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어떤 문장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그를 담은 문장은 어떤 모습일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귀여운 단어들을 모두 주고 싶다가도 위로의 말이 꼭 필요할 것 같아 문장을 완성하지 못했다.
그와 함께 한 일상은 선물 같았다. 그는 나에게 다채로운 경험을 선물했다. 새로운 공간, 새로운 풍경, 새로운 온도, 새로운 음식 등. 나는 그가 선물한 모든 경험 속에서 풍요로움을 발견했다. 그와 처음 탄 2인용 자전거 위에서 본 한강 풍경은 걸을 땐 느끼지 못했던 바람의 온도와 반짝이는 야경이 함께 했다. 몇 년 만에 방문한 춘천에선 유난히 느리게 흘러가는 강의 물결과 덩달아 느린 구름이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우리는 한강 산책을 즐겨했는데 함께 맞이한 노을과 바람은 하루도 빠짐없이 포근하고 상쾌했다. 나는 그의 옆에서 종일 웃었다. 즐겁고 편하고 설레고 행복해서 매일 생글생글 웃었다.
“서로 잘 알고 편하고 잘 맞는 10년 된 남자친구가 내 앞에 나타나면 좋겠어.”
내가 항상 하던 말인데 나의 인생에 그가 나타났다. 그는 나를 좋아하는 게 꿈같다고 말했다.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 그는 안정을 중요시하며 안정을 위해 묵묵히 노력하는 사람이다. 나는 안정을 위한 노력을 중요시하며 불안정한 현실 속에서 노력하며 안정을 느끼는 사람이다.
“우리가 2015년도에 결혼했으면 어땠을까? 그땐 걱정 없이 즐거웠는데.“
“우리가 함께면 당연히 재밌지. 그때 나 신규 간호사로 일할 때야.”
“안 되겠다. 그때 난 학생인데 누나가 나 먹여 살려야 하잖아. “
“못할 거 뭐 있어. 일찍 결혼하면 그런 것쯤 감수해야지.”
“그럼 누나가 내 학교 근처에 있는 병원에 취직했겠지?”
나는 도서관에서 공부하느라 집에 늦게 들어오는 남편을 기다려야겠다며 웃었다. 내가 가장이 되어 돈을 벌면 되는 것이다. 그가 공부하느라 바쁠 땐 공부에 집중하도록 돕고 내가 일하느라 지칠 땐 그가 나를 위로해 주고. 한참 어린 20대 부부가 되어 서로의 성장을 지켜보며 응원해 주는 것도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누나. 나랑 결혼하면 좋을 것 같지 않아?”
“당연하지. 재밌고 잘 맞고 다정하고.”
“내 상황이 이런데 결혼은 할 수 있을까.”
“결혼을 하든 연애를 하든 난 너 안 떠나.”
불안함이 그를 갉아먹는 게 안쓰러웠다. 나는 그에게 모든 것을 혼자 짊어지거나 현실을 너무 무겁게 생각하지 말라고 말했다.
“내가 이렇게 불안정하게 구는데 괜찮아?”
“괜찮아. 네가 불안정한 이유를 말해줬고 우리 사이를 흔들리게 하는 게 아니잖아. 사람은 다 부족한 부분이 있지.”
“누나가 이런 게 쌓여서 정리할 것 같은데.“
“힘들 때 사람 버리는 거 아니랬어.”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사이니까 괜찮아. 서로를 지키는 사랑의 힘은 분명 한없이 깊다.
‘굳이’를 붙이면 사랑이 완성된다.
그는 당직 내내 2시간 쪽잠을 자고도 내 생일을 축하하겠다며 밤 12시까지 깨어 있었고,
저녁을 먹기 위해 식당에 가서 메뉴가 나오기 전부터 내가 좋아하는 케이크를 부랴부랴 사다 줬고,
밤 출근을 하는 나를 위해 병원까지 바래다주며 찰나의 시간이라도 함께 했고,
빵을 좋아하는 나를 위해 퇴근길에 자전거를 타고 빵을 사다 줬고,
여행을 가고 싶다는 말에 온갖 여행지를 찾아보며 모든 계획을 맡겨만 달라고 말했다.
나는 퇴근 후 힘들어하는 그를 위해 발마사지를 해줬고,
건강한 음식을 먹었으면 하는 마음에 흥미 없던 요리를 했고,
샌드위치를 한가득 만들어 그의 병원 앞에 찾아가 깜짝 선물을 했고,
그가 아플 때 죽과 비타민을 배달해 줬고,
어머님과 다퉈 마음이 안 좋다는 말에 화해하라며 꽃다발을 선물했다.
우리는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을, ‘굳이’ 하면서 사랑을 키워갔다. 추억하면 매 순간이 행복했다.
1.
“내가 살 뺄 수 있게 도와줘. 누나가 내 몸을 만들어줄 수 있다면 붙잡히는 것도 괜찮아. 날 휘어잡는 거 누나라면 가능할 듯.”
시간을 쪼개 운동을 하고 식단을 지키는 나를 보며 ‘그렇게까지 해야 해?’ 하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누나처럼 의지가 강한 여자랑 결혼해야 돼.’라고 말했다. 함께 운동을 하고 살을 빼게 도와달라는 말에 나는 의지가 활활 불타서 두루 조언하며 계획을 세웠다. 스트레칭 영상을 숙제로 내주면 인증샷을 보내고 난 그를 칭찬했다. 하지만 세상엔 맛있는 게 너무 많고 그는 운동이 익숙지 않다.
“내가 살 빼는 것보다 누나가 살찌는 게 빠를 것 같아. 누나를 살찌워야겠다.”
그는 타락하기 아주 좋은 맛이라며 코스트코 치즈케이크 앞으로 날 데려갔다. 커다란 코스트코 치즈케이크를 사이에 두고 사이좋게 나무젓가락으로 퍼먹었다.
뱃살 적립하기 좋은 밤 9시. 나로선 상상만 하던 것을 그와 함께 했다. 귀여운 네가 1g이라도 사라지는 게 싫어. 그와 함께 할 땐 행복한 돼지 모드가 됐다. 결국 우리의 다이어트는 아주 잠시만 미루는 걸로.
2.
그가 우리 집에 처음 왔을 때 가장 먼저 했던 말은 ‘세탁기 문 열어놔야지. 습하잖아.’였다. 그는 세탁기 문과 세제 투입구를 열고 젖은 수건을 꼼꼼하게 말리며 화장실 슬리퍼를 곱게 세워 물이 빠지도록 놓았다. 내가 놓친 것들이었다. 그러나 사용한 화장지나 작은 쓰레기 중 절반은 쓰레기통에 들어가지 못했으며 옷가지는 널브러져 놓았다. 바닥에 종종 물을 흘렸고 사용한 물건은 제 자리를 찾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역시 넌 뒷정리에 약해.”
“누나가 치워주면 되지.”
“내가 이미 치우고 있지.”
그가 남긴 흔적을 정리하는 나. 그는 나의 이런 모습을 좋아했다. 난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우리의 모습이 좋았다. 나는 내가 키우고 싶은 아들 같은 귀여운 남자를 좋아하고 그는 잘 케어해 주고 휘어잡을 수 있는 엄마 같은 여자를 원했다.
“누난 진짜 내 엄마 같아. 어머니라고 불러야겠어.”
그러니까 우리가 천생연분이지.
3.
그는 불만이 있을 때 내가 알아주길 바라며 투정을 부리고 온몸으로 화가 난 티를 내며 입을 쭉 내밀었다. 그는 내가 얼마나 편한 건지 온갖 장난을 쉼 없이 던지며 자연스럽고 솔직한 모습과 치부까지 다 보여줬음에도 이따금 멋있어 보이고 싶다고 말했다. 서프라이즈로 그를 만나러 퇴근길에 마중 나간 날. 면도를 못 해 수염이 거뭇, 렌즈도 못 꼈다며 내내 투정을 부렸다. 나는 그런 그의 모습이 귀여워 눈에 하트를 장착하고 그를 바라보았다.
“누나. 이런 모습을 왜 귀여워해. 이런 거 좋아하지 마. 안돼.”
자신의 모습이 부끄럽다며 눈도 못 마주치고 틱틱거리는데 그 모습마저 귀여워 보였다.
나는 침, 주사, 바늘 모든 뾰족한 것을 무서워하는 사람이다. 내가 찌르는 건 겁 없이 훅훅 찌르는데 내가 찔리는 것엔 도무지 면역이 생기지 않았다. 그는 이직을 하고 연습을 해야 한다며 나를 만날 때마다 침을 들고 나타났다. 나는 무서워서 도망 다니기 바빴다.
“남들은 돈 주고 맞는 건데. 남자친구가 공짜로 놔주는데 좋아해야지.”
“나는 침이 너무 무서워.”
“내가 적응을 잘해서 돈을 벌려면 누나가 연습 상대가 되어줘야 해!”
춥다거나 손이 시리다고 하면 ‘침 맞으면 돼.’라고 말했다.
“다 누나를 위해서야!“
질투가 많아 전 남친들과 했던 것들을 언급하며 ‘왜 나랑은 안 해. 침 맞아줘. 질투 시작!‘이라는 말을 자주 했다. 결국 난 그에게 내 몸을 맡겼다. 집에서 밥을 먹다가, 마주 보고 앉아 이야기를 하다가, 식당에서 족발을 먹다가 침을 맞아야 했다. 두피, 얼굴, 허벅지, 손목, 종아리 등등.
어쩌겠나. 널 좋아하는 게 내 운명인 걸.
4.
그는 장난스러운 말과 행동 안에서도 깊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다. 우리의 마음을 확인하고 새로운 시작을 했을 때부터 종종 관계에 대한 질문을 했다.
‘누나는 나랑 연애하고 이전과 달라진 게 있어? 나를 생각하는 거나, 마음 가짐 같은 것들.’
‘누나는 나의 어떤 면 때문에 좋아? 이런 말 하면 누나가 떠나갈까 봐 걱정되지만 왜 나를 좋아하는지, 왜 만나는지 이런 걸 생각해 보면 좋겠어.’
서로를 향한 마음이 어떤 건지, 어떤 모습이 좋은지, 어떤 모습을 바라는지. 끊임없이 고찰하고 소통하기를 원했다. 서운한 것이 있을 땐 자신이 어떻게 느꼈는지 어떤 모습을 바라는지 설명했다. 나는 그런 부분이 입력되면 인지하고 노력했다. 그는 나의 작은 노력에도 기뻐했다. 덕분에 큰 트러블 없이 관계를 이어나갔다.
“사랑해. 멋있어. 귀여워. 이런 건 전여친들한테도 들었던 것들인데. 그런 거 말고 특별한 거 없을까? 다들 하는 똑같은 말에는 힘이 없잖아.“
그는 ‘사랑해.‘라는 말이 어색하다고 했다. 대신에 여러 가지 언어와 행동으로 자신만의 표현을 했다. 원하던 이상형이라거나 엄마 같은 존재라거나 누구와 결혼해도 잘 살 것 같아서 질투 난다고 말했다.
“내가 누나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를걸.”
“나도 좋아해. 넌 어느 누구와도 대체할 수 없는 소중하고 특별한 존재야.”
“그건 어느 누구도 대체할 수 없지.“
나한테는 그와 비교되는 것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