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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이앤선생님 May 06. 2022

당근 마켓에서 착한 거래를 하려다  뒤통수를 맞았다

거래는 냉정하게

  "뭐해?"

  남편이 아침부터 문 앞 현관을 들락날락하는 나를 보며 물었다. 나는 빈 가방에 서랍에 있던 화장품을 집어넣으며 싱글벙글 말했다.

  "나 요즘 화장품 사업해."

  "응? 무슨 말이야?"

  "헤헤. 사실은 갖고 있던 화장품을 싹 처분하는 중이거든. 당근마켓에 팔아서 맛있는 거 사 먹을 거야."

  나는 그저 내 모습 그대로 사는 미니멀리즘 라이프를 실현하기로 다짐했다. 그래서 실외 마스크 해제 정책과 무관하게 나는 갖고 있던 색조화장품을 모두 처분했다. 내 화장대에는 오직 기초화장품과 선크림만 있을 뿐이다. 아끼던 립스틱, 비싼 돈을 주고 직구한 셰도우, 아직 개봉하지도 않은 블러셔들을 모두 떠나보냈다. 정가를 생각하며 가슴 아프지만 눈앞에서 사라지니 아무런 아쉬움이 남지 않는다. 오히려 진즉 처분하지 못한 게 후회될 뿐이다. 

 

  "팔려면 귀찮지 않아? 시간이 아깝잖아."

  남편은 시간과 노력을 재산의 일부로 생각하는 사람이다. 중고 물건을 천 원에 팔려고 글을 올리고, 채팅에 답해주고, 약속을 잡고, 집 앞에 물건을 내놓느니 그냥 쓰레기봉투에 버리는 게 더 이득이라고 생각한다. 남편의 말도 일리가 있다. 몇백 원, 몇천 원에 팔아버리면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노동이 되는 거니까. 하지만 당근 마켓은 나에게 그 외의 다른 기쁨을 줬다. 

  "그래도 물건을 가져간 사람들이 항상 고맙다고 하던데... 그런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아. 그리고 쓰레기가 줄어드니까 지구를 살리는 것 같아서 뿌듯해. 그리고 아주 싸게 팔면 금방 팔려서 힘들지 않아."

  우리들의 평범한 일상 속에서 고맙다는 말을 들을 일은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나는 당근 마켓을 시작한 이후로 고맙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리고 고맙다는 인사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그게 바로 내가 당근 마켓을 하는 이유다. 


  그러던 어느 날, 아끼고 아끼던  캐시미어 ** 세트와 다이아몬드** 두 개를 당근 마켓에 올렸다. 비싸게 구입한 제품이고 개봉만 한 상태라서 그대로 갖고 있을까 말까 몇 번이나 고민하다가 미니멀하게 살자는 다짐을 지키기 위해 떠나보내기로 결심했다. 

  나는 대게 중고 물건을 5천 원 이하로 내놓곤 한다. 하지만 이번엔 애착이 가는 물건이어서 개당 만원에 팔기로 했다. 그리고 잠시 후 당근 마켓 채팅 알림이 울렸다. 










  채팅을 건 사람은 캐시미어**세트 중 한 개와 다이아몬드** 제품 중 하나를 구입하고 싶다고 했다. 학생이라 새것을 사기 부담스럽다고 하는 걸 보니 대학생인 모양이었다. 

  하지만 내 물건에는 하트가 여러 개 찍혀 있었고 분명히 곧 일괄로 물건을 사려는 다른 누군가가 채팅을 걸게 분명했다. 그래서 일단 거래를 거절했다.


  그리고 내 예상대로 캐시미어**세트는 즉시 거래가 되었고 다이아몬드 **제품 두 개만 남게 되었다.  

   






  다음날 그 학생은 나에게 채팅을 걸어 다이아몬드 **제품을 두 개 다 구입하겠다고 말했다. 그녀는 11시가 넘은 늦은 밤 나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다음 날 이른 시각에 또 메시지를 보냈다.

  물건의 가격을 깎아달라고 했는데 나는 주저 없이 물건의 가격을 깎았다. 남편의 말대로 시간과 노력 또한 재산이다. 계속 애타게 물건을 구매하고 싶다는 메시지로 더 이상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문제는 그 후부터 일어났다. 물건의 상태를 재확인하는 메시지, 반값 택배를 요구하는 메시지, 만남 장소를 재지정하는 메시지 등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나는 머리가 어지러웠다. 그래서 거래를 취소하려고 했는데 물건을 꼭 구매하고 싶다는 메시지들이 계속 왔다. 이때 뭔가 쎄한 느낌이 들었는데 방값을 내야 하는 학생이라고 했던 말이 마음에 걸려서 그대로 거래를 진행하기로 했다. 

    




  나는 태평하게 물건을 집 주변에 내놨다. 현관 출입구에는 비번이 걸려있었고 이곳 이웃들은 모두 믿을 만한 좋은 사람들이란 걸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선입금은 요구하지 않았다. 선입금을 요구하면 구매자가 불안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내가 원했던 건 그런 관계가 아니었다. 서로 고맙다고 말하고 헤어지는 관계가 되길 바랐다. 


  하지만 그녀는 물건을 가져간 뒤 잠수를 타버렸다. 도착 예정 시각이 되어도 연락이 오지 않아 설마설마했었다. 


  나는 시무룩해져서 남편 옆에 앉아 투덜댔다.

  "오빠,, 그 학생이 물건을 가져가고 잠수 탔어."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고 있던 남편이 대답했다.

 "그러게 처음부터 느낌이 이상하면 거래하지 말아야 하나 봐. 아니면 직접 얼굴을 보고 거래하던가. 선입금받는 거지. 일단 신고하겠다고 메시지 보내."

  

  나는 남편의 조언대로 신고하겠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하지만 그녀는 연락이 없었다. 




  나는 저녁밥을 먹으며 생각이 잠겼다. 그녀는 왜 물건을 받고 잠수를 탔을지 생각하느라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알 수 없는 감정에 휩싸여 마음이 불쾌했다.

  '분명 좋은 의도에서 시작했었고 그깟 1-2만 원 정도야 받든 못 받든 아무 상관없지 않은가. 그런데 왜 이렇게 기분이 나쁠까.'

  나는 오늘 일어났던 상황을 곱씹어보면서 밥을 우걱우걱 입에 밀어 넣었다. 배는 불러오는데 뭔가 허기진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밥을 더 퍼먹었다. 그리고 그날 밤, 결국 나는 저녁밥을 먹고 체해서 잠들기 전까지 끙끙 앓았다. 


  나는 이번 거래를 통해서 아무리 작은 거래라고 할지라도 냉정하게 거래를 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야 기분 나쁜 거래를 피할 수 있다. 그리고 작은 돈이 걸린 거래라고 할지라도 상대방이 거짓말을 하면 액수와 상관없이 감정 소모가 일어난 다는 걸 알았다. 


인생의 씁쓸함을 느끼게 한 거래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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