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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이앤선생님 Dec 25. 2020

취미로 미술을 배워보고 싶나요?

나의 그림이야기.

Ⅰ 우연히 동양화를 시작했다.


  지난해 교원미술대전 서양화부분 2등급을 받았다. 그거 그리느라 죽는 줄알았다. 주말 오전에 영재원 강의를 마치고 오후부터는 그림만 붙잡고 있었다. 제출기한이 임박해올 수록 멘탈이 바사삭 부서지는 느낌이었다. 수상하지 못했다면 무척 서운했을 거다. 

  전시회 준비를 하는데 동양화 부문 작품들이 눈에 띄었다. 간단하고 그리기 쉬워보였다. 왜냐하면 동양화는 바탕칠이 필요없고 유화처럼 그림을 두껍게 쌓아올릴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서양화를 하던 노력의 반만 투자하면 왠지 저만큼은 그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출품작이 적어 경쟁자도 별로 없었다. 


오... 조금만 노력하면 수상할 수 있겠는데?


 그 날 이후 동양화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다. 정보를 찾아보니 교사로서 동양화를 잘하면 국제학교로 파견갈때 동양화를 할 줄 알면 가산점을 많이 받을 수 있었다. 나는 항상 외국에 몇 년 살고 싶은 로망이 있었기 때문에 매우 매력적인 정보였다. 또 나이를 먹을 수록 우리나라 고유의 것을 익히는 것이 나만의 브랜드를 만드는데 도움이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던 터라 본격적으로 동양화를 배워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동양화를 시작했다.












Ⅱ 서양화를 잘 하면 동양화도 잘 할까?



 (1) 붓 잡는 법부터 다시 배우다


 1년 동안 동양화를 배웠다. 나름 유화, 아크릴화를 할 줄 아니까 동양화도 비슷하겠거니 했다. 그런데 서양화와 동양화는 정말 완전히 다른 분야였다. 사용하는 붓 자체가 달랐기 때문이다. 서양화는 짧고 뭉툭한 붓을 사용한다. 유화붓이건 수채화붓이건 빳빳하고 모가 짧다. 반면 동양화 붓은 부드럽고 길며 물을 듬뿍 흡수한다. 그래서 붓을 잡을 때마다 바들 바들 떨리는 내 손의 떨림이 화선지 위에 그대로 전달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처음 동양화를 시작하게되면 선그리는 법부터 시작한다. 필압과 물기를 조절하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어느정도 선을 일정한 두께로 곧게 그릴 수 있게 되어야 사군자나 정물을 그릴 수 있다. 


  유화나 아크릴화의 경우 틀리면 그 위에 다시 색을 덮으면 되는데 수묵화는 붓터치 한방에 끝난다. 잘 그리다가도 중간에 물기 조절에 실패하면 도로아무타불로 끝난다.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그러니까 작품을 마무리 지을 때까지는 끝까지 집중해야 한다. 그래서 동양화 화실에서는 작품 활동을 하고 있을 때 누군가에게 말 거는게 조심스러워진다. 괜히 말걸었다가 붓이 잘못나가면... 머리숙여 사과해야할 수 도 있다. 







(2) 엥? 느낌가는대로 그리라고?


  어느 정도 동양화 붓 사용에 익숙해 지면 원근 표현이 두번째 난제로 다가온다. 먹 하나로 원근을 표현해야 하기 때문에 앞에 있는 사물과 구분하기 위하여 뒤에 있는 사물을 더 진하게 표현하기도 한다. 그래서 그릴 때마다 하나 하나 진하기를 생각하면서 그려야한다. 게다가 지금 막 칠했을 때 먹의 농도가 강해보여도 마르고 나면 색감이 약해지기 때문에 어떤 농도로 적절한 것인가는 수많은 연습과 경험을 통해서만 알 수 있다. 


"사진상으로는 암벽이 튀어나왔으니까 하얗게 보이지만, 그릴 때는 강조하려면 진하게 표현해야하고... 앞 뒤 구분이 가야하니까 뒤에 있는 걸 좀 강하게 그리고... 강하기만 하면 변화가 없으니까 다시 옅어졌다가...강해보여도 마르고나면 약해지겠지... 그러니까..."


  아아, 복잡하다. 먹 하나로 튀어나온 부분, 멀리 있는 부분, 흐릿 흐릿한 부분, 쑥 들어간 부분 등을 표현하려니 막막하다. 정해진 규칙도 없다. 서양화에서는 색채원근법, 공기원근법과 같이 정해진 틀이 있는데 동양화는 그러한 규칙이 없다. 그래서 나처럼 집요하게 분석해서 그리는 스타일의 사람에게 동양화는 정말로 어렵게 느껴진다. 

   

나의 첫번째 산수화

동양화의 세번째 난제는 여백이다. 여백을 남기는건 엄청 쉬운줄 알았다. 그런데 웬걸. 채우는 것 보다 비우는게 더 어렵다. 자연스럽게 여백을 남겨야 할텐데 어딜 비워야 좋을지 모르겠다. 차라리 고민없이 화면을 꽉 채우고 싶다. 정해진 규칙이 없으니 느낌대로 자유롭게 그리되 그럴듯하게 그려야 한다는 것. 그게 바로 동양화가 어렵게 느껴지는 가장 큰 이유일 것 같다.








(3) 과감하게 그리세요. 틀려도 안괜찮아요. 


  세밀한 붓터치로만 그림을 그리던 나에게 동양화는 새로운 도전이었다. 동양화에서는 과감하게 그리는게 아주 중요하다. 과감한 붓자국에서 생동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한번 잘 못그리면 그대로 끝난다는 거다. 틀리면 안 괜찮다. 그러니까 정신을 집.중.해야한다. 그래서 옛날에 선비들이 정신수양을 하느라 그렇게 사군자를 그려댔나보다. 덕분에 동양화를 배우면서 정신수양을 많이 했다. 내 마음에서 인내심의 천사와 불같은 화를 내뿜는 악마가 치열한 싸움을 벌였다.


"후. 하. 다시 해보자."

"아악! 때려치고 싶어."

"후. 하. 다시 해보자. 릴렉스"


  과감하게 그리되 정신을 집중하여 흐트러지지 않는 연습을 하는건 밀린 방학숙제와 같다. 하긴 해야하는데 귀찮고 하기 싫은 그런 것들 말이다. 꾸준히 연습하다보면 언젠가 나도 선비같은 자세를 갖게 될 수 있을까.


나의 첫 사군자










Ⅲ 동양화가 왜 인기없는지 알겠다.


 "나는 절대로 동양화는 하지 않을래. 재료 준비하다가 하루 다 가는거 아냐?"


  어수선스럽게 동양화 재료를 정리하는 나를 보며 남편이 한 말이다. 수묵화의 경우에는 먹, 벼루, 붓만 있으면 되니까 재료가 간단한 편이다. 그러나 민화를 하려면 재료도 많고 재료를 준비하는 과정도 복잡하다. 


  아주 간단하게 민화 재료 준비 과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색이 번지지 않게 하기 위해 종이에 아교포수를 해야 한다. (아교는 하루 이틀 내에 모두 소비해야 하기 때문에 그 때 그 때마다 아교물을 만든다.) 그 다음 가루물감인 분채에 아교를 넣고 손가락으로 곱게 섞어 농도를 맞춰놔야한다. 특히 하얀색을 내는 호분을 준비하려면 아교를 섞은 다음 100번 이상 치대야 한다. 그래야 맑은색이 잘 우러난다. 물감을 모두 사용한 뒤에는 출교를 한다.    


  이렇게 복잡한 과정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민화를 시도해보지 못한다. 그 뿐만이 아니다. 재료값은 왜이렇게 비싼걸까. 동양화 붓 하나에 2만원이 훌쩍 넘고, 물감을 사려면 10만원이 우스워진다. 파레트도 도자기를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들고 다니기에 매우 무겁고 불편하다. 가방에 벼루와 파레트만 넣어도 나같은 뚜벅이에게는 절망스러운 무게가 된다. 욕심내서 이것 저것 재료를 사고 남편에게 들어달라고 하면 남편에게 미안해진다. 남편아 미안하다. 



  이렇게 비싼 재료를 사용해도 아름다운 그림을 그릴 수 있다면 모든걸 용서 할 수 있다. 그러나 내 생각에 민화는 생각보다 그렇게 아름답지 않다. 화려하게 아름답다기 보다는 수수하다. 꽃, 새, 동물, 그릇, 책 등 소재 자체도 전통적이고 잔잔하다. 그래서 일까 한달 내내 열심히 그린 민화 작품이 2시간만에 그린 유화 작품보다 인기가 없다. 그러나 내 눈에는 유화보다 민화가 더 사랑스럽다. 얼마나 많은 정성이 쌓여 한폭의 그림이 되었을지 알기 때문이다.

한달 내내 그렸던 나의 첫 민화











Ⅳ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에게 동양화를 추천한다.


  나는 만나는 사람마다 동양화를 추천하고 있다. 왜냐하면 동양화를 배우면 사물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과 집중력이 생기기 때문이다. 불같이 급한 성격을 갖고 있다면 한번쯤은 동양화를 접하며 마음의 평화를 찾길 바란다. 또한 당신에게 자녀가 있다면 꼭 동양화를 배우게 했으면 좋겠다. 비록 동양화는 화려하지 않아 비주류로 여겨질지언정 결국 '우리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언젠가는 아날로그적인 성격의 동양화가 더욱 주목받는 날이 올 것이라고 믿는다. 그 누가 알았겠는가. 외면받던 트로트가 이렇게 많은 대중의 사랑을 받게 될지. 우리나라 전통 그림도 언젠가는 트로트처럼 다시금 사랑받는 날이 오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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