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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홍석 Dec 18. 2018

[축구이야기] 박항서 감독 스즈키컵 우승과 베트남

가리지날 시리즈

[축구이야기] 박항서 감독 스즈키컵 우승으로 되돌아 보는 베트남

 

여러분의 답장으로 먹고 사는 조홍석입니다.

지난 토요일 밤 SBS에서 중계한 스즈키컵 결승전을 보았습니다.

 

박항서(a.k.a 바캉서) 감독이 이끈 베트남 성인 축구국가대표팀이 말레이시아를 꺾고 10년만에

우승을 차지했는데, 그 열기가 월드컵에 맞먹더군요. ^^

 

우리나라에선 스즈키컵이라는게 굉장히 낯선 경기인데, 정식 명칭은 아세안 축구연맹컵, 즉 동남아시아컵 대회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와 중국,일본,북한 등이 참여하는 동아시아컵 대회와 동일한 형태인거죠.

 

우리나라에선 동아시아컵 우승을 해도 그런 경기를 했었나 거의 모르는 데 (최근 동아시아컵 우승을 우리나라가 했다 캅디다... 나도 전혀 몰랐....)

동남아시아 국가들에겐 스즈키컵이 엄청난 관심을 모은다고 합니다.

박항서 감독님이 부임하자 마자 U23대회 준우승을 하고, 아시안게임 4강에 들었음에도 이 스즈키컵에서 우승할 것인가에 베트남축구협회가 더 신경을 쓸 정도였다고 하네요.

 

이들이 이토록 이 경기에 관심을 쏟는 이유는... 동남아 국가 축구팀은 죄다 피파랭킹 100위 아래 순위들이라 월드컵에 출전해 본 적이 없고 아시안컵이건 아시안게임에서도 우승 경험이 없기에 우승컵을 들어올릴 수 있는 경기라곤 이 동남아시아 축가 국가대항전, 스즈키컵 밖엔 없기 때문이라네요.

 

즉, 세계 수준에는 한참 못미치지만 자기 나와바리 내에서라도 짱을 먹어야겠다는 절박감이 강한

거지요. 도시국가이지만 프로리그까지 갖춘 싱가포르 역시 아프리카 선수를 귀화시키면서까지 이 대회에 목을 멘다고 하니...

우리나라야 뭐.... 월드컵 본선 나가는 걸 당연시 여기는 수준이다보니 '동아시아컵? 뭐 그까이거...' 라는 느낌인 것에 비한다면 그 절박한 심정이 충분히 이해가 가합니다.^^

 

베트남이 2년마다 열리는 스즈키컵에서 태국이나 말레이시아, 필리핀 등에 밀려 우승을 못한 지 10년이 되었기에 실제로 작년 하반기 박항서 감독을 모셔갈 때 세운 목표가 스즈키컵 우승이었다네요. 10년 전 첫 우승 당시에는 포르투갈 엔리크 칼리스토 감독 시절이었다고 하는데

그 후 외국인 감독들이 이에 못미치는 성과를 내자 단기 계약 후 교체하는 식이어서 그동안 베트남은 '외국인 감독의 무덤'이었다고 합니다... 평균 재임기간이 8개월....OTL

뭐... 2002년 월드컵 후 우리나라도 똑 같은 상황이라 낯설진 않네요... =.=

 

박항서 감독 역시 '그들만의 리그'가 본인의 성패를 좌우할 것을 알았기에 최선을 다해 원하던 성과를 이뤄낸 겁니다. 장하십니다. ^^

하지만 박항서 감독이 작년 10월, 헐값 연봉 3억원에 베트남에 갈 때에는 사실 현지에서 부정적 여론이 많았답니다. 축구 감독으로서는 하락기에 접어들어 3부리그 창원시청팀 감독을 할 때 경기 도중 의자에서 조는 장면이 TV에 잡히기도 했는데... 그 사진이 베트남 신문에 실리면서 회의적인 시선이 많았답니다. "필리핀마저 에릭손 감독을 모셔왔는데 어디서 저런 듣보잡을?"이라고 언성을 높인 베트남 축구팬들은 불과 1년만에 "박 감독을 베트남에 귀화시키자"고 추켜세우고 있지요. 뭐 이 장면도 이미 우리나라에서 16년 전에 봤던 과정이네요... =.=

 

많이 알려진 것처럼 박항서 감독은 과거 2002년 월드컵에서 히딩크 감독이 한 방식 그대로 선수 명성이나 현지 축협의 추천을 믿지 않고 본인이 직접 프로리그 경기장에 가서 일일이 눈으로 보고 확인해 선발하고,
그들의 장단점을 데이터화해 능력을 향상시키고,

식생활 개선과 재활 트레이닝도 한국에서 불러온 코치진들과 함께 과학적으로 시행해 선수들의 잠재된 역량을 발굴해 냈을 뿐 아니라, 끈끈한 정으로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 'ONE TEAM'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 전까지는 베트남 선수들은 자기가 뛰지 않으면 벤치에서 대기 중일 때에도 경기를 보지 않고

딴 짓을 했다나요... "내가 쟤보다 못한 게 뭐 있다고?"라는 허세를 부리면서요... =.=

 

한편으로 이번 베트남 축구 열풍을 보면 그들이 박항서 감독을 통해 대한민국을 좋게 보게 되었고, 심지어 태극기까지 흔든다는 사실이 놀랍기도 합니다.

(교민들도 결승전 경기장에 태극기 1만개를 뿌렸다고 합니다.)

 

많은 분들이 월남전 악연을 이야기하며 현대사의 어색한 관계가 해소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기뻐하시는데... 베트남과 우리 민족과의 관계는 그 보다 더 예전부터 다른 동남아 국가들과는 확연히 다른 인연이 있습니다.


말레이시아와의 축구 시합에서도 보이듯이 인종적으로 주변 국가들이 말레이-폴리네시아 인종인 반면 베트남은 동아시아 민족들과 유사한 몽골리안 계통입니다. 또한 문화적으로도 중화 문명권에 포함되어 유교를 숭상하는 등 우리나라와 정서적으로 유사하지요.

 

또한 베트남 역사를 보아도 우리나라와 유사합니다. 일생의 웬수가 중국인 것두 같구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단군 할아버지가 BC 2333년 나라를 세우신 반만년 유구한 역사라고 자랑하지만 베트남 사람 앞에서 자랑하면 안되어요... =.=

베트남의 시조, 훙브엉이 반랑(文郞)이란 나라를 연 때는 무려 BC 2919년이라는 신화가 존재하거든요. 우리보다 580여년 앞섭니다.. 뭐 둘 다 아직 명확히 실증된 역사는 아니긴 합니다만 청동기와 철기 유적이 발굴되어 최소한 BC 7세기에는 베트남에 국가가 존재했다고 여겨진다네요.

하지만 이후 중국 한무제가 침략해 BC 111년 멸망한 뒤 '한9군'을 설치해 천여년 가까이 중국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우리 역시 BC 108년 고조선이 한나라에 의해 멸망당해 한4군이 설치되었으니 3년 차이였군요)

풀풀 날리는 인디카종 쌀을 안남미(安南米)라고 부르는데 바로 당나라 시절 이 지역에 안남도호부를 설치해 동남아시아와 중국을 연결하는 해상 무역의 중심지가 되면서 오랜기간 안남(安南)이라 불렸기 때문이에요.

(우리나라 역시 고구려가 멸망당한 뒤 당나라가 평양에 안동도호부를 설치한 적이 있지요... T.T)

 

하지만 중국의 지배를 벗어나고자 봉기하여 2년간 여왕에 등극한 베트남판 잔다르크 '쯩 자매의 반란(AD 39)' 등 무수한 항쟁 끝에 938년 드디어 중국으로부터 독립하게 되고, 여러 왕국이 명멸하면서 지속적으로 북쪽으로는 중국의 침략을 막고, 남쪽으로 영토를 확장해 나가게 됩니다.

 

하노이, 하롱베이로 대표되는 북부 베트남이 원래 베트남 민족이 국가를 연 지역이고,
라오스, 캄보디아, 태국 등 주변 동남아 국가와 치열한 경쟁 속에 해안가를 따라 남하해 다낭 등 참파족이 살던 중부 지역을 쟁취한 데 이어 호치민(예전 사이공)으로 대표되는

남부 지방은 캄보디아로부터 빼앗지요.

(하지만 여전히 옛 영토 중 일부가 지금도 중국 땅이라서 고토 회복을 희망하는데 베트남판 환빠의 경우, 양자강 이남이 모두 다 자기네 옛 영토라고까지 주장하고 있다네요)

 

그 중 특이한 점은 1009년부터 1225년까지 존재한 리(Ly)왕조가 멸망할 당시, 학살을 피하기 위해 왕족 일부가 고려까지 찾아와 망명하게 되니 화산 이씨와 정선 이씨의 시조가 되었단 겁니다. O.O

이들 후손은 1996년에 베트남으로 공식 귀향하게 되어 당시 현지에선 대단한 뉴스가 되었지요.

 

또한 베트남은 전 유라시아를 휩쓸던 몽골 군대를 물리친 나라이기도 합니다. 우리 역사책에서 원나라의 압박에 의해 고려 수군까지 동원한 2차례 일본 정벌이 실패했던 것을 배웠을 텐데요.

당시 몽골은 두 차례 원정이 폭풍으로 실패했음에도 3차 일본 원정을 준비했다고 합니다. =.=

그러다가 월남에게 몽골군이 패배하자 빡친 쿠빌라이 칸이 "월남부터 정복하몽골~"이라고 다그쳐 중단되었다지요?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입니다.


신라의 나당전쟁 승리도 사실은 당나라가 고구려가 사라진 뒤 신라를 배신하고 한반도 전체를 집어 삼키려고 정예군을 한반도에 집중하자 토번(티벳)군이 그 공백을 노려 당나라 수도 장안을 기마부대로 급습하는 바람에, 동시에 2개 전선을 유지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한 당 황제가 긴급히 한반도 전쟁을 멈추고 토번과의 전쟁을 본격적으로 전개한 게 원인이었던 것처럼 말이죠....

당시 토번 기마부대를 막아선 선봉장이 백제에서 투항한 흑치상지였기에 이 공로를 높이 사 백제 자치주를 요동반도에 마련해 신라의 북상을 견제하지만 힘의 공백지대에서 일어난 발해가 백제 자치주를 멸망시키고 말지요.

그래서 삼국사기에 '백제는 신라와 발해에 의해 각각 멸망했다'라고 기술된 것입니다.

이처럼 역사를 제대로 알려면 글로벌 차원에서 들여다 보아야 합니다.

 

하지만 이후 명나라가 들어선 뒤에도 몽골군도 물리쳤다는 자신감으로  맞장을 뜨다가 1607년, 명 20만 대군에게 수도가 함락되고 베트남 황제와 아들이 북경까지 끌려가 목이 잘리면서 명나라의 지배를 잠시 받게 됩니다.

(이런 사실을 보면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을 한 게 결코 나쁜 선택이 아니었다고 보여지네요...)

 

이후 게릴라 전술로 명군이 철수한 뒤 여러 왕조가 명멸하면서 사대정책을 통해 침략을 막게 되고 청나라로부터 새로이 월남(越南)이라는 국호를 받게 되니, 베트남이란 이름이 비로소 정착하게 됩니다. 하지만 청나라 군대가 여전히 주둔하는 등 내정의 간섭을 벗어나려고 프랑스 선교사의 도움을 받아 1787년 루이 16세와 베르사유 협약을 맺어 프랑스군을 끌어들인 게

오히려 화근이 되어 결국 1885년 벌어진 청불전쟁에서 프랑스가 승리를 거두면서 1887년 베트남은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의 한 지방 식민지로 전락하고 맙니다.

이것도 역시 참 우리나라랑 닮았지요... =.=

 

1905년 을사늑약 체결후 일본의 보호국 신세가 된 대한제국의 상황을 비판하고 민족적 자각을 이끌어 내고자 1906년 현채 선생이 번역하발간한 <월남망국사>란 책은 당시 지식인들에겐

필독서가 된 바 있다고 교과서에 나오는데 이 같은 역사적 동질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후 베트남인들은 2차대전 기간에 일본군에 협력해 프랑스를 몰아내려 하지만 일본군은 더 가혹하기 이를 데 없어, 쌀을 모조리 공출해 가는 바람에 무려 200만명이

굶어죽었다고 하네요. (20년간의 베트남 전쟁 중 사망자 수와 맞먹습니다....)

게다가 2차대전이 끝난 뒤 다시 프랑스군이 식민지배를 하려 들자, 이에 대항해 북부가 해방구가 되어 싸우다가 프랑스 철군후 다시금 미국과의 전쟁이1975년까지 20년간 이어져 결국 호치민이 이끈 공산주북베트남(월맹, 베트남민주공화국)이 게릴라 전술을 전개한 베트콩을 지원해 자본주남베트남 (베트남공화국)을 함락시키므로써 통일을 하게 되고

연쇄적으로 캄보디아와 라오스도 내전을 거쳐 적화됩니다.

당시 우리나라 국군도 파병하여 용감히 싸웠지만 무기력한 남베트남의 패퇴로 철수하게 되지요...

하지만, 이 무력 통일 과정에서 수많은 남베트남인이 학살당하고100여만명이 보트피플이 되어 목숨을 건 탈출을 감행했던 것은 잊혀지고 있네요.

 

이후 1989년 베트남 정부는 국가 발전을 위해 개방화의 길을 걸으며 한국을 롤모델로 삼아 성공한 국가가 되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북한은 베트남식 개방을 하겠다고 베트남을 롤모델로 삼고 있다니 참 묘한 인연입니다.

 

그동안 베트남은 이 같은 현대사의 질곡으로 인해 북부와 남부간 지역감정이 매우 안좋았는데 축구로 인해 급속히 애국심이 올라갔다고 하네요.

 

그런데, 또 하나 잘 모르시는 게... 요새 우리나라가 좀 잘 살게 됐다고 해서 우리보다 못사는 국가 출신을 업신여기는 풍조가 노골적인데요. 거 그러지 마십쇼.

우리가 배우는 세계사 책에 동남아나 아프리카 등 후진국 역사가 1도 안 나오다 보니 이들 국가들을 우습게 여기는데... 웬만한 동남아 국가는 5천여년 동안 우리보다 잘 살았습니다. =.=

쌀 3모작이 가능해 식량이 많아 인구도 많았고 태국이나 버마의 경우 나름 우수한 문명을 이루어 내었습니다. 태국과 버마간 전쟁도 엄청 버라이어티 하더군요.

 

실제로 우리가 태국이나 말레이시아보다 국민 소득이 앞서기 시작한 게 1980년대 중반 이후부터입니다. 단군 할배 이래로 지금처럼 우리가 국제적으로 우대받은 적이 없습니다.

그 원동력은 산업화를 통해 부국으로 나아가기 위해 노력한 수많은 경제인과 과학자 등 우리 윗세대 분들의 노고 덕에 이룬 경제 성장 덕분이지요.

예전 우리가 못살던 시절, 서구에선 중국, 일본은 알아도 어디 한국이란 나라에 관심이나 가졌습니까? 한류 열풍도 그 이면에는 경제부국이 된 대한민국에 대한 호기심과 부러움이 배경이 되었지요.

하지만 최근의 상황을 보면 이 같은 성과가 무시당하는 것처럼 느껴져 안타깝습니다.

 

괜히 베트남 축구보다가 쓴 글이 길어졌네요

박항서 감독님이 이루신 이번 축구 경기 결과가 우리나라와 베트남의 교류에 큰 보탬이 되신 것을 축하드리며 이만 긴 글 마칠까 합니다.

 

그럼 이만~ 다음엔 뭘 쓰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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