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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이앤선생님 Nov 10. 2022

1학년과 선생님 가라사대

1학년 선생님의 병가로 일주일간 임시 담임을 맡게 됐다. 교실에 들어서자 1학년 아이들은 "어? 6학년 선생님이다!"하고 외쳤다. 원래대로라면 카리스마 넘치는 표정으로 아이들을 휘어잡았겠으나, 여기는 1학년 교실이니 그에 맞는 이미지로 탈바꿈할 필요가 있었다. 나는 최대한 친절한 미소를 지으며 교탁에 섰다.   

"여러분, 선생님이 누군지 잘 알고 있죠? 오늘부터 일주일간 선생님이 담임선생님의 역할을 할 거예요. 일주일 동안 잘 지내봐요."

아이들은 신기하다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나는 태연한 척 교사용 의자에 앉았다. 하지만 새 학기가 시작된 것처럼 두근두근 했다. 과연 1학년 아이들과 한 주를 잘 보낼 수 있을까. 



선생님 가라사대 (1)

아직 임시 담임선생님이 낯설어서 그런 건지 몰라도 아이들은 선생님의 말을 귀 기울여 들었다. 심지어 선생님이 하는 말을 철석같이 그대로 믿어버리기도 했다. 


수학 시간에 있었던 일이다. 

"애들아, 선생님이 덧셈 문제를 낼게요. 만약에 선생님이 초콜릿 5개를 먹고, 2반이 초콜릿 1개를 먹으면 모두 몇 개를 먹은 걸까요?"

"6개요!"

"좋아요, 잘했어요."

그런데 갑자기 아이들이 웅성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근데 2반 애들이 초콜릿 1개를 어떻게 나눠먹은 거지?"

"조금씩 떼서 먹었겠지!"

"갉아먹었을 수도 있어!"

나는 머쓱한 얼굴로 이마를 긁적이며 말했다.

"이런, 선생님이 문제를 잘못 냈네. 너희는 선생님이 치타를 타고 학교에 온다고 해도 믿겠다."

"와, 선생님 치타 타고 와요?"

"진짜예요?"

나는 아이들의 순수함에 웃음이 터져버렸다. 그리고 장난기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응. 선생님은 치타를 타고 다녀요. 누구든 타보고 싶으면 말하세요."

놀랍게도 아이들은 내 말을 믿었다. 나는 졸지에 치타 선생님이 됐다.  





선생님 가라사대(2)

1학년 아이들은 선생님을 어른, 아니 그 이상의 특별한 존재로 생각했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애들아, 선생님이 퀴즈를 낼게. 어제 선생님이 하지 않은 것을 골라봐. 1번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2번 동네를 한 바퀴 산책했다.  3번 기름걸레로 복도를 청소했다."

1학년 교실에는 기름걸레가 없다. 그래서 아이들이 쉽게 답을 맞힐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이들의 생각은 달랐다. 아이들은 서로 웅성거리며 이렇게 말했다. 

"1번!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엥? 기름걸레가 답 아냐?" 

"이그. 선생님이 아이스크림을 왜 먹냐? 선생님은 그런거 안 드셔."

"아, 그렇네. 그럼 1번!"

"1번! 1번! 1번이 확실해."

나는 슬며시 되돌아 서며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애들아... 선생님도 아이스크림 먹는 사람이야."




쉬는 시간, 우리 반 1학년 꼬맹이가 쓰레기통에서 사탕 봉지를 발견했다. 아이는 봉지를 들고 나에게 쪼르르 달려왔다.

"선생님! 선생님! 누가 교실에서 사탕 먹었어요!"

그러자 아이들은 눈에 불을 켜고 범인 수색에 나섰다.

"누구야! 교실에서 선생님 몰래 사탕 먹는 사람이!"

나는 슬며시 되돌아 서며 또다시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애들아... 사탕 먹은 사람 나야. 요즘 일이 많아서 자꾸 당이 당기네."






선생님 가라사대(3)

1학년 아이들은 선생님의 말씀을 잘 지킨다. 물론 처음에는 그렇지 않았으리라. 이리 뛰고 저리 날뛰는 1학년을 지금의 모습으로 바꾸기 위해 담임선생님께서 혼신의 노력을 다 한 결과였다. 아이들은 학급 규칙을 잘 지켰고, 규칙을 어기는 사람이 있으면 선생님에게 곧바로 보고했다. 심지어 선생님이 화장실에 있을 때에도.


"선생님, 거기 계세요?"

1학년 아이가 급하게 화장실에 있던 나를 찾았다. 그냥 무시할까 했지만 혹시 급한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응? 으응... 선생님 여깄어요."

아이는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교실에서 민수가 뛰어다녀요! 제가 칠판에 뛰어다닌 사람 이름 써놨어요."

나는 끙끙대며 말했다.

"으응... 알았어요."

"선생님, 그런데 지금 똥 누세요?"

"으응..."

"아직도 다 안 쌌어요?"

"으응..."

"그럼 마저 잘 싸고 오세요."

아이는 시크하게 말한 뒤 홀연히 떠나버렸다. 

"으응... 고, 고마워요."


나는 화장실에서 나와 머쓱한 웃음을 지었다. 

'나... 남은 기간 동안 잘 지낼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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