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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이앤선생님 Apr 26. 2022

그 시절의 여교사들의 소개팅

여교사들의 소개팅

  오랜만에 출장이 잡혔다. 나는 수업을 마치자마자 동료 A 선생님 와 함께 택시를 타고 교육청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교문에 나서자 나를 기다리고 있는 A 선생님의 얼굴이 보였다.

  "먼저 나와계셨네요. 제가 좀 늦었죠? 죄송해요. 하교 지도가 좀 오래 걸려서..."

  "아니에요, 선생님. 얼마 안 기다렸어요."


  우리는 카카오 택시를 불렀다. 오늘 나와 함께 출장을 가게 될 A 선생님은 5학년을 맡고 있는 29살 여선생님이다. 긴 머리에 예쁜 정장 원피스를 입은 선생님의 복장은 털털한 아줌마처럼 입은(?) 내 모습과 사뭇 비교됐다. 

  '나도 저 나이 때는 예쁘게 입었지. 정말 좋을 때야."

  나는 동료 선생님의 젊음을 부러워하며 택시에 몸을 실었다.


  우리 학교와 교육청까지는 차로 20분 넘게 걸린다. A 선생님은 택시 안에서의 정적이 불편했던지 나에게 이런저런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선생님, 선생님은 지금 남편을 언제 만나셨어요?"

  "저요? 28살 때였나... 27살이었나? 아마 28살 때 일걸요?"

  "아... 그렇구나. 그때 어떻게 만나셨어요?"

  "그때 소개로 만났죠. 그런데 그건 왜... 요?"

  "제가 곧 서른인데 좀 늦었나 싶어서요. "

  "아직 29살이잖아요. 저도 그 나이에는 조급했는데 다 지나고 나면 그때 왜 그렇게 서둘렀었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괜찮아요. 시간은 많아요."

  "그, 그렇겠죠?"

  "그럼요!"


  나는 여유가 넘치는 표정을 지으며 미소를 뗬다. 그리고 다시 찾아온 정적에 오래전 그 시절 여교사들의 소개팅에 대한 추억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1. 지방 여 교대생들만 공감하는 것들

  지방 여 교대생들이 1000% 공감하는 몇 가지 비애가 있다. 그중 하나는 '여대와 다를 바 없는 남녀 구성비율'과 '메마른 소개팅 자리'이다. 넘치는 여학생 수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남학생 수 때문에 '나는 솔로'를 찍는 여학우들이 비일비재했다. 더욱이 학교가 시골에 위치할수록 괜찮은 소개팅 자리를 구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또한 3학년에 접어들면 다들 자연스럽게 임용고시에 매달리기 때문에 졸업 후엔 연애세포가 바싹 말라버리게 된다. 그래서 내 동기들 중에는 제대로 된 소개팅을 한 번도 못해보고 졸업한 동기들이 심심치 않게 있었다. (애석하게도 그게 바로 나였다...)  

 

 그렇게 임용고시에 합격하여 학교에 발령 나면 가족과 주변 지인들에게 부러움 섞인 말을 듣게 된다. 

  "교사는 1등 신붓감이래~."

  "소개팅 자리가 어마 어마 할 거야."

  "이제 남자들이 줄 서겠지." 

  하지만 곧 깨닫게 된다. 직장도 여중-여고-교대와 별반 다를 바 없다는 것을. 






2. 그 시절 F4선생님들의 소개팅

   내가 발령받았던 첫 학교는 교원이 30명이 채 안 되는 작은 학교였다. 그중 남자는 딱 두 명이었는데 교감, 교장선생님이셨다. 그리고 20대 솔로 여선생님이 무려 7명이나 있었다. 그 7명 중 소위 말하는 결혼 적령기에 접어든 선생님은 4명이었다. 이 F4선생님들의 대화 주제는 수업 연구 또는 소개팅/맞선이었는데 교담 시간마다 연구실에서 떠드는 그들의 대화를 엿듣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래서 나는 연구실에서 아이들의 일기장을 검사하는 척하면서 온 정신은 F4선생님들의 대화에 집중하곤 했다.

  

  어느 날, C 선생님이 B선생님에게 물었다. 

  "B선생님, 어제 소개팅 어땠어요?"

  "분위기는 좋았는데 에프터가 없네요. 에잇, 이럴 줄 알았어. 여기 남교사들은 워낙 눈이 높으니까요. 교대 다닐 때나 다름이 없네요..."

  B선생님이 주말에 남교사와 소개팅을 한 모양이었다. 관내에서 여교사와 남교사의 소개팅은 아주 드문 일인데 제한된 근무지역에서 순환 근무하는 교직 특성상 교사 소개팅은 곧 사내 맞선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우울해하는 G선생님을 향해 H선생님이 위로했다. 

  "그분 참 보는 눈이 없네요. 자기 복을 자기가 찼으니까요. 혹시 다른 소개팅 일정은 없어요?"

  "딱 하나 남았는데 그게 마지막이에요. 00에 사는 00 기업 회사원인데 장거리라서 잘 될지 모르겠네요. 저 이러다가 노처녀가 되는 건 아닌가 싶어요."

  "흑, 저도요. 선생님은 소개팅 자리라도 있지. 저는 아무것도 없네요. 저 빼고 제 동기들은 다 결혼하기 시작했어요. 제 주변 교사들은 왜 다 빨리 시집을 가나 몰라."

  G선생님과 H선생님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리고 옆에서 커피를 마시던 D선생님이 입을 열었다.

  "저도 집에서 빨리 시집가라고 난리예요, 난리. 시집가라고 잔소리를 할 거면 맞선 자리를 만들어주기라도 하던가. 말로만 잔소리를 하니 스트레스 쌓여요."

  J선생님의 볼멘소리에 뒤에서 학습지를 복사하던 K선생님이 말했다.

  "막상 집안으로 맞선이 들어오면 더 스트레스받을 걸요? 저희 집에 들어오는 맞선 자리는 죄다 별로였어요."

  "별로라뇨?"

  J선생님이 무척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K선생님은 복사한 학습지를 책상에 착착 쌓아놓으며 말했다.

  "궁금하지도 않은 부모님 자랑만 잔뜩 늘어놓고 정작 본인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는 맞선 자리였거든요."

 G, H, J 선생님이 동시에  "아..."하고 외치고 사실은 나도 그런 경험이 있다며 박수를 치며 웃어댔다. 일기장을 검사하던 나도 그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잠시 후 수업 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F4선생님은 서로 파이팅을 외치며 각자의 교실로 돌아갔다. 

  




3. 결혼 적령기 소개팅은 

  어느덧 5년이 흘러 학교를 옮길 때가 되었다. 그리고 나는 작은 학교를 떠나 큰 학교로 가게 되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다양한 삶을 살고 있는 동료 선생님들을 만나게 되었다. 작은 학교에 있을 때만 해도 서른 넘어서 결혼하면 큰일 나는 줄 알았는데 큰 학교로 옮기자마자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누가 20대 후반을 결혼 적령기라고 했던가. 그 말은 어느 정도 수정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30대에 접어드니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겼고, 커리어를 쌓아감에 따라 인간관계가 넓어졌다. 그래서 20대에 들어오지 않던 소개팅 제안이 30살이 넘어서야 직장, 출강하던 교육원, 대학원 등에서 봇물 터지듯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마도 그건 단지 내가 30살이 넘어서 그런 게 아니라 그동안에 쌓아온 경력과 여유가 빛을 발한 게 아닐까 싶다. 어쨌거나 나는 그때 이미 결혼한 상태였으므로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 되어버렸지만 20대 후반에 '결혼 적령기'라는 단어 때문에 초조해하고 있는 여교사가 있다면 큰언니의 마음으로 황금기는 30대부터 시작한다고 일러주고 싶다. 차근차근 열심히 공부하고, 자신의 분야에 집중해서 커리어를 쌓아나간다면 언제든지 좋은 인연이 불쑥 찾아올 수 있다. 

  며칠 전 대학 동기 중 한 명이 결혼했다. 가장 늦게 결혼한 친구인데 제일 잘 골라 결혼했다. 그 말인즉슨 지금까지 그 친구가 만났던 남자 친구보다 훨씬 더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했다는 말이다. 나는 몇 년 만에 다시 만난 그 친구의 결혼식에서 이렇게 말했다.

  "축하해! 너는 정말 잘 될 줄 알았어."

  "내 남편 어때 보여? 마음에 들어?"

  "마음에 들고 말고.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지네. 자상하고 해바라기 같아서 마음에 들어. 일찍 결혼했으면 어쩔 뻔했어."

  "그렇지. 일찍 했으면 큰일 날뻔했어."

  "역시 인생의 황금기는 30대부터라니까!"





4. 결혼 후에도 소개팅

  아줌마가 되어간다는 건 감자칩을 입에 물고 드라마를 보면서 "아, 나도 한 때 저렇게 사랑했어야 했는데!"라고 하거나 "아가씨로 돌아가면 진짜 연애 잘할 자신이 있는데!"라고 외치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나는 도도한 아가씨로 변신하고 싶은 날이면 근사한 카페나 레스토랑에 남편을 데리고 나가 소개팅 놀이를 시작한다.

  "아, 안녕하세요? 저는 다이앤인데요. 성함이..."

  "네. 저는 00입니다."

  "그렇군요. 제가 오늘 좀 바쁜데 00 씨를 뵈러 특별히 시간을 내서 왔어요. 호호."

  "아, 감사합니다. 듣던 대로 아름다우시네요."

  "네 제가 좀 한 미모 하죠."

  "음식이 나왔네요. 드시죠."

  "냠냠냠 음냠냠냠. 맛있네요 냠냠냠 냠냠"

  "입에 잔뜩 묻으셨네요."

  "괜찮아요. 집에 가서 닦으면 돼요. 냠냠 냠냠"

  나는 또 아줌마처럼 털털하게 국물을 후르르릅 들이켠다. 

  아가씨 같은 아줌마가 되고 싶은 나는 여전히, 그리고 계속 남편과 소개팅을 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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