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토끼의 지혜 Oct 28. 2022

내가 투명인간이 된다면 1 - 투명 핀의 사용처

  여기는 지금 '보이는 동네', '보이지 않는 동네'로 나뉘어져 있다. 나는 보이는 동네에 살고 있는 평범한 엄마이다. 한 정보통에 의하면 보이지 않는 동네에 살고 있는 한 과학자가 순전히 본인의 이익을 위해서 투명인간이 될 수  있는 '투명 핀'을 개발하였다고 한다. 이 핀은 하나, 둘, 셋을 외치고 핀에 달려 있는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순식간에 사람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놀라운 성능을 가지고 있다. 보이는 동네에 사는 내노라 하는 부자들이 앞다투어 이 핀을 사 갔다고 하니, 심히 그 사용처가 궁금하다.


  '보이는 동네'는 말 그대로 사물이 모두 보인다는 말이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그 모습이다. '보이지 않는 동네'는 말 그대로 사물이 모두 투명이다. 사람이고 물건이고 보이는 것이 없다. 처음엔 그 동네에 가면 아무것도 보이는 것이 없어 적응하기가 매우 힘들다.


  그 핀이 불티나게 팔린다는 것은 입소문을 타고 여기저기 퍼졌다. 본디 돈이 되는 일이라면 그것이 무엇이든 사람들이 몰리기 마련이다. 그 핀에 대한 과학자의 기술 노하우는 벌써부터 다른 업자들 손에 어갔다.

  그 핀의 공급이 늘어나면서 가격도 어느 정도 내려갔지만, 그래도 비쌌다. 주요 고객은 단언컨대 엄마들이다. 웃돈을 주고서라도 살려는 엄마들이 있다고 들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엄마들이 공부하는 아이들의 감시용으로 주로 사용하고, 간혹 남편의 뒷조사를 위해서도 사용된다고 한다.


  내가 이 핀을 갖게 된 이유는 그냥 운이 좋아서다. 보이지 않는 동네에 사는 아는 엄마가 물려줄 옷이 있다며 놀러 오라 하여 갔다가 얻게 되었다. 꽁짜로 얻은 것은 아니고 좀 쓰다가 이제 더는 필요 없어져서 중고로 팔려고 내놓은 것이다. 아직 쓸만하다는 말에 홀랑 넘어가 구매하게 되었다.

  나는 그 핀을 요리조리 살펴보며 어디에 쓸 것인지 궁리하기 시작했다. 기한은 3주이다. 3주 동안 그 핀을 가지고 무얼 해야 내 비상금을 모조리 쏟아부은 가치가 있을지 한참을 고민하였다.


  남편을 먼저 생각해 본다. 내 남편은 새벽 5시에 일어나 출근을 한다. 그럼 나도 새벽 5시에 일어나 남편의 뒤를 밟아야 하나??? 아니.... 내가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새벽 5시에 출근하는 남편의 뒤를 밟아??? 왜? 혹시 남편이 딴짓할까 봐서? 흠.... 나는 만약에 내 남편이 진정으로 사랑하는 여자가 생겼다고 하면.. 보내주려고.. 일평생 진정으로 사랑하는 연인을 만난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이냐고...? 살아 있는 동안 진정한 사랑 한번 못해보고 죽는 영혼들이 얼마나 많은데.. 존중해 주어야 할 일이다. 아니 뭐 그렇다고 남편이 날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지만 남편의 마음은 존중해주고 싶다. 마음만.


  자.. 그럼 이제 아이들을 생각해본다. 아이들 학교를 따라가 볼까? 학원을 따라가 볼까? 이것도 나는 자신이 없다. 그 비싼 학원에 가서 멀뚱히 앉아 코만 파고 있을 아이를 나는 그냥 보고 있을 자신이 없다. 내가 핀을 빼는 순간 아이는 그 자리에서 목석이 될 것이고, 나도 화병으로 쓰러질지 모른다. 조금 과장은 들어갔지만 아이와의 관계는 확실히 틀어질 것이 분명했다.


  나는 결정했다. 1등석 비행기를 타고 라운지도 이용한다. 물론 투명인간이기에 비용이 꽁짜이다. 보이는 동네에서는 가능한 일이다. 내가 지불한 투명 핀 값보다 수지맞는 장사이다. 나는 크로아티아에 갈 것이다. 언제고 꼭 가보고 싶은 나라였다.

  또 해보고 싶은 것은 세계 4대 박물관(루브르, 대영, 바티칸, 이집트 박물관)에 가보는 것이다. 3주 동안 다 하지 못할 수도 있는데, 이 박물관들은 사람들로 늘 붐비는 곳이다. 하지만 나는 투명인간이기에 그 많은 사람들을 뒤로 한채 맨 앞에서 관람할 수 있는 특권을 누릴 수 있다. 사람들이 아주 많은 관광지라도 나는 늘 맨 앞에서 가장 잘 보이는 곳에서 여유롭게 여행을 즐길 수 있다. 이런 것이라면 나는 이 투명 핀을 아주 잘 사용했다 생각할 수 있다.


  3주간의 모든 일정이 끝이 났다. 내게 또다시 이 투명 핀을 사용하게 될 기회가 온다면 나는 사양하리라. 사람이란 자고로 오래 살고 싶으면 오히려 모르고 사는 것이 더 현명한 것일 수도 있다. 알고도 모르는 척 넘어가 주는 것이 사람 사는 세상이 아니겠는가?

- 계속 -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