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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랏빛 물병이 가장 필요한 이유 세 가지.

세 가지 물병 - 3편

by 글쓰기 하는 토끼


착한 마녀님께.


<'한 모금 마시면 새치가 흑색으로 변하고 두 모금 마시면 머리가 맑아지며 기억력이 되살아 납니다. 세 모금 마시게 되면 치매를 예방하고 이미 걸렸다면 치유가 가능해집니다.'>


마녀님 저는 보랏빛 물병이 꼭 필요하답니다. 왜인 줄 아세요?

첫 번째. 저는 유전적으로 세치가 많아요.

저희 부모님도 흰머리가 많으시죠. 저 또한 젊어서부터 새치가 생겼으니 지금은 얼마나 많겠어요. 염색 후 일주일만 지나도 금세 하얀 머리칼이 올라온답니다.


아이도 아직 초등학생인데 간혹 학교행사에 가게 될 때 할머니 소리 듣게 될까 봐 이만저만 걱정인 게 아니에요.

아시죠? 요즘 엄마들 얼마나 세련되고 이쁜지. 잘 꾸미고 운동도 정말 열심히들 해서 애 셋 낳아도 흠잡을 때가 전혀 없다니까요.


그러니 제가 얼마나 신경 쓰이겠어요? 그리고 성형수술의 발달로 티도 안 날뿐더러 저 집 엄마는 태어났을 때부터 예뻤어 소릴 듣더라고요. 그래서 이 흰머리라도 좀 어떻게 안 될까 해서요. 매번 염색하는 것도 보통일이 아니랍니다.

사실 아예 흰색으로 염색할까 하는 생각도 했었어요. 그럼 염색할 일이 없을 테니까요.


자, 그럼 두 번째.

사실 제가 기억력이라고 하면 30초 전에 생각했던 것도 까먹는 뭐 그런 기억력이랍니다.

냉장고에 뭘 꺼내려 가면 내가 왜 냉장고에 가지? 이런다니까요. 이 정도면 말 다했죠?

핸드폰은 어디에 있는지 찾는 건 예사고요. 이러다 자식얼굴까지 까먹을까 무척 걱정된답니다.

착한 마녀님도 아시겠지만 저희 아이들이 제 나이에 비해 많이 어리잖아요.

세 번째 필요한 이유는요. 제일 중요한 문제예요. 저희 엄마가 치매세요.

그래서 저는 이 물약이 꼭 필요하답니다. 저희 엄마 치매가 완치되면 전 엄마랑 하고 싶은 일이 천지사방 많거든요.

함께 맛있는 것도 먹으러 다니고 싶고, 여행도 가고 싶고, 운동도 모시고 다니고 싶어요. 오손도손 얘기도 많이 하고요.


엄마 얘기가 나오니 왈칵 섧게 눈시울이 하염없이 젖어들어요. 이만치나 수선 피어 들먹이는 눈물바람에 가슴 한쪽이 눈물범벅으로 핑 돌아요.

착한 마녀님, 오늘도 여느 때와 다름없는 일상의 연속이에요.

하지만 이 글을 쓰고 있는 어느 한순간 기분이 몹시 좋았답니다. 제가 보랏빛 물병을 손에 쥐고 있는 모습을 생각하니 뛸뜻이 기쁘지 뭐예요. 정말 정말 보랏빛 물병이 꼭 갖고 싶습니다.

안 주고는 못 배길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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