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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bbin Chang May 13. 2022

유니클로는 왜 지하철 역에서 옷을 파나?

Place: 유통 전략과 소비자 행동


세상에는 정말 많은 종류의 상품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인식하고 있든 인식하지 못하든, 상품이란 우리의 생활과 단 한순간도 떼어놓을 수 없을 만큼 우리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지요. 지금 이 글을 보기 위해 사용하고 있는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는 물론, 앉아 있는 의자, 타고 있는 버스, 아침에 마신 커피 한 잔이나 입고 있는 옷, 끼고 있는 안경이나 멋을 부리기 위해 차고 있는 시계, 심지어 방금 한 모금 들이킨 생수까지, 우리 생활에서 상품이 아닌 물건을 찾는 것이 더욱 어려울 지경입니다. 이렇게 끝도 없이 많은 상품들을 보고 있자면 저도 모르게 감탄이 나올 때가 있지요. ‘나도 옛날에 태어났더라면 저런 상품을 만들어서 부자가 되었을 텐데’ 같은 생각이나 ‘어떻게 저런 걸 만들어 팔 생각을 했을까’ 같은 감탄은 혼자서 잡생각을 할 때도 친구와 수다를 떨 때도 언제나 재미있는 주제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우리가 ‘상품’이라는 물건에만 빠져서 의외로 간과하고 있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수도 없이 많은 상품을 대체 ‘어디서’ 산 것일까요?


이제와 가만히 생각해보면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분명히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수많은 상품들은 우리가 구매를 하였기 때문에 우리 집안에 들어와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상품을 어디에서 샀는지를 떠올리는 것은 의외로 힘들 때가 많이 있지요. 그 상품이 갖고 싶어 한 푼씩 아끼면서 돈을 모으고 오랫동안 벼르고 별러서 구입한 상품이라면 어디에서 어떻게 구매했는지 기억에 확실히 남아있겠지만, 우리 집안에 있는 상품들 중 그런 물건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습니다. 물론 그냥 필요하니까 평범하게 마트나 백화점 등에서 사 온 물건들도 많이 있겠지만, 다른 물건을 사다 보니 생각나서, 혹은 안 그래도 필요했는데 지나가다 보니 눈에 띄어서 사 온 상품들도 많이 있지요. 결국 우리가 집에 사다 나른 수많은 상품들은 대부분 우리가 지나다니는 어딘가의 상점이나 인터넷 서핑 중에 방문하는 사이트 등 일상의 동선 안에 귀신같이 자리를 잡고 있다가 우리를 유혹하는 것에 성공한 상품들인 것입니다. 마치 그 옛날 제갈량처럼 적의 생각을 읽고, 적이 지나갈 길에 관우와 장비를 미리 잠복 시켜둔 것 같은 느낌마저 들지요. 제갈량이 다시 살아 돌아온 것도 아닐 텐데, 대체 이 회사들은 어떻게 우리가 그곳을 지나갈 줄 알았던 것일까요? 


사냥의 기초는 먹잇감이 지나다니는 곳을 알아내는 것입니다.


소비자가 있는 곳에 상품을 가져다 놓으라

뜨거운 여름, 끝없이 넓은 모래밭이 펼쳐진 해수욕장을 생각해봅시다. 수많은 사람들이 바다에서 해수욕과 일광욕을 즐기고 있습니다. 신나게 바닷가에서 노는 것도 잠깐, 뜨거운 햇살과 짠 소금물에 목이 마른 사람들이 많이 생기겠지요. 바로 이런 백사장 한복판에서 반쯤 얼은 얼음물을 팔고 있다면 목마른 사람들이 앞다투어 구매하리라는 것은 쉽게 예상할 수 있습니다. 즉, 최고의 유통 전략이란 소비자의 니즈가 발생하는 바로 그곳에 상품을 가져다 놓는 것이지요. 소비자와 상품의 거리가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소비자가 상품을 구매할 확률은 점점 떨어지게 됩니다. 백사장에서 근처 편의점까지 가는데 5분을 걸어야 한다면 물 마시는 것을 포기하고 좀 더 버텨보는 것을 택하는 소비자들이 늘어나겠지요. 혹은 걸어가는 도중에 생각해보니 여기까지 나온 김에 아예 점심까지 먹으려고 식당으로 들어가는 소비자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목이 마르다’라고 생각했을 때 바로 옆에서 물을 팔고 있었다면 아무 생각 없이 구매할 수도 있었던 소비자가, 상품과의 거리가 멀어지며 구매에서도 점점 멀어지는 것이지요.


때문에 당연하게도 니즈가 발생할 만한 곳에 적절한 상품을 가져다 놓는 것은 우리 주변에서 매우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유통 전략입니다. 뜬금없어 보이지만 과학 박물관, 역사 박물관에서 솜사탕을 팔고 있는 이유는 바로 박물관을 찾는 어린이들의 간식에 대한 니즈를 충족시키기 위해서인 것이지요. 직장인들이 많은 오피스 지역에 고급 맛집들이 많이 들어서 있고, 대학생들이 많은 학교 주변에는 저렴한 식당들이 많은 것도 역시 주변 소비자들의 식사에 대한 니즈에 적절히 대응하기 위한 것입니다. 횟집이나 삼겹살집 같이 식사를 하며 매번 소주를 곁들이는 식당에 자사의 소주를 유통시키고, 포스터를 붙이거나 소주잔을 배포하는 등의 판촉 활동을 강화하는 것도 결국 소비자들의 니즈가 있는 곳에 우리의 상품을 위치시키기 위한 노력의 산물인 것이지요.


소비자를 생각하여 새로운 니즈를 창출하라

하지만 유통 전략은 그저 소비자가 있는 곳에 물건을 가져다 놓는 것만이 전부는 아닙니다. 거꾸로 소비자가 있는 곳에 상품을 위치시켜 니즈를 창출하는 전략도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이지요. 비슷한 관심사나 소비 행태를 가진 고객들이 특정한 장소, 혹은 매장을 자주 방문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그 장소에 그러한 고객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상품을 가져다놓아 소비자들의 구매를 유도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2,30대 여성들이 주로 찾는 올리브영이나 왓슨스에는 젊은 여성들이 흥미를 가질만한 상품들이 잔뜩 모여 있습니다. 저렴한 화장품들은 물론이고 간단한 액세서리나 간식거리까지, 드럭스토어라는 유통업체 분류가 무색할 정도로 젊은 여성들이 찾을만한 상품은 모조리 가져다 놓았지요. 반대로 편의점은 주로 독신 남성들이 즐겨 찾는 유통업체이기 때문에 남성들이 흥미를 가질만한 생활용품이나 전자기기 관련 제품, 술이나 담배, 라면 등이 주요 취급 상품인 것입니다.


심지어는 아무도 생각지 않은 곳에 새로운 방식으로 상품을 유통시켜 니즈를 창출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지금은 글로벌 브랜드가 되어 상품의 콘셉트도 조금씩 바뀌고 있는 유니클로이지만, 초창기 일본에서 사업을 시작할 때 사업의 기본적인 방향은 ‘누구나 살 수 있고 사야 하는, 평범한 디자인의 특별한 옷’이었습니다. 야나이 타다시 유니클로 회장이 주목한 옷은 인간의 ‘의, 식, 주’를 구성하는 생활필수품으로써의 옷이었지요. 속옷이나 양말 등, 일 년 내내 입어야 하는 의류는 물론이고, 여름이 되면 시원한 옷이 필요하고 겨울이 되면 따뜻한 옷이 필요한 것은 사람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옷을 사기 위해서는 ‘마음먹고’ 어딘가로 쇼핑을 하러 나가는 것이 일반적이지요. 야나이 씨는 소비자들이 서점을 둘러보다가 잡지를 사는 것처럼 옷을 구매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를 위해 누구에게나 어울라고 필요한 평범하고 기본적인 디자인의 고품질 옷을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는 것이 유니클로의 기본적인 전략이 되었지요. 이 전략의 화룡점정은 바로 유통 전략이었습니다. 소비자들이 출퇴근 길이나 등하교 길에 부담 없이 매장에 들를 수 있도록 전철역과 지하철역에 매장을 열기 시작한 것입니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 유니클로 매장이 눈에 띄면 ‘그러고 보니 날도 더워졌는데 여름옷을 좀 구경할까’ 하는 마음으로 가볍게 매장에 들러 꽤 괜찮아 보이는 만 원짜리 반팔 티셔츠를 구입하도록 만든 것이지요. 슈퍼에서 음식을 사듯 자연스럽게 옷을 구매할 수 있도록 소비자의 동선에 매장을 위치시키고 적절한 상품을 판매한 것이 유니클로를 글로벌 대기업으로 만든 기초 전략인 것입니다.


스타벅스와 파스타집에 들르듯 유니클로에 들르는 일본입니다. (사진: 도쿄 JR 이치가야 역, i-tempo.com)


이렇듯 유통 전략도 다른 모든 마케팅 전략과 마찬가지로 고객을 생각해야 하는 일입니다. 우리의 상품을 찾을 만한 고객이 언제 어떤 곳에 있을지를 생각하고, 바로 그 시간 그 장소에 우리의 상품을 위치시킬 수 있도록 유통 전략을 짜야하는 것이지요. 단순히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유통 채널을 선택하거나 혹은 개인적인 취향에 따라 점포의 입지를 정하는 것은 지금까지 열심히 쌓아 올린 마케팅 전략을 순식간에 무너뜨릴 수도 있는 위험한 행동입니다. 우리가 정성을 기울여 상품을 만들고, 열심히 공부하여 가격을 책정하고, 머리를 짜내어 멋진 광고 문구를 만들었듯, 소비자의 손에 건네질 수 있는 완벽한 때와 장소를 찾는 것도 그만큼 중요한 일입니다. 마케팅은 언제나 고객, 유통 전략을 고민할 때에도 그 진리는 변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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