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abbin Chang May 20. 2022

하르방 라이언은 왜 제주도에서만 파나?

Place: 판촉 활동과 유통 전략


한정판 상품이라는 것은 언제나 특별합니다. 평소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던 상품마저도 ‘한정판’이라는 말을 들으면 한 번쯤은 기웃거리게 되는 것이 사람의 심리이지요. 특정 기간 혹은 특정 계절에 맞추어 새로운 맛이나 새로운 패키지를 도입하여 소비자의 시선을 끄는 상품들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커피나 음료수, 과자 등은 이러한 한정 상품 전략을 수시로 사용하지요. 혹은 인기 캐릭터나 연예인과 콜라보를 하여 한정 상품을 내놓기도 합니다. 이러한 한정 상품이 나오면 늘 가던 커피숍이나 늘 구매하던 브랜드가 아닌 상품이라도 한번쯤은 구매 하게 되곤 하지요. 그리고 그것을 계기로 일상적으로 구매하던 브랜드를 바꾸어 새로운 브랜드를 계속 사용하게 되기도 합니다. 이렇게 한정판이란 고객들의 마음을 흔들어 사용하지 않던 상품을 시험해 보게 하거나, 늘 구매하던 브랜드에서 새로운 브랜드로 갈아타게 만드는 훌륭한 마케팅 전략입니다.


하지만 같은 한정 상품이라도 언뜻 이해가 가지 않는 한정판이 있습니다. 바로 ‘지역 한정’ 혹은 ‘특정 유통업체 한정’과 같이 기간이 아닌 파는 장소를 한정해 놓은 상품들이지요. 물론 제주도에서 제주 한정 상품을 파는 것 자체는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오히려 제주도 한정 상품을 서울에서 팔고 있다면 그거야 말로 이상한 일이겠지요. 그렇지만 이런 지역 한정판 상품을 비즈니스적인 면에서 생각해보면 이상한 점들이 떠오르기 시작합니다. 우리가 쉽게 접하는 기간 한정 상품들은 보통 그것을 계기로 평소에도 자신들의 브랜드를 계속 구매하게 하려는 전략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역 한정 상품에는 보통 이런 전략이 통하지 않는 경우가 많지요. 하르방 라이언을 제주도에 간 기념으로 사 온다고 한들, 그것을 계기로 카카오 프렌즈 캐릭터를 모으기 시작하는 고객이 많을 것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제주도에서 마신 ‘한라봉 모히또’ 때문에 서울에 돌아와서도 스타벅스의 커피를 찾게 되지는 않겠지요. 평소에 만들지 않는 특별한 상품을 특정 지역에만 유통시키는 것은 비용이 많이 드는 일임에 틀림없습니다. 쓸데없이 ‘제주도 한정’ 같은 말을 붙이지 말고 다른 곳에서도 유통시킨다면 매출을 더욱 높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겠지요. 대체 이 회사들은 무엇을 노리고 기껏 만든 히트 상품을 특정 지역에서만 팔고 있는 것일까요?


제주를 대표하는 라이언이라며 서울에서 판다고 해도 딱히 문제될 것은 없어 보이는 귀여운 친구입니다. (사진: 카카오 프렌즈)


희소하지 않다면 희소하게 만들어라

소비자들의 구매를 결정짓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 중 한 가지는 바로 희소성입니다. 언제나 살 수 있고 아무 때나 살 수 있는 상품이라면 소비자는 그 상품이 절대적으로 필요할 때만 구매하면 됩니다. 아무 때나 살 수 있는, 지금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을 미리 구매하여 쌓아 두려는 소비자는 드물지요. 하지만 희소성이라는 개념이 소비자의 구매과정에 끼어들기 시작하면 소비자는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지금 사는 것이 내일 사는 것보다 저렴하다면 ‘지금’이라는 시간의 희소성으로 인해 소비자는 구매를 앞당기게 되는 것이지요. 장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소비자가 상품을 살 수 있는 곳은 정해져 있고, 소비자는 상품을 구매하러 그곳에 가기 위해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하지요. 이러한 ‘장소’의 희소성으로 인해 적절한 양을 한 번에 구매하는 결정을 내리는 것입니다. 코스트코 같은 곳에 장을 보러 가면 몇 주치 먹을거리를 한 번에 사 오는 것이 바로 이런 예이겠지요. 지역 한정 상품이라는 것은 이런 장소의 희소성을 극적으로 높이는 전략입니다. 지금은 별로 구매할 필요가 없거나 구매하고 싶지 않더라도, 혹시 나중에라도 구매를 하고 싶어진다면 바로 그 장소에 다시 가기 위해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하는 리스크가 따라붙게 되는 것이지요. 따라서 소비자는 보통 때라면 구매하지 않을 열쇠고리 같은 상품이라도 ‘제주’라는 글씨가 붙어 있는 열쇠고리를 구매할 수 있는 장소의 희소성을 감안하여 구매 결정을 내리는 것입니다.


카카오의 하르방 라이언, 혹은 스타벅스의 한라봉 모히또 같은 지역 한정 상품들은 이러한 희소성을 이용함으로써 상품 판매를 촉진하고 있습니다. 평소라면 캐릭터 인형 같은 것에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 사람이라도, 제주도에서만 살 수 있는 하르방 라이언이라면 ‘기념 삼아’ 하나 정도 구매하는 것을 고려하기 시작하겠지요. 서울에서도 널리고 깔린 스타벅스를 제주도까지 와서 뭐하러 가냐고 생각하던 사람들도 제주도 스타벅스에서만 마실 수 있는 ‘한라봉 모히또’라면 반드시 매장에 들르게 되는 것입니다. 심지어 지역 한정 상품은 이렇게 단순한 판촉 전략에만 머물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제한적인 유통 전략을 잘만 이용한다면, 소비자의 심리를 등에 업고 훌륭한 비즈니스를 만들어 내는 것도 가능하지요. ‘삿포로 실버컵’으로 한국에서도 유명한 삿포로 맥주는 ‘삿포로 클래식’이라는, 홋카이도에서만 한정 판매하는 특별한 상품을 가지고 있습니다. 진하면서도 깔끔한 맛으로 많은 맥주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지만, 홋카이도에서만 유통하는 것을 고집하고 있지요. 때문에 일본에서 홋카이도를 방문하는 사람이라면 맥주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사람까지도 식당에서 반드시 ‘삿포로 클래식’을 주문합니다. 다른 어디에서도 마시기 어려운 삿포로 클래식 맥주를 홋카이도에 머무는 동안만이라도 꼭 마셔보려는 것이지요. 평범한 캔맥주에 지나지 않는 상품을 바리바리 싸들고 돌아가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입니다. 때문에 일본 내의 맥주시장 점유율에서는 그다지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는 삿포로 맥주가 홋카이도에서만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점유율을 보여주고 있지요. 만약 삿포로 클래식을 다른 곳에서도 유통시켰더라면, 삿포로 클래식은 홋카이도에 가면 반드시 마셔야 할 맥주가 아닌 그저 꽤 맛있는 평범한 하나의 맥주로 남았을 것입니다.


희소성을 이용하여 가치를 높여라

당연하게도 이렇게 의도적으로 상품의 희소성을 높이는 것에 성공하였다면, 상품의 가치, 즉 가격을 높이는 것도 가능해집니다. 높은 비용을 감수하고 특정 지역에만 유통시키는 상품이지만 그렇기에 더욱 높은 가치를 지닌 상품으로 만들 수도 있는 것이지요. 소비자들은 상품이 지닌 희소성에 대한 가치를 인정하기 때문에 지역 한정 상품이 일반적인 상품과 비교하여 조금 더 높은 가격이라고 하더라도 기꺼이 지불할 의사를 갖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를 이용하여 일반적으로는 시도하기 어려운 고급화 전략을 실행하는 것도 가능하지요. 하이트 맥주의 프리미엄 버전을 보통 마트에 내놓는다면 쉽게 성공하기 어렵겠지만, ‘제주도의 깨끗한 물을 이용해 만든 제주 한정 프리미엄 하이트 맥주’라는 상품이라면 지역 한정의 희소성을 등에 업고 프리미엄 가격을 소비자들에게 쉽게 정당화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제한적인 유통을 통해 상품의 가치를 높이는 전략은 단순히 지역을 특정하는 것만이 아닌 유통 채널을 한정하는 것으로도 얼마든지 달성할 수 있습니다. 마트, 편의점, 백화점, 온라인, 면세점 등 여러 가지 유통 채널 중에서 특정한 유통 채널만을 선택하는 것으로 원하는 타겟 고객을 특정하고 상품의 가치를 높이는 전략이지요. 백화점 식품 매장에 가면 일반적인 마트에서는 구경하기 힘든 고가의 김치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고급 상품을 원하는 고객을 타겟으로 삼아 그들이 자주 찾는 백화점에만 유통시킴으로써 프리미엄 가격을 정당화하는 전략을 구사하는 것이지요. 규모가 큰 브랜드들도 비슷한 전략을 가지고 마트에 유통하는 상품과 백화점에서 유통하는 상품을 구분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한정 채널 라인업을 잘 이용하여 브랜드 전체의 이미지를 고급화시키는 전략으로 연결시키기도 하지요. 그저 단순히 상품을 유통시키는 것이 아니라, 전략적으로 어떠한 유통 채널에서 어떠한 고객을 만나느냐를 선택하여 마케팅 전략 전체를 다시 짤 수도 있는 것입니다.


평범한 캔맥주라도 '홋카이도 한정' 딱지가 붙으면 너도나도 반드시 하나씩 사가는 훌륭한 기념품이 될 수 있습니다.


유통은 우리가 고객을 만나는 접점입니다. 하지만 접점이라는 것이 언제나 다다익선인 것만은 아니지요. 쉽고 편하게 찾아볼 수 있는 상품은 소비자에게 친숙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만큼 식상한 상품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때문에 고객과의 접점을 의도적으로 조절하고 이를 통해 우리 상품의 가치를 전략적으로 높히거나 낮추어야 하지요. 고객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고 공격적으로 우리의 상품을 알릴 필요도 있지만, 때로는 고객이 우리 상품을 찾게 만들고 안달나게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고객이 우리 상품에 더욱 빠져들도록 고객과 밀당을 하는 데에 유통 전략은 빠질 수 없는 중요한 기둥인 것이지요. 웃통을 벗은 울퉁불퉁한 근육질의 모습보다 정장을 입고 타이를 맨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는 모습이 더욱 섹시할 수도 있다는 것을 마케터라면 반드시 기억하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유니클로는 왜 지하철 역에서 옷을 파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