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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이앤선생님 Dec 18. 2023

작가 지망생이 투고에 실패하는 결정적인 이유

  얼마 전 구독자 한 분과 상담을 했다. 동화 작가가 되기 위해 긴 시간 동안 작품을 썼지만 끝내 투고에 실패한 분이셨다. 거금을 들여 동화 작가 수업을 듣고, 공을 들여 작품을 써 내렸지만 아무런 성과가 나지 않아서 이제 순문학을 접어야겠다고 생각하던 찰나 나를 만나게 된 것이다. 


  "작년 이맘때도 출판사에 투고하고 거절 메일을 받았어요. 올해도 똑같은 걸 반복하고 있는 스스로를 보니 현타가 와요, 선생님."

  "그렇군요. 많이 속상하셨겠어요. 거절 메일을 받으면 허탈하고 서럽죠. 그동안 어떤 글을 써오셨는지 제게 보여주시겠어요?"

  나는 그녀에게 원고를 건네받았다. 원고지 이천매에 달하는 양이었다.   

  "오, 정말 열심히 쓰셨네요! 이 정도 분량은 아무나 쓸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지금 바로 읽어볼 테니 잠깐 기다려보시겠어요?"

  나는 차분히 원고를 읽어 내렸다. 초조하게 피드백을 기다리는 시선이 느껴졌다. 나는 원고를 넘기던 손을 멈추고 턱을 쓰다듬으며 한참을 생각했다. 원고에 숨어 있는 문제점을 알아낸 것이다. 하지만 시간과 정성이 담긴 소중한 원고를 함부로 지적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평론가가 아니라 글을 쓰는 작가이기 때문이다. 

  "첫 원고보다 나중 원고가 더 좋더라고요. 점점 필력이 좋아지는 걸 느끼셨죠?"

  그녀는 고개를 살짝 돌리며 쑥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어... 그렇긴 하지만... 아직 문장이 많이 지저분해요."

  "문장은 이만하면 된 것 같은데요?"

  "네?"

  그녀는 뜻밖의 말에 놀란 듯했다. 나는 미소를 머금고 두둑이 쌓인 원고를 가리켰다.  

  "문장은 이 정도면 됐어요. 저보다 잘 쓰셨어요."

  아마 그녀가 더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했다, 투고에 떨어진 이유는 문장 때문이 아니었다는 것을. 

  "다 좋은데 글에서 어른의 시선이 느껴져요. 그런 얘기 들어보셨죠?"

  그녀는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합평을 하면서 '글의 주제가 모호하다, 개연성이 떨어진다, 아이들이 공감하지 못할 것 같다'는 얘기를 수차례 들었다고 했다.  

  "저는 재능이 없나 봐요. 원래 책 읽는 걸 좋아하는 편도 아니었어요. 동화는 저랑 안 맞아요. 이제 동화는... 그만둘래요."

   그녀의 눈에서 이슬 같은 눈물이 비쳐 보였다. 만드느라 몇 날 며칠을 밤샜을 모를 원고를 바라보며 혼잣말하듯 말했다. 

 "저출산이라 애들도 줄고 있잖아요. 아동문학은 가망이 없어요. 이참에 웹소설로 전향할까 해요."

  그녀는 정말 동화를 그만두고 싶은 걸까. 힘없이 내뱉는 말에서 간절함이 느껴졌다. 나는 그녀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왜 안 맞는다고 생각하세요?"

 "왜냐하면... 동화는 교훈적이어야 하니까요. 동화로 뭔가를 가르쳐야 한다는 게 답답하고 어려워요. 저는 그럴 재량이 없어요."

  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되물었다. 

  "동화는 교훈적이어야 하나요?" 



  수많은 사람들이 동화는 교훈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도덕적 가치관이 확립되지 않은 어린아이들은 책을 통해 정직, 성실, 우정, 효, 믿음, 겸손, 배려와 같은 가치를 익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화의 역할을 '도덕성 함양을 위한 수단'으로만 한정 짓는 것은 동화를 학교 교과서와 동일하게 바라보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리고 작가가 교훈을 주는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히는 순간, 그 원고는 교과서처럼 지루하기 짝이 없어진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어린이 독자 한 명이 코파츄를 들고 와서 사인을 해달라고 요청하길래, '코파츄 읽고 공부 열심히 하세요.'라고 적었더니 실망 가득한 표정을 짓는 게 아닌가. 나는 그 순간 "아차!" 할 수밖에 없었다. 그 아이가 원했던 말은 '공부 열심히 하세요'가 아니라 '앞으로도 재밌게 읽어주렴.'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 이후로 두 번 다시 공부를 열심히 하라는 조언 따위는 하지 않게 되었다. 뭔가를 자꾸 가르치려는 시도를 멈추고, 아이들에게 '건강한 즐거움'을 선사하는 것이 동화의 역할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녀는 나의 대답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덧붙여 물었다.  

  "혹시 [건방이의 건방진 수련기]나 [쉿! 안개초등학교]는 읽어보셨나요? 교훈이 가득하지 않아도 재밌는 책들이 많거든요."

  "아니요, 안 읽어봤는데..."

  "저도 책을 잘 안 읽는 편인데요. 내 스타일을 찾을 때까지는 책을 많이 읽어봐야 해요. 롤모델을 정하고 비슷하게 따라 써보는 연습부터 해보세요. 어차피 사람들이 좋아하는 클리셰는 정해져 있거든요."

  "클리셰요?"

  "네, 음식에 비유하자면 지구상에 없었던 새로운 음식을 개발하기보다는 누구나 다 좋아하는 치킨을 연구해서 크림 치킨, 카레 치킨, 불닭 치킨 등을 만들어보는 거죠. 출판사도 낯선 이야기보다는 익숙하지만 재밌는 이야기를 더 좋아하니까요. 이미 필력은 있으시니까 어떤 글을 써야 하는지 방향만 잘 잡으시면 될 것 같아요."

  울먹였던 그녀의 얼굴이 점점 밝아졌다. 나는 그녀의 등을 두드리며 말했다. 

  "아동 문학 시장이 힘들다고는 하지만 국외로 수출되는 책이 많아서 여전히 해볼 만해요. 코파츄도 해외로 수출 됐거든요. 국내 판매량도 중요하긴 한데 해외 시장에 비할 수 없죠."  

  그녀는 한쪽에 밀어두었던 원고를 다시 품에 안았다.  

  "그렇군요. 저 그럼 다시 해볼래요!"  

  나는 긴 상담을 마치고 그녀와 작별인사를 했다. 돌아가는 그녀의 뒷모습에서 작은 날개가 보였다. 그녀가 숨겨졌던 날개를 펴고 훨훨 날아오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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