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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이앤선생님 Jan 22. 2022

교사 아내가 이해하기 어려운 의사 남편의 특징

남편의 휴대폰 갤러리를 열어보았더니.

의사 남편의 휴대폰 갤러리에는 무엇이 있을까. 

나는 남편의 휴대폰에 별로 관심이 없는 사람이다. 남편이 워낙 휴대폰을 오픈해 놓는 스타일이기도 하고 주로 입원 환자 치료에 관한 연락이 대부분이라는 걸 알기에 잘 들여다보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나는 남편의 휴대폰 갤러리를 보고 깜짝 놀랐다.


"오빠, 이게 뭐야?"

"아...... 그거......"


남편은 뒤통수를 긁으며 머쓱해했다. 그 사진은 바로. 

"정수리 사진이네. 정수리는 왜 찍는 거야?"


스크롤을 쭉 내려보니 매일매일 찍은 정수리 사진이 있었다. 남편은 눈꼬리를 내리고 슬픈 눈으로 얘기했다. 

"사실 자꾸...... 머리가 빠지는 것 같아. 나...... 탈모약 먹어볼까?"

"어디 봐 봐, 그렇네. 정수리 쪽이 약간 비었네. 그래도 언듯 보면 아무도 몰라. 그러니까 걱정 마."

나는 남편을 위로하며 연이어 말했다.

"그래도 신경 쓰이니까 약을 먹어보는 게 어때? 나 대학생 때도 복학생 오빠들이 탈모약 먹는 거 봤어. 나 같으면 스트레스 안 받고 그냥 약 먹을래."


남편은 어깨를 축 내리고 기운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도 고민되네. 약은 먹기 싫은데......"


남편의 얼굴은 복잡해 보였다. 아마 약에 관한 부작용이나 임신 시 태아에게 안 좋은 영향이 있을까 봐 걱정하는 듯했다. 몸에 조금만 이상이 생겨도 병원에 쪼르르 달려가서 항생제를 처방받아먹는 나와는 너무나 다른 모습이었다. 

"스트레스받느니 그냥 먹어. 젊어 보이면 환자들에게도 좋은 인상을 주지 않겠어?"

"아니. 환자들은 나이 들어 보이는 의사를 선호하지. 신뢰감이 있어 보인달까...... 그래서 선배 교수님들 중에는 염색을 안 하시는 분도 꽤 계셔."


나는 남편의 말을 듣고 흠칫했다. 주변의 선생님 중에는 흰머리를 일부러 염색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 그렇긴 하지. 의사는 어려 보이는 것보다 나이가 있어 보여야 신뢰감이 들긴 해. 하지만 그래도...... 먹는 게 좋지 않을까?"


남편은 또다시 우울해져서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리고 한참을 고민하다가 말했다.

"머리가 빠지기 시작한 건 몇 년 전 전공의 때 잠을 못 자고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부터였으니까, 지금부터 스트레스를 관리하면 다시 되돌아오지 않을까? 한 달만 더 생각해 볼게."

"그래. 걱정 마. 다 잘 될 거야."



남편의 생활은 항상 불규칙했다. 전공의 3년 차 때 그의 스트레스는 극에 달했었다. 항상 잘 시간이 부족해서 눈 밑이 퀭했고 큰 수술을 앞둔 날에는 손이 달달 떨려서 하루에도 5,6잔씩 마시던 커피를 한 모금도 마시지 못했다. 밥은 항상 끼니를 놓쳐서 인스턴트로 대충 때웠고, 환자가 증상이 나빠지는 날에는 자신의 잘못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며 맵다고 소문난 떡볶이를 주문해 그 매운 떡볶이들을 한 입에 밀어 넣고 눈물을 찔끔찔끔거렸다. 그리고 머리카락이 얇아지고 하나둘씩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다행히 몇 년 뒤 교수가 된 그는 마음껏 잘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 하지만 매일 규칙적으로 정해진 시간에 잠을 잘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병원에서 새벽까지 수술하거나 밤늦게까지 일하는 날에는 여지없이 쪽잠을 자야 했다. 그래서 나는 수술이 없는 날에는 무조건 집에 일찍 가서 잠을 자라고 잔소리를 했다. 하지만 그는 일찍 퇴근한 날에도 병원 근처에 있는 숙소를 내버려두고 개인 연구실에서 잠을 잘 때가 많았다. 나는 일터와 잠자리를 분리하지 않는 남편이 약간 걱정스러웠다. 

나는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빠, 오늘은 어디서 잘 거야?"

"글쎄, 집에서 잘 수도 있고 연구실에서 잘 수 도 있고... 그건 왜?"

"잠은 집에서 자지 그래? 연구실에서 자면 불편하지 않아?"

"아니 연구실에서 자면 바로 출근할 수 있어서 편한데......"

"?????"


나는 병원을 집처럼 생각하는 남편이 잘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야근할 거리가 있어도 집으로 서류를 싸들고 퇴근시간이 되자마자 땡 하고 집으로 달려가는 스타일이었다. 일단 일터에서 분리된다는 것 자체가 행복했고, 따뜻한 집에서 잠옷을 입고 간식을 먹으며 업무를 처리하는 게 추운 학교에서 불편한 옷을 입고 일하는 것보다 훨씬 편안했기 때문이었다.


"따뜻한 집에서 잠옷 입고 일하면 얼마나 편한데. 이제 집으로 가는 게 어때?"

"여기 따뜻한데? 보일러 안 켜놓은 집이 더 추울걸? 그리고 지금 수술복 입고 있어서 편한데? 수술복이 얼마나 편한데~ "


나는 남편의 대답에 할 말을 잃어버렸다. 그는 병원을 내 집처럼 생각하는 게 분명했다. 하지만 그에게 뭐라고 구박할 순 없었다. 그저 성실하고 책임감 강한 그의 삶의 방식이었으니까. 


"으응. 그, 그렇구나. 그럼 오늘은 연구실에서 뭐하려고?"

"쓰던 논문마저 마무리해야지."

"눈문 그거 왜 하는 건데? 논문 안 쓰면 병원에서 잘리는 거야?"

"아니. 그렇지 않지. 그냥 쓰고 싶어서 쓰는 거야."


석사 졸업논문도 쓰기 힘들어서 몇 달 동안 끙끙댔던 사람으로서 논문을 쓰고 싶어서 쓴다는 남편이 도무지 이해가지 않았다.  


"오빠는... 그게 재밌어?"

"응. 이건 내가 쓰고 싶어서 쓰는 논문이라 재밌어."


남편은 쓰고 싶은 논문이 있었다. 환자가 증상이 있어서 검사를 했을 때 여러 검사를 받지 않고 하나의 검사만 받아도 인공지능이 이미지를 분석해 문제점을 찾아내도록 하는 그런 프로그램 개발에 관한 논문이었다. 지난해에는 그 기술로 특허를 등록했고, 올해는 그 논문을 세계적인 의학 학술지에 올리는 게 그의 목표했다. 


"그 논문을 학술지에 올리면 뭐가 좋은데?"

"좋은 점이라....... 내 인생의 최대 업적이 될 수도 있는 거잖아. 환자들도 추가로 검사받지 않아도 되니까 얼마나 좋아. 그러니까 기분이 좋지.^^"


내가 보기엔 의사들은 욕심이 많다. 특히 대학병원 교수님들이 그렇다. 다른 욕심은 없어도 공. 부. 욕. 심이 많다. 그렇게 평생 공부를 하면서 살았어도 또 공부를 하고 싶을까. 의사 남편을 둔 가장 큰 장점은 아마 공부 욕심이 많은 사람을 평생 옆에 둘 수 있다는 것이다. 그의 긍정적인 욕심은 옆사람까지 욕심나게 만드는 능력이 있으니까.



한 달 후 어느 날 남편은 해맑은 목소리로 나에게 말했다.

"나 이제 탈모약 먹을 거야!"

나는 갑자기 변한 남편의 심경이 궁금했다.

"좋은 생각이야. 그런데 갑자기 왜.......?"

"어제 내가 동료 교수님한테 탈모 때문에 고민이라고 털어놓으니까, 그분도 '저도 탈모가 있어서 약 먹어요.'라고 하시는 거야. 게다가 과장님도 드시고 계시고 다른 교수님들도 다 복용 중이시래! 나 빼고 다 먹고 있던 거였어. 그래서 나도 당장 먹으려고."

남편은 아이처럼 헤헤 거리며 웃었다. 남편은 주변 교수님들의 탈밍아웃으로 든든한 동료를 얻은 모양이었다. 나는 그 모습이 귀여워서 빵 터졌다. 



남편은 그렇게 탈모약을 복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본인도 건강의 중요성을 깨달았는지 1년간 수면시간을 잘 지키고 식사를 잘 챙겨 먹었다. 다행히 남편은 다시 풍성한 머리털을 되찾았다. 결국 그는 탈모약을 완전히 끊는 데까지 성공했다.




지금 남편 휴대폰 갤러리에 정수리는 사진은 더 이상 없다. 오붓한 우리 둘의 사진만 있을 뿐이다.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남편과 그 옆에서 공부를 따라 하는 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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