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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이앤선생님 Dec 22. 2022

교사의 세 가지 복 중에 제일가는 복은?

  새 학교에 전근 온 첫날,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교문에 들어섰다. 

  “이 학교구나. 으, 떨린다 떨려. 이 곳에서도 잘 적응할 수 있을까.”

학교에서 왕따가 되는 걸 두려워 하는 건 비단 학생들만이 아니다. 교사들은 5년마다 새로운 학교로 전근을 가는데 혹시 새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왕따가 될까봐 새내기마냥 전전긍긍 한다. 

  나는 입구에서 실내화로 갈아신고 교장, 교감선생님께 인사드리기 위해 뚜벅뚜벅 교무실을 향해 걸었다. 그런데 그 때 누군가 나를 알아보고 소리쳤다.

“어! 다이앤 선생님!”

  나는 고개를 돌렸다. 세상에나. 전전학교에서 같이 근무했던 이선생님이 계신게 아닌가. 이선생님은 나보다 근무경력이 30년이나 많은 선배교사였다. 특히 교육에 대한 열정이 남달라 학생, 학부모님들 사이에서도 칭찬이 자자한 분이셨다. 나는 이선생님께 한걸음에 달려가 말했다.

  “어머머머. 이선생님 아니세요!”

  이선생님은 내손을 덥석 잡고 반갑게 말씀하셨다.

  “이게 도대체 무슨일이야. 또 만났네. 반가워, 정말.”

  우리는 치열한 전쟁터에서 아군을 만난 것 마냥 반가워했다. 교문에서부터 나를 옥죄어오던 긴장감이 스르르 풀리는 기분이었다. 

  “앞으로 잘 부탁해.”

  “별말씀을요, 제가 더 잘 부탁드려요.”

  우리는 쫑알쫑알 수다를 떨며 나란히 교무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동시에 6학년으로 배정받았다. 

  “이선생님, 저희는 또 6학년이네요.” 

  “그러게. 원래 새학교로 옮기면 가장 힘든 학년과 업무를 맡는 법이니까. 그래도 난 다이앤 선생님하고 같은 학년이 돼서 위안이 되네.”

  “헤헤. 저도요.”

  교사에겐 세가지 복이 있다는 말이 있다. 그건 학생복, 관리자복 그리고 동료교사복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복은 바로 동료교사복이다. 아무리 힘든 학생을 만나도, 아무리 어려운 관리자를 만나도 으쌰으쌰 마음이 통하는 동료교사를 만나면 어떠한 시련도 견뎌낼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선생님과 동학년에 근무하게 되면서 더욱 각별한 동료애를 나눴다. 마치 오래된 초등학교 동창처럼 시도때도 없이 옛날 이야기를 꺼내며 웃음꽃을 피우곤 했다.

  “다이앤 선생님, 혹시 체육부장이셨던 황선생님 기억나?”

  “매일 열심히 공부하시던 황선생님이요. 당연히 기억나죠.”

  “황선생님이 이번에 장학사로 승진하셨대.”

  “오, 정말요? 대단하다!”

  “그리고 인성부장이셨던 강선생님도 기억나?”

  “연구대회 1등급 휩쓸던 강선생님이요. 기억나요!”

  “이번에 셋째를 낳으셨다는데.”

  “캬, 커리어도 육아도 모두 일등이시네요.” 

  이선생님과 대화를 하면 마치 단짝친구와 얘기하는 것처럼 마음이 편안했다. 이선생님은 외로운 학교 생활을 견딜 수 있도록 도와주는 등대같은 존재였다. 

  한번은 내가 교장선생님께 크게 꾸지람을 듣고 우울하게 교실에 앉아있던 날이었다. 이선생님은 스스로를 자책하며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나에게 말씀하셨다.    

  “교사들은 각자 서로 다른 능력이 있어. 업무능력만이 전부는 아니야. 선생님은 선생님만의 재능이 있잖아. 나는 그게 보여. 선생님은 특별한 사람이니까.” 

  “고마워요, 선생님.”

  이선생님은 항상 나를 특별한 사람이라고 하셨다. 그분의 말씀은 언제나 따뜻했다. 


  이선생님과 나는 한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교과연구에 대한 열정’이었다. 이선생님은 수학교육 전문가로서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전국 순회 강연을 하셨다. 나는 과학 교육에 관심이 많아서 과학교과연구회에 참석하거나 영재원에 출강하곤 했다. 하지만 교장선생님은 우리의 외부 활동을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으셨다. 비교적 경력이 많은 이선생님께는 딱히 별말씀을 하지 않으셨지만 나에게는 대놓고 출장을 불허하거나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시곤 했다. 그때마다 나는 이선생님께 달려가 하소연을 했다.

  “이선생님, 아무리 생각해도 교장선생님의 결정은 불합리해요.”

  “그렇지. 그분은 옛날사람이라서 그래. 하지만 나는 선생님이 포기하지 않고 계속 선생님의 길을 갔으면 좋겠어.”

  “과연 제가 그럴 수 있을까요.”

  “그럼, 선생님은 나보다 훨씬 능력있는 교사가 될거야. 나도 젊었을 땐 교장선생님하고 큰소리내면서 싸우기도 했는걸.”

  “정말요?”

  “응. 다들 나를 별종이라고 불렀다니까. 하지만 그 때 포기했다면 지금까지 버티지 못했을거야. 그러니까 선생님도 신념을 이어나갔으면 좋겠어.”

  “위로가 되네요. 감사해요, 선생님.”

  이선생님은 이렇게 항상 나를 위로하고 용기를 복돋아주셨다.      

  이선생님의 취미는 뜨개질이었다. 그래서 동료 교사들에게 수제 가방을 선물하시곤 했는데 나에겐 선물을 두 세 개씩 챙겨주셨다. 

  “이선생님, 항상 받기만해서 어째요.”

  “다이앤 선생님과 나는 특별한 사이잖아.” 

  나는 이선생님이 주신 가방을 매일매일 들었다. 가방이 헤져서 닳을 때까지 들었다. 어느 명품 가방보다 편안한 가방이었다. 그리고 그 편안함이 오래 오래 지속되길 바랐다. 



  그러던 어느날, 이선생님의 명예 퇴직 소식이 들려왔다. 나는 그 소문이 거짓소문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이선생님이 진짜 명퇴하신다면 학교가 이렇게 조용할리 없었다. 왜냐하면 명퇴식을 하려면 홀을 빌리고, 공연과 축하 영상을 준비하는 일련의 과정이 있어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선생님의 명퇴소식은 사실이었다. 깜짝 놀란 나는 한달음에 이선생님께 달려갔다. 

  “이선생님! 명퇴하신다는 소문이 사실이에요?”

  나는 눈물을 글썽거리며 물었다. 이선생님은 담담하게 대답하셨다. 

  “응, 그렇게 됐어. 한적한 시골로 이사 갈 예정이야.”

  “이선생님……. 이렇게 가시다니 너무 서운해요.”

  이선생님은 서운해하는 나를 달래며 서랍에서 책을 꺼내 나에게 건네셨다.

  “이게 뭐에요?”

  “내가 선생님에게 주고싶었던 책이야.”

  건내주신 책의 제목은 「The boy, the mole, the fox and the horse」였다.

  “이 책엔 내가 선생님에게 다 말하지 못한 삶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어.”

  “이선생님…….   

  “내가 선생님을 더 많이 도와줬어야 했는데, 선생님의 재능을 미처 다 알아보지 못했어. 미안해.”

나는 이선생님의 말에 와락 눈물이 쏟아져나왔다. 이선생님은 흐느껴 우는 나를 안고 내 손을 꼭 붙잡아주셨다. 

  “이선생님, 그동안 감사했어요.”

  “아니야. 내가 더 고마웠어.”

  우리는 한동안 두 손을 꼭 붙잡은 채 놓지 못했다.     

명퇴식 당일, 명퇴식 행사는 학교 강당에서 조촐하게 진행됐다. 이선생님께서 동료 선생님들을 위해 일부러 작고 소박하게 했으면 좋겠다고 부탁하셨단다. 이선생님은 차분하게 단상 위에 올라가 마지막 말씀을 전했고 자리에 참석한 선생님들은 진심을 담아 박수를 쳤다. 이선생님은 두 손을 흔들며 유유히 학교를 떠나셨다. 


  이선생님이 학교를 떠난지 1년이 지났다. 만약 이선생님같은 좋은 동료가 없었더라면 나의 교직생활은 마냥 힘들기만 했을지도 모른다. 문득 이선생님께 받은 오래된 가방을 보면 그분의 인자한 미소가 떠오르곤 한다. 어디에서든 이선생님이 항상 건강하고 행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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