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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이앤선생님 Dec 22. 2022

시댁에서 칭찬받는 패션

  남편은 대가족의 막내이자 외아들로 태어났다. 그말인 즉슨 위에 누나가 여러명 있다는 말이다. 이런 시댁 사정을 아는 사람들은 나를 보고 안타깝다는 표정을 짓곤 하지만 그것은 편견에서 비롯된 오해일 뿐이다. 단출해도 매일 지지고 볶고 사는 친정보다 평화롭고 젠틀한 시댁이 더 편할때가 많다. 

  그래도 시댁은 시댁인지라, 시댁 식구들을 찾아 뵐 때마다 작은 것 하나하나까지 나름 신경이 쓰인다. 특히 대가족이 모이는 명절에는 어떤 옷을 입고 가야할지, 어떤 선물을 들고 가야하는지, 어떤 말을 해야하는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계속 고민이 되기 마련이다. 결혼한지 몇년이 지났건만 나는 아직 시누이들과는 서먹서먹하다. 그래서 더 신경이 쓰이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명절 때마다 항상 단정한 정장블라우스에 바지를 입거나 깔끔한 분홍색 원피스를 입는다. 나중에 갈아입어야 할지라도 일단은 깔끔하게 입고 가려고 노력한다. 빈손으로 가지 않는 센스도 잊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집에 선물이 도착했다.

  "누나가 선물을 보냈네."

  "헉! 형님께서 나한테 선물을?"

  첫째 형님께서 나에게 선물을 보냈다. 나는 곱게 포장된 택배박스를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뭘 보내셨을까?"

  "옷을 보냈다던데."

  "옷? 무슨 옷이지? 블라우스? 청바지? 가디건?"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포장을 뜯었다. 그리고 선물받은 옷을 보고 깜짝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 옷은 편하고도 비싼 추리닝이었기 때문이다.

  "오잉? 뭐지, 뭐지? 추리닝이네!"

  나는 후다닥 옷방으로 달려가 옷을 갈아입고 남편 앞에서 한바퀴 빙그르르 돌았다.

  "오빠, 나 어때?"

  돌아온 남편의 대답은 충격적이었다.

  "잠옷아냐?"

  "o_0.. 잠옷?"

  "그거 스님들이 입는 옷 아냐?"

 "-_- 스님옷? 나랑 안어울려?"

 "응."

 나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거울 앞에서 요리조리 포즈를 잡아봤다. 

"진짜 안어울려? 이거 택보니까 엄청 비싼거던데...... "

 남편은 깔깔 웃으며 이리저리 날 놀려댔다. 그리고 누나에게 전화해 감사 인사를 하는 순간에도 놀림은 계속 되었다.  

 "형님, 선물 잘 받았어요! 감사해요, 잘 입을게요!"

 "어, 그래^^ 잘입어." 

 "누나, 근데 이거 잠옷이야?"

 "아냐~ 이거 요즘 신도시 아가씨들이 입고 다니는 거래. 따뜻하고 편해서 좋다고 하더라고."

 나는 눈치없는 남편을 보며 고개를 절레 절레 흔들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진짜 나랑 안어울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걸 대체 어떡하지? 학교에 입고가기에는 너무 프리하고, 운동복으로 입기엔 물빨래가 안되는 소재이고, 집순이라 집밖에 나갈 일이 별로 없는데......'

 나는 쪼그리고 앉아 이 옷을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했다. 그러다 문득 든 생각이 있었다.

 '옳지! 시댁 갈 때마다 입어야 겠다.'

 나는 이 옷을 시댁의 교복으로 정했다. 그리고 시댁에 갈 때마다 한결같이 이 옷을 입었다. 매번 똑같은 옷을 입고가도 어머님은 오히려 더 흐믓해하셨다.

 "어머님, 이거 형님께서 사주신 옷이에요. 호호."

 "그래? 잘 입고 다니는구나."

 "네. 편해요.^-^"

  이젠 더 이상 시댁에 뭘 입고 갈지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정장에서 해방되어 추리닝을 입게 된 것도 너무 좋았다. 형님께서는 내가 편하게 시댁에 올 수있도록 배려해 주신 것 같다. 나만의 교복이 있다는 사실이 이렇게 편할 줄이야! 중고등학생들이 왜 교복을 입는지 알 것 같다. 


  몇개월 후, 시댁의 교복이었던 이 옷은 시간이 지날 수록 생활복으로 변해갔다. 병원에 갈 때도, 남편과 외식을 할 때도, 친정에 갈 때도 나는 이 옷을 수시로 입었다. 

  "또 그거 입어?"

  "응. 이게 편해. 그리고 따뜻해." 

  남편도 이래라 저래라 말할 권리는 없었다. 왜냐면 누나가 준 옷이니까. 큭큭.

    

  나는 이번 명절에도 이 옷을 입고 갈 생각이다. 선물한 옷을 입고 등장하면 형님께서 기뻐하시겠지? 환하게 웃으실 형님을 생각하면 기분이 좋다. 우리가 한 층 더 가까운 사이가 될 것 같아 마음이 설렌다. 추운 겨울이 조금 더 따뜻하게 느껴진다.

  형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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