고 분홍빛을 띄어
내 눈에 비치는 모든 환상을 못 본 체 했었네
나의 주변에는 너와 비교되는 것이 없어서
나도 모르게 누구를 만날 때마다 빗대어 보고
쉬운 만남과 이별은 한 번도 내겐 없었는데
텅 빈 곁을 채우기 위한 나쁜 생각을 해
아, 아아
푸른 바다가 반짝인 어느 날
아, 아아
그대 식은 손을 잡고
아, 아아
눈을 마주치다 입을 맞췄던
다신 오지 않을 그날을 나는 잊지 못할 낯선 그리움으로
시간이 약이라는 건 누가 뱉은 거짓말이야
사랑은 사랑으로 잊어간다는 뻔한 가삿말도
나의 시간과 기억은 그대로
거기에 멈춰서
굳어져가네 잃어져 가네
난 여전히 너의 자리에 서있어 니가 알던 모습관 달라도
아무리 다른 길을 다시 돌고 돌아도 나도 모르게 너에게 향하네
아, 아아
푸른 바다가 반짝인 어느 날
아, 아아
그대 식은 손을 잡고
아, 아아
눈을 마주치다 입을 맞췄던
다신 오지 않을 그날을 나는
잊지 못할 낯선 그리움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