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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이앤선생님 Jan 12. 2022

나는 친구가 없어서 빛나는 30대 교사

친구가 없어서 좋은점.

창의적 체험 한자 시간. 나는 교단에 칠판에 '竹馬故友(죽마고우),  管鮑之交(관포지교),  莫逆之友(막역지우)'라고 적었다. 그리고 우리 반 아이들에게 이렇게 얘기했다.

"애들아, 친구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보물 같은 거야. 학창 시절 사귄 친구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어. 선생님은 우리 반 친구들 모두가 친구가 되면 좋겠다. 자 그럼 이제 한자 노트 쓰기 시작!"

아이들은 고개를 숙이고 노트에 고사성어를 따라 적었다. 나는 교실을 한 바퀴 돌면서 아이들을 지도하다가 문득 창문에 비친 내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나 스스로에게 물었다.


'너는 정작 친구가 없잖아.'


그렇다. 나는 친구가 없다. 사람들은 나에게 왜 가장 빛나는 나이 친구들과 어울려 브런치를 먹으며 수다를 떨거나 함께 여행을 가지 않냐고 묻는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친구가 없어서 내 삶은 더욱 빛날 수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몇 가지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친구 관계에 감정이 휘둘리지 않으니, 아이들에게 화를 내지 않는 선생님이 될 수 있었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잘 가르쳐주는 선생님보다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선생님이 더 좋은 선생님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교사는 감정 컨트롤을 잘해야 아이들에게 정서적 안정감을 줄 수 있다. 그러나 교사도 사람인지라 가족들이나 애인과 다툰 날에는 아이들에게 웃으며 상냥하게 대하기 어렵다. 특히 내가 연애를 하던 20대는 그야말로 제2의 질풍노도의 시기였다. 남자 친구와 사이가 좋으면 자상한 선생님이었다가도 남자 친구와 대판 싸운 날에는 교실에 찬바람이 쌩쌩 불었다. 만약 남자 친구와 헤어지기라도 한 날에는 온 교실에 우울한 그림자가 드리웠다. 친구를 사귈 때도 그랬다. 여자들 사이의 시기 질투, 오해에 휩싸이는 날에는 안절부절못하지 못했고 혹시라도 모임에 나만 소외되는 느낌이 들 때면 한없이 기분이 가라앉았다. 하지만 더 이상 애인과 친구 관계에 에너지를 쏟지 않으니 매일 차분하고 안정된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같은 교사이지만 감정 기복이 너무 널뛰는 동료 교사를 보면 옆 교실에 있는 나까지 불안해진다. 어제는 하하 웃음소리가 나다가 다음날엔 큰소리가 쩌렁쩌렁 울리는 게 감정적으로 견디기 어려워서 다음 해에 다른 학년으로 지원한 적이 있다. 물론 내가 너무 예민한 탓이었지만 나처럼 모든 자극에 예민한 학생들도 꽤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둘째, 나 혼자 감정을 다스리는 법을 배웠다. 친구는 좋은 벗이지만 우리는 가끔 나도 모르는 사이 친구를 감정의 쓰레기통으로 만드는 실수를 하기도 한다. 혹은 친구의 조언에 매달려 하염없이 전화기를 붙잡는 밤을 보내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정서적으로 독립한 성인이다. 나 혼자서도 충분히 감정을 다스리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나는 감정이 요동칠 때면 그냥 펑펑 울어버리거나, 힘이 다 빠질 때까지 달리거나, 글을 쓰면서 마음을 정리한다. 그리고 하루에 적어도 5분은 꼭 눈을 감고 명상을 하며 마음을 깨끗이 비워낸다. 최근 목탁을 샀는데 비록 불교신자는 아니지만 아침마다 교실에서 목탁을 치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지는 걸 느낀다. 나는 이렇게 스스로 성장하고 있다는 걸 몸소 깨닫고 있다.



셋째, 자기 계발에 투자할 수 있는 여가시간이 많아졌다. 내가 이렇게 퇴근 후 브런치에 글을 쓸 수 있었던 것도 친구를 만나는 시간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요즘 단편동화 습작 연습을 하고 있는데 매주 친구들을 만나러 시내에 나갔다면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뿐만 아니라 아주 소소하지만 블로그도 하나 만들어서 개인적인 일상을 기록하고 있다. (브런치와는 아예 별개의 필명으로 활동 중이다.) 아직 글을 5개밖에 못써서 총 방문자 수가 60명을 갓 넘었지만 나만의 블로그가 성장해가는 모습이 기대되기도 한다. 글을 쓰는 시간이 늘어나는 만큼 글 쓰는 속도가 늘었다. 덕분에 원고 청탁이 들어와도 몇 시간 내에 뚝딱 쓸 수 있어서 참 뿌듯하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인간관계를 회의적으로 생각한다거나 친구의 중요성을 무시하는 건 아니다. 나는 매일 친구관계를 고민한다. 나의 친구관계가 아닌 '우리 반 아이들의 친구 관계를'. 

6학년 아이들의 감정은 왜 이렇게 복잡 미묘한지 담임인 나는 탐정이 된 것처럼 매일 머리채를 쥐어뜯으며 이렇게 아이들의 감정선을 추리하곤 한다. 

'미선이는 주연이와 친해지고 싶어 해. 그런데 주연이는 혜나와 더 친해. 혜나는 미선이가 중간에 끼는 걸 싫어해. 주연이는 두루두루 친하게 지내고 싶어 해. 미선은 혜나가 자길 미워한다고 생각해서 속상해. 이를 어쩌면 좋나......아아앙아~~~ 일단 세 명을 각자 상담한 후에 집단 상담을 돌려야겠다.'





나는 아이들의 한자 노트를 걷어 책상에 쌓아올렸다. 노트는 차곡차곡 성처럼 쌓아올려졌다. 나는 노트를 하나씩 꺼내 검사하면서 아이들을 생각했다. 

아이들에게는 친구가 세상의 전부이고, 아직 세상의 전부 인 게 당연할 거다. 이런 아이들에게 언젠가는 친구가 없어도 이 모진 세상을 우뚝 살아갈 수 있는 마음의 성을 을 길러주는 교사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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