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이앤선생님 Jan 22. 2022

교사지만 혼나고 싶진 않아요.

힘이 되어준 가족들을 말 한마디 

어느 날 오후, 나에게 이상한 문자가 왔다.


[국외 발신] ***님[결제] 인증코드:7**5
1,480,000000원[승인]
해외직구 배송 조회
고객센터 055-337-8187


누가 봐도 스미스 피싱인 이 문자. 내 이름이 버젓이 적혀 있는 걸 보고 나는 바보같이 속아 넘어가고 말았다. 얼마 전 해외 결제를 한 게 있어서 내 카드번호가 노출이 되었나 싶어 고객센터로 전화를 걸었다.


"해외직구 결제가 되었다고 문자가 왔는데요. 거기 어디 쇼핑몰이에요?"

"네 고객님. 저희는 샵투 샵입니다."

"배송 조회 좀 해주시겠어요? 결제 내역이 있다고 뜨는데 결제한 적이 없거든요. 배송지가 어디로 되어있는지 알려주세요."

"네~ 저희는 알려드릴 수가 없고 본인이 직접 조회해 보셔야 합니다."

"네? 거 참 이상하네요. 직원인데 배송 조회가 안된다고요?

"네~ 고객님 죄송합니다. 직접 하셔야 합니다. 링크를 보내드릴 테니 조회해보세요."


뭔가 이상했다. 본인이 직접 조회를 하라니? 하지만 나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사기꾼이 보내준 링크로 들어가 이름, 생년월일, 연락처를 입력하고 배송 조회를 했다. 그러자 루이뷔통 가방 구매내역이 나타났다.


"????? 아니, 이게 뭔가요???? 전 이런 거 산 적이 없는데요?" 

"네. 그렇군요. 고객님은 명의 도용을 당하셨습니다. 지금 바로 금융감독원 1332로 전화하셔서 신고하시기 바랍니다. 그렇지 않으면 고객님께 세금을 물릴 수도 있으니까요. 1분 뒤 금감원으로 연락하세요."

"네."


나는 전화를 끊고 바로 금감원으로 전화했다. 그리고 금감원 직원이 전화를 받았다. 진짜 금감원 직원이었다.

사실 그들의 수법대로라면 전화 가로채기로 금감원이 아니라 자신들이 받아야 했는데 아마도 악성 코드를 활성화시키기 전에 내가 금감원으로 즉시 전화를 해서 전화를 가로채지 못한 것 같다. 

"네 선생님. 보이스피싱을 당하셨군요. 지금 바로 휴대폰에 깔린 악성 바이러스를 지우고, 소액결제를 막은 다음, 선생님 명의로 금융거래를 하지 않았는지 조회해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까아앙암 짝 놀랐다. 그 길로 바로 삼성 서비스센터로 가서 바이러스를 지워달라고 했다. 하지만 서비스센터 측에서는 공장초기화밖에 방법이 없다고 했고 나는 집으로 돌아와 중요한 자료를 백업 한 뒤 공장 초기화를 돌렸다. 또한 모든 계좌를 전부 확인해 돈이 빠져나갔는지 확인하고 모든 인증서와 비밀번호를 싹 다 바꿨다. 하루가 통째로 날아간 날이었다. 



내 불안함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일단 내 계좌는 털리지 않았으나,  내 휴대폰에 남아있는 개인정보로 남편과 부모님 정보까지 다 넘어갔을까 봐 걱정이 되었다. 나는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시 한번 떨리는 순간이었다.  


"아빠...... 전데요. 저 보이스피싱당했어요. 돈을 뜯긴 건 아닌데 그래도 아빠 정보까지 털렸을까 봐 걱정이네. 하...... 죄송해요. 죄송한데 아빠 계좌 비밀번호도 좀 싹 다 바꾸고......."


나는 정말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아빠에게 '사기당하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 건강 챙겨야 한다, 남에게 돈을 함부로 빌려주면 안 된다. 등등' 매번 잔소리를 해댔고(교사 직업병이 어딜 가지 않는다) 잔소리를 할 때마다 책 한 권을 쓸 정도로 잔소리를 해댔고(아빠 귀가 먹먹해질 정도로) 잔소리했던 양을 다 세어본다면 도서관을 만들 정도로 얘기를 쏟아냈었는데 결국 사기를 당할뻔한 사람은 '나'였기 때문이다. 


"아빠...... 죄송해요. 진짜 하.... 할 말이 없네요. 제가 왜 그랬을까요."


나는 고개를 푹 숙이고 아빠에게 혼날 준비를 했다. 당연히 혼나야 마땅한 일이었다. 나는 교사다. 교사임에도 이런 아~주 전형적인, 누가 봐도 보이스피싱 같은 문자를 보고 사기를 당하는 건 부끄러운 일이다. 자신의 정보도 이렇게 쉽게 넘겨주면서 아이들 앞에서 개인정보보호에 대해 교육할 자격이 있는가. 나는 입에 침이 바싹바싹 말랐다. 아직 혼날 각오가 되어있지 않았다. 나 스스로가 바보 같아서 자책하기에도 버거웠다. 아직은... 아직 혼날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응, 딸. 알았어. 아빠가 얼른 바꿀게~. 놀랐겠네. 근데 조심해야지. 잘 조치했어?"

"네... 휴대폰도 싹 초기화하고 계좌도 점검했어요. 제가 바보 같았어요."

"그럼 됐어. 이따가 저녁 맛있는 거 먹으면서 쉬어."


아빠는 나에게 잔소리를 하지 않았다. 몇 달 전 아빠가 휴대폰 사기단들한테 넘어갈뻔했을 때 나는 아빠에게 전화를 열 번씩 해가면서 잔소리를 했었는데도 아빠는 나를 나무라지 않았다. 아빠에게 고마웠다. 

곧 엄마에게도 전화를 걸었다.


"엄마, 나 보이스피싱 사기당할뻔해가지고... 잘 대처하긴 했는데 혹시 모르니까 엄마 통장이랑 카드 막아둘 수 있어요? 번거롭게 해서 죄송해요. 엄마."

"아이고, 세상에 어째 이런 일이 다 있다니! 지난번에도 동네 아저씨가 2천만 원 뜯겨가지고 폐인 됐더라. 앞으로 조심하자. 엄마가 당장 막을게. 근데 너 괜찮니?"

"응. 엄마. 괜찮아요."


엄마도 나에게 아무 말하지 않았다. 오히려 나에게 괜찮냐고 물었다. 남편도 마찬가지였다. 남편은 십 년 전 실제로 돈을 뜯겨보기도 했다며 잘 대처했으니 너무 속상해하지 말라고 다독여줬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그날 밤. 나는 밤새 잠을 자지 못했다. 보이스피싱 카페에 들락날락하면서 혹시 내 정보가 다른 용도로 사용되지 않을까 하루 종일 걱정했다. 나는 다음날 좀비처럼 앉아 허공만 쳐다봤다. 잠을 자지 못해 하루 종일 헤롱헤롱 했고 죄책감에 스스로를 탓했다. 그러던 그때 동생에게 메시지가 왔다.


동생: 언니... 괜.... 찮아?

나: 응. 언니. 안 괜찮아ㅠㅠ 어제는 하루 종일 잠도 못 잤어.

동생: 언니, 걱정 마. 아무 일 없을 거야. 

나: 근데 나 때문에 가족들이 피해 입을까 봐 너무 걱정되더라고. 진짜 속상해ㅠㅠ. 혹시 내 정보를 갖고 아빠한테 접근해서 "아빠~ 내 휴대폰 액정이 깨져가지고~43%#$%^$&~ 돈 좀 부쳐줘~"하면 어떡해.  

동생: 그래서 어제 나랑 엄마랑 아빠랑 모여서 같이 연습한 게 있어.

나: 그게 뭔데?

동생: 다른 사람들이 우리 가족 행세를 하면 "암호를 대라!"라고 하는 거야.

나: 오호, 좋은 생각이야. 암호는 뭔데?

동생: 암호는 "귀여운 *둥이"         

나:ㅋㅋㅋㅋㅋㅋ 아 너무 웃겨 ㅋㅋㅋ 그리고 암호가 맘에 들어. 귀여운 *둥이

 <* 참고로 '*둥이'는 우리 집 동생 별명이다.>


나는 동생의 말에 너무 웃겨서 깔깔대고 웃었다. 그리고 나를 야단치고 혼내는 대신 내가 많이 속상해할까 봐 오히려 걱정하고, 귀여운 암호를 만들어서 웃게 해 주는 가족들이 있어서 힘이 났다. 

교사지만 매번 가족들에게 잔소리만 했던 나. 교사지만 혼나기 싫었던 나. 

사람을 움직이는 건 잔소리가 아니라 따뜻한 위로라는 것을 깨닫는 날이었다. 

     


작가의 이전글 교사 아내가 이해하기 어려운 의사 남편의 특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