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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이앤선생님 Nov 11. 2022

1학년과 떤땡님은 내 따랑

나는 6학년 선생님이다. 1학년 선생님의 병가로 일주일간 임시 담임을 맡게 됐다. 시간이 흘러 처음에는 낯설어했던 아이들도, 머쓱해하던 나도 이젠 서로 친해져서 진짜 담임선생님과 제자처럼 지내게 되었다.


떤땡님은 내 따랑(1)

쉬는 시간 종이 땡 울리면 아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교탁 주변으로 몰려든다. 선생님과의 스몰톡을 하기 위해서다. 

"떤땡님~ 저 어제 엄마랑 피짜 머거떠요."

"떤땡님~ 저 어제 자전거 타고 놀아떠요."

"떤땡님~ 저 오늘 새로 산 옷 입고와떠요."

                      ....

아이들은 병아리처럼 쉴 새 없이 조잘조잘거린다. 아이들의 말에 일일이 응답해주노라면 어느새 쉬는 시간이 끝나버린다. 아이들에게는 스몰톡이겠지만 나에게는 빅톡이다. 나는 결국 대화에 응해주다 지쳐 고개를 연거푸 끄덕이며 잘 듣는 시늉만이라도 해준다. 하지만 아이들은 포기하지 않고 자기네들끼리 끊임없이 조잘거린다. 

"나는  나중에 의사가 돼서~ 떤땡님이 아프면 고쳐줄꼬야."

"나는 나중에 요리사가 돼서~ 떤땡님한테 피짜도 만들어주고 쥬스도 드릴꼬야."

"나는 나중에 피아니스트가 돼서~ 떤땡님한테 연주를 들려드릴꼬야."

아이들은 돌림노래처럼 한소절씩 읊어댔다. 나는 기특하다는 표정으로 흐뭇하게 들었다. 그런데 그때 한 아이가 어눌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나중에 경찰이 돼서~ 떤땡님으을 잘못$%^*# 혼내줄꼬야."

뭐 내가 딱히 경찰에게 혼날 만큼 잘못한 일은 없는 것 같다만, 아이들의 마음을 잘 알고 있기에 나는 황당한 웃음을 지으며 귀여운 아이들을 돌려보냈다. 으이쿠 귀여운 것들.




떤땡님은 내 따랑(2)

1학년 급식실은 항상 전쟁터 같다. 식판과 수저 받기에서부터 잔반을 버리는 것까지 실수를 남발한다. 그래서 항상 눈을 크게 뜨고 아이들을 살필 수밖에 없다. 그러던 중 우리 반 지수가 망부석처럼 서서 빤해 내 얼굴을 쳐다보고 있는 걸 알았다. 

"지수야, 무슨 일 있어?"

지수는 사슴처럼 큰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

"떤땡님이 예뻐서요."

"응???"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이 나이 먹고 어디서 들지 못할 고백을 받고 마음이 몽글몽글해졌다. 나는 지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선생님보다 지수가 더 예뻐."

그러자 지수는 부끄러운 듯 고개를 홱 돌리고 식판을 받으러 총총 걸어갔다. 그 뒷모습조차도 사랑스러웠다.


잠시 후 나도 급식을 받았다. 나는 김치를 아주 많이 좋아해서 김치를 산더미처럼 담는다. 그 모습이 신기했던지 지후가 내 식판을 흘끗 보고 말했다.

"떤땡님은 김치를 왜 그렇게 많이 담아요?"

"음, 선생님은 김치를 아주 좋아하거든."

"그럼 저희보다도 김치가 더 좋아요?"

"아니, 나는 김치보다 너희가 더 좋지!"

나는 즐거운 웃음을 지으며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누가 쫓아오기라도 하듯 허둥지둥 밥을 먹기 시작했다. 1학년 아이들 중에는 밥을 초스피드로 먹는 아이들이 있어서 지금 얼른 먹지 않으면 금세 급식실이 난장판이 되기 때문이다.

나는 밥을 대충 욱여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그때 지후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에게 물었다.

"떤땡님, 오늘은 밥 안 남기고 다 먹었어요?"

지후는 알고 있었다, 내가 허겁지겁 먹느라 밥을 다 못 먹는 날이 있다는 걸. 나는 지후의 한 마디에 배가 부른 느낌이었다. 

"응, 선생님은 잘 먹었어."




떤땡님은 내 따랑(3)

나는 아이들을 이끌고 급식실에서 교실로 돌아왔다. 아이들은 삼삼오오 모여 왁자지껄 놀았다. 하교 후 놀이터에 모여 놀 계획을 세우는 모양이었다. 그러다가 교탁으로 우르르 몰려와 말했다.

"떤땡님, 수업 끝나고 떤땡님도 저희랑 같이 놀아요!"

아이들은 나에게 만날 장소와 시간이 적힌 쪽지를 쥐어주었다.  

'선생님 3시 매화 놀이터'

나는 삐뚤빼뚤한 글씨로 적힌 초대장을 들고 미소를 지울 수 밖에 없었다. 으이쿠 귀여운 것들!




1학년들의 선생님 사랑은 각별하다. 매일 힘든 나날의 연속이지만 이런 아이들의 사랑스러움 때문에 하루하루를 버틸 수 있는 것 같다. 이제 임시 담임은 끝났다. 헤어질 때가 되어서 그런지 아이들이 더욱 귀여워 보인다. 으이쿠 귀여운 것들! 

(그럼 이제 6학년 말고 1학년 담임을 해보는게 어떻겠냐고? 아...음... 그건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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