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이별엔 헤어짐이 없었다. 끝맺음 없는 감정들로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고 애써도 돌고 돌아 결국 그 자리였다. 다음 이야기를 기다리는 문장처럼 커서가 깜빡이고 있었다. 그는 힘든 와중에도 내가 박혀있었고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현실의 고통에 극심한 괴로움이 차오를 때마다 자책했다.
‘누나. 그만하자. 이제 절대 연락 안 할 거야.’
‘나 말고 더 능력 있고 좋은 사람 만나.’
‘왜 나한테 와서 고생하려고 해. 우린 어차피 못 만나.’
그는 고통스러울 때마다 나와 끊임없이 이별했고 나는 준비 없이 이별의 말을 들었다. 그는 그만하자는 말을 하고 되려 나를 붙잡았다. 후회인지 유기 불안인지 알 수 없었다. 그는 모든 걸 단절하고 도망치려다가도 다시 나를 찾아왔다. 그에겐 내 존재마저 스트레스였겠지.
“사람들은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사는지 몰라. 그냥 묻고 사는 거야. 난 누구한테도 좋은 사람이 될 수 없어.”
“자책하지 않아도 돼. 내가 아는 넌 좋은 사람이었어.”
“누나한테 미안한 게 너무 많아.“
평화로운 안정이 매우 중요한 사람인데 불안정한 현실에 괴로워했다. 낮아진 자존감이 그를 괴롭힌 탓이었다. 그리고 나는 매번 그 자리를 맴돌았다. 기다리는 것인지 떠나지 못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그에 대한 믿음은 강력했다. 나는 준비 없는 이별에 허우적거렸다. 운동을 하다 문득 그가 떠올라 넋을 놓고,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지난 연락을 곱씹고, 그가 좋아하는 음식을 보며 마주 앉은 테이블을 그렸다. 그가 자책하며 나의 손을 놓으려 할 때마다 모든 문제점을 나에게서 찾고 덩달아 자책했다.
나는 헤어짐의 말을 꺼내는 것을 어려워했다. 누굴 만나든 헤어짐으로 가기 전 일모의 후회도 남기기 않고자 무수한 노력을 하려 했다.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 잘해주고 더 이상 여력이 없을 때까지 도달해야 미련 없이 이별할 수 있었다. 그런 나였음에도 그에겐 그러지 못했다.
‘내가 언제까지 이해하고 받아줘야 해?’
‘힘들어서 더 이상 못 하겠어. 날 너무 초라하게 만들어.‘
‘너랑 이별을 너무 많이 해서 지친다.’
‘널 믿고 좋아하면 결과는 항상 이런 식이야.’
‘널 떠올리면 힘들어서 한동안은 아무도 못 만날 것 같아. 이제 누굴 믿고 마음을 열겠어.‘
그는 나의 말에 상처를 받아 그 상처를 곱씹으며 울었고 나는 준비 없는 이별과 전하지 못한 마음에 아파서 울었다. 더 이상 마음을 열 수 없다고 느꼈을 땐 자라나는 괴로움이 나를 괴롭혔다. 최선을 다할 수 있었더라면 미련이 없었을까. 노력할 기회조차 부여되지 않아 끝내 손을 놓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그에게 커다란 실망이 쌓여가며 내가 좋아한 사람은 그가 아니라 내가 만들어낸 허구인가 생각했다. 그래서 그를 원망하고 곱지 않은 말들이 흘러나오고 자책하기를 반복했다. 우리는 연애보다 이별한 기간이 길었지만 내내 연락이 끊기지 않았다. 미운 정이 깊게 들어 감정싸움을 하다가도 서로의 안부를 묻고 걱정했다.
그는 상실을 겪을 때마다 그가 만든 지옥으로 들어가 동굴 속에 웅크리고 숨어서 허우적거렸다. 그곳에서도 상황을 해결하려 노력하고 울고 자책하고 다시 폭풍우와 맞서 싸우고 지치기를 반복했다. 그러는 동안 그의 시야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나는 그런 그를 보며 걱정하다 아무 사이가 아니게 된 현실을 받아들이려 부단히도 노력했다. 그는 갑자기 사라졌다 나타나 알 수 없는 말들을 늘어놓으며 한숨을 푹 쉬었다. 수많은 이별과 갈등과 만남 속에서 서로의 마음을 활짝 여는 동안 그의 이야기를 하나씩 털어놓았다.
”누나. 내가 한동안 연락이 잘 안 될 거야.“
“나 신경 쓰지 말고 잘 해결하고 와. 다음에 맛있는 거 먹자.”
“내가 지금 제정신이 아니야…”
“네 옆에 항상 누나가 있어. 알지?”
“누나한테 상처 줘서 벌 받나 봐. “
그는 동굴로 들어가기 전 그가 겪은 아픔을 공유하고 양해를 구했다. 낮아진 자존감에 자책하며 슬퍼했다. 그곳에서도 폭풍우를 맞으며 홀로 헤엄치느라 하염없이 허우적거리고 있겠지. 누군가의 상황이 안쓰럽고 마치 내 아픔인 것처럼 힘든 감정을 경험한 건 처음이었다.
“네가 얼마나 노력하는지 알아서 더 슬퍼.“
“누나가 왜 울어. 더 대담하게 굴어야지. 나도 여자친구가 힘든 상황이면 더 덤덤하게 말할 거야.”
그는 내가 힘듦에 동요되어 눈물 흘리는 것을 싫어했다. 그래서 홀로 울었다. 그는 혼자 있기보다 의지할 누군가가 필요한 사람인데 그곳에서 홀로 얼마나 위태롭게 싸우고 있을까. 다행스럽게도 나는 혼자만의 시간을 나에게 집중하며 잘 보내는 편이다. 그가 홀연히 사라질 땐 모든 이유를 나에게서 찾느라 괴로웠지만 상황을 설명하고 양해를 구할 땐 그를 기다리는 시간이 괴롭지 않았다. 그의 힘듦을 눈치 보지 않고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 한 명쯤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 존재가 내가 되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묵묵히 서로의 곁을 지키는 것이 그간의 시간을 헛되지 않게 하는 길임을 알기에.
“내가 누나를 힘들게 하는 동안 어떻게 버텼어?”
“그땐 강력한 믿음이 있었어.“
“우린 만약 헤어지더라도 후회 없이 하자.”
우리의 이별엔 헤어짐이 없었다. 이별이라 말해도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다. 예전의 나는 이별하면 남자친구의 사진을 보이는 대로 삭제했지만 그의 사진은 한 장도 지우질 못 했다. 그가 나를 떠났을 땐 아픈 문장이 되었고, 화해를 요청한 뒤엔 먹먹한 문장이 되었으며, 서로의 깊은 마음을 확인했을 땐 풍성한 문장이 되었다. 마음의 온도가 차오르는 동안 우리는 그 자리를 맴돌고 있었기에 다시 마주하는 건 실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