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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이앤선생님 Jan 16. 2022

의사 남편과 교사 아내의 차이점

다른 직업의 두 사람.

주말부부가 기다리고 기다리는 금요일. 남편이 집에 돌아오는 날이다. 나는 보글보글 김치찌개를 끓이고 남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나: 오빠! 오빠가 좋아하는 김치찌개 했지요~ 기차 탔어?
남편: 아니. 나 오늘 못 갈듯ㅜ
나: 왜?
남편: 응급환자가 와서 수술하고 가야 할 것 같아ㅠ 90세 할머니 셔. 오늘 꼭 해야 해. 내일 회진 돌고 갈겡. 나: 나: 아이구, 어쩔 수 없지. 근데 연세가 많으셔서 어쩌나ㅜㅜ 잘해드리고 와.
남편: 웅웅. 


남편은 365일 일을 달고 살았다. 응급 수술을 하는 날에는 밤에 제 때 퇴근하지 못했고, 그다음 날에도 수술한 환자의 경과를 보느라 집에 늦게 돌아왔고, 집에 와서도 환자 상태를 유선으로 보고받았다. 전문의 자격증을 따면 응급콜에서 자유로워질 줄 알았건만 교수가 되고 나서도 수시로 콜이 왔다. 그래도 나아진 점이 있다면 남편과 연애할 때는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다가 응급콜을 받고 뛰쳐나가곤 했지만 지금은 적어도 뭘 하다가 뛰쳐나가는 일은 없다는 거다. 


내가 보기엔 남편은 휴가가 없었다. 휴가가 있긴 한데 내가 보기엔 휴가답지 않은 휴가였다. 휴가란 자고로 휴대폰을 꺼버리고 오직 어딜 가서 뭘 먹을지를 생각하는 것이었건만 남편은 신혼여행 때를 제외하고 항상 병원 콜이나 동료 교수들의 도움 요청 콜을 받았다. 항상 "0 교수님, 휴가 잘 보내고 계시죠? 휴가인 줄 알지만...##$%^%&"으로 시작하는 전화였다. 


하지만 한 번도 남편은 전화를 받고 귀찮거나 기분 나쁜 티를 내지 않았다. 한 번은 남편에게 동료 교수나 전공의에게 수시로 걸려오는 전화가 귀찮지도 않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그랬더니 남편은 자신도 수시로 도움을 요청하기 때문에 괜찮다고 했다. 교사들은 서로 각자의 교실을 운영하며 서로 도움을 요청할 일이 많지 않은 반면 의사들은 동료들에게 서로 큰 도움을 받는 다고 했다. 수술 시 사고가 나지 않도록 수술 중간에 도움을 요청하기도 하고, 서로 근무를 대신 서주거나, 희귀 케이스의 환자가 오면 서로 치료방향에 대한 의견을 모아 도와줬다. 


그래서일까 남편은 휴대폰을 달고 다니는 사람이다. 병원에서 온 연락을 놓칠까 싶어 모든 메시지와 전화를 즉시 확인했다. 아내 입장에서 남편의 그런 점에서는 아주 편리했다. 하지만 정작 답장은 한참 뒤에 오거나 무응답 할 때가 많았다. 내 메시지를 확인하긴 했는데 다른 일을 하느라 답장하는 걸 깜빡했다는 거였다. 그럴 땐 항상 "ㅠㅠ 메시지 보냈었네. 미안"하면서 사과를 하곤 했다. 


반면에 나는 휴대폰을 되도록 멀리하고 싶은 사람이다.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쇼핑을 하고 영상을 보는 걸 좋아하긴 하지만 가족이 아닌 누군가 갑작스럽게 연락 오는 게 익숙지 않다. 남편은 뭘 먹다가도 걸려온 전화를 덥석덥석 잘 받던데 나는 모르는 전화가 오면 무슨 일일까 싶아 바짝 긴장한다. 대체로 퇴근 후 학교나 학부모에게 걸려온 전화는 대체로 좋지 않은 일이 발생했음을 예고하기 때문이다.  







남편은 다음날 오후에 집에 돌아왔다. 녹초가 된 모습이었다. 나는 남편에게 영양제를 흔들며 말했다.

"오빠, 이것 봐. 내가 건강을 위해 이것저것 샀어. 이건 면역에 좋은 거고, 이건 항산화 작용에 좋은 거고, 이건 장누수에 좋은 거고, 이건 당 독소를 줄이려..."

"응? 뭐라고? 장... 누수? 당... 독소?"

"응. 그 유튜브 봤는데 내가 장누수 증후군에 딱 맞는 거 같더라고. 난 당 독소도 높은 게 분명해."

"????"


 나는 온갖 영양제를 챙겨 먹는 걸 좋아했고 귀가 팔랑팔랑거려서 누가 먹어보고 좋다고 하면 보약스러운 느낌이 음식들을 자주 구매했다. 하지만 남편은 논문을 근거로 확실하게 밝혀진 연관관계가 없는 것들은 모두 상술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남편은 팩트를 체크하고, 정확한 증거 및 근거가 없는 이상 중립을 지키는 걸 중요하게 여겼다. 내가 "음~ 그건 아마~ 00일 거야."라는 식의 추측을 내놓으면 남편은 바로 백과사전을 검색해서 사실 여부를 판단했다. 예를 들어 "스페인 독감의 치사율은 5%였대."라고 말하면 남편은 자신이 모르던 새로운 사실일 경우 그 말이 사실인지 직접 찾아봤다. 남편은 계산도 빨라서 내가 대충 말을 지어내는 것 같으면 머릿속으로 숫자를 계산해서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그래서 나는 남편에게 정확하지 않은 사실을 사실처럼 떠벌리지 않도록 주의한다. 그랬다가는 팩트 체크 공격을 당하게 될 테니까.  









남편은 녹초가 되어 집에 돌아와서도 황금 같은 주말도 공부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최근에는 줌으로 학회에 참석해서 새로운 의료기술에 대해 공부했다. 남편이 공부하는 자료는 99.9% 영어로 된 논문 혹은 책이었고 남편은 매일 영어 잘하는 사람이 부럽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남편은 영어를 숙명처럼 여겼고 매일 영어에 시달리며 괴로워했다. 

반면  초등 영어는 회화 중심이기 때문에 나는 학문적인 영어가 아닌 회화 중심 실용 영어를 연습했다. 그래서인지 영어가 매우 재밌었다. 영어로 소설책 읽는 것도 재밌고, 영어로 넷플릭스를 보는 것도 즐겁고, 외국인과 대화하는 것도 신났다. 남편은 그런 나를 보며 "영어가 즐겁다니 믿을 수 없어!"라고 쳐다보곤 한다.


나는 남편에게 이제 그만 공부하고 그냥 딩가딩가 놀면 안 되냐고 물었다. 하지만 남편은 의학 기술이 확확 진보되는 게 피부로 느껴진다며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다. 맞는 말이긴 한데, 내가 보기엔 남편은 그냥 공부하는 게 몸에 밴 사람인 것 같다. 나는 남편 앞에서 초등 교과지식은 몇 백 년 전부터 내려오던 것들이 대부분이라서 참 다행이라고 메롱메롱거렸다. 




초등교사인 나는 집에서도 시도 때도 없이 학습 송을 불러댈 때가 있다. 모둠 송, 수학송, 국어 송, 하교 송 등등 다양한데 대부분 내가 만든 것이고 내가 생각해도 내 노래는 가히 중독적이었다. 애들을 데리고 어딜 갈 때는 
"애들아 다 같이 가자미~가자미~"하고 흥얼거렸는데 집에서도 그렇게 흥얼거리고 다녔다. 남편은 이런 나의 모습을 매우 신기하게 쳐다봤다. 물론 밖에 나가서는 흥얼거리지 않는다. 그건 너무 창피하니까. 




결혼 후 몇 년의 시간이 흘렀다. 요즘에는 나도 남편이 내 말의 팩트를 체크하기 전에 내가 먼저 남편이 하는 말의 팩트를 체크하고 어깨를 으쓱거린다. 남편도 내가 흥얼거리는 노랫말에 중독이 됐는지 간호사분들 앞에서 "다같이 가자미~가자미~"라고 했다가 망신을 당했다고 한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 닮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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