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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이앤선생님 May 11. 2022

교사 아내와 의사 남편의 차이점 2

1. 부부 중 한 명이 다쳤을 때


  집에 콕 앉아 박혀 있던 나에게 커튼 사이로 비치는 눈부신 햇살이 '어서 밖에 나와서 걸어봐!'라고 속삭이던 어느 날 오후, 룰루랄라 산책로를 걷다가 오른쪽 무릎을 삐끗하고 말았다.

  "아야, 아파!"

  나는 오른쪽 다리를 흔들흔들 털며 콕콕 찌르는 통증이 사라지길 빌었다. 하지만 통증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계속 아프네... 곧 괜찮아지겠지 뭐."   

  무릎 통증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 나는 어리석게도 해가 질 때까지 계속 산책로를 걸었다. 아직 젊은 나에게 설마 관절염이 생길까 싶었다.

 그리고 그날 이후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던 통증에 시달리게 되었다.


 "오빠, 나 무릎이 아파."

  나는 컴퓨터를 하고 있는 남편의 주변을 맴맴 맴돌며 시무룩하게 말했다.

  "뭐하다가 다쳤어?"

  "산책로를 걷다가 삐끗했어."

  나는 울상을 지으며 무릎을 내밀어 보였다.

  "응, 쉬면 나을 거야."

   남편은 내 무릎을 한번 쓱 훑어보더니 다시 컴퓨터 앞으로 고개를 돌렸다. 나는 계속 남편의 주변을 맴맴 맴돌며 관심이 필요하다는 신호를 보냈다. 남편이 아무 반응이 없자 조잘조잘 걱정을 쏟아놓기 시작했다.

  "근데 여기서 막 삐걱 소리도 나고, 가만히 서있어도 아파. 내가 검색해봤는데 연골 연화증일 수도 있대. 혹시 피부과 약을 먹어서 그런가? 부작용 중에 관절염이 있다던데. 병원에 한번 가볼까? 지금은 이미 늦었고 내일은 휴일인데 어쩌지... 오빠 나 어쩌지... 오빠 나 어째"

  나는 회전의자에 앉아 빙글빙글 도면서 '오빠 나 어쩌지~' 송을 불렀다. 하지만 남편은 머리를 긁적거리며 한마디 할 뿐이었다.

  "쉬면 나을 거야. 기다려봐."

  나는 속으로 뿌-하고 서운해하며 혼자서 다리 찜질을 하고 셀프 마사지를 한답시고 무릎을 조물딱 거렸다.


  남편은 대학병원에서 중증 질환에 시달리는 환자들을 수시로 진료한다. 그런데 집에서도 내가 어디가 아프다고 계속 징징대면 남편이 무척 피곤할 거라는 것을 잘 안다. 하지만 학교에서 아이들의 무릎이 살짝만 까져도 '아이고, 우리 00 많이 아프겠구나. 선생님이 약 발라줄게.'라고 말하며 밴드를 붙여주고 호호~ 입김까지 불어주는 초등교사 아내는 남편의 차분하고 시크한 조언이 어색하기만 하다.


  하지만 남편의 조언은 항상 옳았다. 남편의 말대로 걷지 않고 푹 쉬어주니 무릎이 며칠 만에 나았다. 나는 뿌-하고 내밀었던 입술을 다시 집어넣기로 했다. 하지만 또다시 다치게 되면 언제 또 입술이 삐쭉 나오게 될지 모르겠다.








2. 각자 자주 보는 영상은


  "오빠 뭐봐?"

  심심한 나는 열심 열심 컴퓨터를 하고 있는 남편에게 물었다.

  "유튜브에 올라온 수술 동영상 봐. 너도 볼래?"

  남편은 모니터를 내쪽으로 돌렸다. 그리고 나는 슬금슬금 뒷걸음치며 말했다.

  "아니, 난 괜찮아. 별로 보고 싶지 않아."

  나는 후다다닥 내 자리로 돌아와 앉아 넷플릭스로 도라에몽을 봤다.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던데 나는 아직도 남편의 수술 동영상, 수술 사진에 적응이 안 된다. 역시 나에겐 그런 심오한(?) 동영상보다는 귀여운 도라에몽 애니메이션 영상을 보는 게 더 좋다. 우리 반 애들 중에 도라에몽을 좋아하는 애들이 꽤 있어서 나도 덩달아 푹 빠지게 됐다.    

  아마도 한 십 년쯤 지나면 오빠가 보는 수술 동영상을 쿨하게 볼 수 있을 것 같다.







3. 중환자실에 입원하게 된다면


  나는 남편에게 쓸데없는(?) 만약에~ 질문을 던지는 걸 좋아한다. 예를 들어 만약에 평생 고기와 야채 중에 하나만 먹어야 한다면 뭘 먹을 것인가, 만약에 다시 태어난다면 어느 나라에서 태어나고 싶은가, 만약에 미각을 팔 수 있다면 얼마에 팔 것인가 등이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남편에게 또 쓸데없는 만약에~ 질문을 던졌다.

 "오빠, 만약에 중환자실에 입원해서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말을 듣는다면 어떻게 할 거야?"

 남편이 입을 열며 대답을 하려던 찰나 나는 내 생각부터 말했다.

 "나라면 일단 명의를 수소문해서 치료에 전념하고 치료비가 부족하면 셀프 모금활동이라도 할래. 그러다가 정 방법이 없으면... 가족에게는 미안하지만 배낭여행하러 훌쩍 떠날 거야."

  내 말이 끝나자 남편은 덤덤하게 말했다.

  "나는 가망이 없다는 말을 들으면 그냥 치료를 중단할래. 가족한테도 미안하고 본인도 너무 힘들거든. 막상 중환자실을 지켜보면 계속 치료하겠다는 말이 잘 안 나올걸? 가족들이 진짜 힘들거든. 그러니까 나는... 그만할 거야."


 나는 예상 밖의 대답에 마음이 짠했다. 그래서 괜히 더 펄펄 뛰며 말했다.

  "안돼! 그럴 수 없어. 내가 빚을 내서라도 오빠 치료할 거야. 하루라도 더 살 수 있게. 오빠도 내가 아프면 끝까지 살려. 알았지?"

  남편은 큰소리를 내며 열을 내는 내게 별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혹시 몰라서 오빠와 새끼손가락을 걸고 약속했다.

  "우리 오래오래 같이 살자."




 서로 다른 우리. 이렇게 오래오래 건강하게 같이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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