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잠든 늦은 밤, 메일에 논픽션 동화 원고를 첨부하여 [보내기] 버튼을 누른다. 그리고 내 안에 숨어있던 오만가지 감정이 고개를 내밀었다.
'내 원고를 받아주는 데가 있을까?'
'에이, 희망은 접어두라고. 경력도 없는 신인 작가의 원고를 누가 봐주겠어?'
'음, 그렇긴 하지. 그래도 기대는 해볼 수 있는 거 아냐?'
'어허~ 헛된 기대하지 마. 작가 교실 한번 다녀 본 적 없는 주제에 벽보고 쓴 글이 어디 가당키나 하겠어? 작가 지망생이 얼마나 많은지 알기나 해?'
'그, 그렇지... 에휴, 얼른 잠이나 자야지.'
컴퓨터를 끄고 이불속에 쏙 들어갔다. 이리저리 뒤척이다가 휴대폰을 들어 [수신확인] 버튼을 새로 고침 해본다. 당연히 한밤중에 투고 메일을 확인할 출판사는 없다. 그래도 자꾸만 화면을 새로 고침 해 본다. 아무리 버튼을 눌러도 변하는 게 없다는 걸 깨달을 때까지.
그러던 어느 날 메일이 왔다. 매년 상금 천만 원을 걸고 동화 공모전을 여는, 이름만 들어도 다 아는 C출판사에서 보낸 메일이었다. 나는 0.1초 만에 메일을 열었다. 한 치의 떨림이나 기대감은 없었다. 왜냐하면 출간 방향성이 맞지 않아 어쩌고 저쩌고 하는 대답이 올 게 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메일을 연 순간 나는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라? 내 원고를 출간하고 싶다고?'
나는 뒤통수를 긁으며 메일 수 차례 다시 읽었다.
'뭐지, 이게 뭐지? 나 아직 출간 경력 없는 신인인데. 등단한 적도 없는데. 오잉?'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예상 밖의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엄마야, 세상에나! 와아!'
나는 두 손을 들고 기뻐했다. 그리고 마법처럼 진짜로 출간 계약을 맺게 되었다.
출간 계약 과정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콧대 높을 거라고 생각했던 출판사는 나를 '작가'라고 불러주었다. 친절하신 편집자님들은 나를 위해 직접 서울에서 지방까지 기차를 타고 와 주셔서 원고에 대한 의견을 말씀해주셨다. 그 후 한 방에 4권을 계약했고 나는 진짜 작가가 되었다. 출간 경험이 없는 신인 작가를 믿어주셔서 감사했다. 며칠 뒤 여세를 몰아 Y출판사와 5권을 계약했다. 논픽션 동화를 쓰기 시작한 지 3개월 만에 이뤄낸 성과였다.
한동안 브런치에 글을 올릴 여유가 없었다. 지난주 초고를 넘긴 후에야 여유가 생겼다. 만약 그 짧은 시간에 어떻게 9권의 초고를 다 썼냐고 묻는 사람이 있다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일단 친구가 없어야 해요. 내 원고에 나오는 주인공들을 친구로 삼으세요. 그리고 주말에 아무도 만나지 마세요. 가족 모임도 미루세요. 휴가요? 노노. 그런 건 없어요. 그저 컴퓨터 앞에 앉아서 원고에 대해 생각하세요. 그럼 뭐든 할 수 있어요."
이 과정이 너무 힘들지 않냐고 묻는다면 나는 또 이렇게 말할 것이다.
"막상 해보면 안 힘들어요. 내년 여름에 우리 아이들이 도서관에서 내 책을 품에 안고 '이 책 덕분에 과학이 너무 재밌어졌어요!'라고 얘기하는 모습을 상상하면 저절로 웃음이 나올걸요?"
비록 초고 작업은 마쳤으나, 아직 완결을 내려면 해야 할 일이 많다. 나는 의자에 기대어 앉아 눈을 감는다.
'하~ 쓰면 쓸수록 재미가 없어. 내 글 완전 구리네.'
하지만 이내 다시 눈을 뜨고 자세를 바로잡는다.
'뭐든지 어떻게든 해 나갈 수 있겠지. 난 나를 믿어!'
9권을 출간 계약하고 달라진 게 뭐냐고? 그건 바로 '나에 대한 믿음'과 '자신감'이다. 나는 오늘도 거울을 보며 주문을 외운다.
'뭐든지 어떻게든 해 나갈 수 있겠지. 난 나를 믿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