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책에 꿀이 발라져 있다.
엄마가 이런 것도 모른다?
'부우 욱'
나는 학교에 갔다 온 아이의 가방을 열어재꼈다. 외출해 돌아오니 아이는 벌써 책가방을 내팽개치고 내빼고 없는 뒤였다. 아이의 파란색 책가방은 거실 한가운데에서 나뒹굴며 나 좀 봐달라고 애처롭게 쳐다보고 있었다.
'아우, 이 쌍눔의 씨끼가 또 어딜 내빼고 없는 거야.'
나는 씩씩대며 나뒹굴고 있는 책가방을 다시 일으켜 세우다 문득 가방을 열어 보고 싶어졌다. 이제 3학년인 아들 녀석은 학교를 나들이 삼아 다니는지 한 번도 가방 정리를 안 했다. 하교 후 방바닥에서 이리저리 치이던 가방은 아침이 되면 고대로 어깨에 둘러메어져 갈 뿐이었다.
가끔, 한 번씩 가방을 정리 할라 치면 무슨 고물상도 아니고 온갖 잡동사니는 쏟아져 나왔다. 그래서 나는 한 번씩 아들의 가방을 주기적으로 청소를 해주곤 했다. 조용히 있던 가방의 지퍼를 '북' 하며 열었다. 아니나 다를까 과자 부스러기는 기본이고 깎다만 연필심에 가방 바닥은 온통 시커메져 있고 고무지우개의 끈적끈적한 끈끈이까지 가방 안은 그야말로 요지경이었다.
한숨을 푹푹 쉬며 가방을 정리하다 나는 결국 못 볼 시험지를 보고 만 것이다. 그것은 아들이 3학년을 거의 끝마칠 무렵인 11월의 어느 날이었다.
'아니 이게 뭐지?'
그것은 아들의 3학년 수학 수행 평가지였다. 언제 본 건지도 모르는 수행 평가지는 구깃구깃 구겨져 가방 한 귀퉁이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펴 보았다. 그리고 내 눈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수행평가 문제는 나눗셈이었고 문제는 누가 보더라도 굉장히 쉬운 문제였다.
그런데 아들은 6 나누기 3 이 문제를 제외한 모든 문제를 틀린 것이다. 뻘건 작대기가 여기저기 춤을 추듯 흩어져 있었다.
'헉' 나는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기분을 느꼈다. 내년에 4학년 올라가는 녀석이다. 그리고 몇 달 남지도 않았다. 몇 달이나 마나 내일모레면 12월이었다.
아들은 공부하기 싫어했다. 그런 아들을 붙들고 연산이라도 한쪽 풀라치면 책상에 앉히는 것부터가 벌써 지쳤다. 옆집 엄마, 앞집 엄마 만나 수다를 떨다 보니 남자아이들은 나중에 가서도 한다더라, 초등 저학년을 무슨 공부를 시키냐, 책을 많이 읽혀야 한다 등의 말을 많이 들었다.
그리고 하는 소리가 게임만 안 해도 어디냐? 였다. 순진한 나는 그런 소리를 곧이곧대로 믿었고 정말 정말로 3년 내내 1년 열두 달 만화책만 끼고 사는 아이를 그냥 내버려 두었던 것이다. 만화책에 꿀이 발라져 있는 양 아이는 허구헌날 만화책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어느덧, 시간이 지나 밖에서 돌아온 아이는 나에게 싱글벙글 웃으며 아주 해맑게 말했다.
"엄마, 간식 주세요. 배고파요."
한다. 나는 최대한 침착한 목소리로
"너, 어디 갔다 왔어? 책가방도 내팽개치고."
그제야 아이는 슬금슬금 내 눈치를 본다.
"너, 이리 와서 앉아봐."
"엄마 저 배고파요."
"지금 간식이 문제니?"
나는 버럭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아이가 오면 최대한 타이르듯이 말하자 했건만 해맑은 아이의 얼굴을 보자마자 울화통이 터져 미쳐 버릴 것만 같았다. 아이는 서슬 퍼런 엄마의 목소리에 눌려 자리에 앉았다. 나는 수행평가 문제지를 아이에게 들이밀었다.
"아.. 이거? 엄마 선생님이 엄마 싸인 받아오래요."
"이거 언제 시험 본 거야?"
"며칠 됐는데요. 잊어버리고 있었어요."
나는 기가 찼다. 다 틀린 시험지를 보고도 아무렇지 않은 아들을 보니 말문이 막혀 버렸다. 그리고 다짜고짜 나눗셈에 대해 물어보았다.
"너 이거 풀어봐."
아이는 쭈뼛쭈뼛하더니 풀지를 못하는 것이다.
"너 학교에서 나눗셈 안 배웠어?"
"배웠는데요."
"근데 왜 못 풀어?"
"어려워요. 얼마나 어려운데요."
허허허 나는 웃음만 나왔다. 충격이 너무 커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수학만 이렇겠지, 수학만 이래야 하는 거야. 다른 과목은 다 괜찮을 거야. 암 다 괜찮아야 하고말고.'
나는 혼자 되뇌며 울렁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느라 꽤나 진땀을 뺐다.
밤새 잠을 설친 나는 아이를 학교에 보낸 후 나름 친하게 지내는 엄마들에게 전화를 돌렸다. 차마 아이의 수행평가 점수는 숨긴 채 애들 공부는 어떻게 시키는지 캐묻기 시작했다. 선뜻 대답해 주는 엄마는 없고 말만 이리저리 돌리는 것이다. 좋은 정보는 아예 입도 뻥긋하지 않았다. 나는 전화를 그만했다. 나의 무지함을 한탄하며 혹시 몰라 맘 카페에 들어가 보았다. 때마침 도서관에서 '엄마 공부법'이라는 강의가 있다는 글을 보고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신청을 했다. 이것이 나와 아이의 좌충우돌 공부의 시작이며 일명 엄마표 공부의 서막을 여는 일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