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토끼의 지혜 Oct 31. 2022

내가 투명 인간이 된다면 2  - 나의 결정적인 한순간

  여행에서 돌아온 나는 점점 빛을 잃어가는 투명 핀을 바라보고 있었다. 정말 아쉬웠다. 성능이 다해 빛을 잃어 가고 있는 투명 핀을 물끄러미 바라보니 괜스레 눈물이 났다.

  사실, 남편에게 투명 핀 이야기를 하며 당분간 여행을 가고 싶다고 말을 했을 땐 정말 미안했다. 남편은 두 아이를 혼자 봐야 하는 난감한 상황에서 잠시 고민에 빠지는가 싶더니 흔쾌히 허락을 해주었다. 중고이기는 하나 가격이 만만치 않은 투명 핀을 썩히기는 너무 아깝다고 생각을 한 것이다. 나는 모든 현실을 뒤로한 채 홀로 여행을 다녀왔고, 다녀오고 나니 더 우울함에 빠지게 되었다. 여행은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하지만 다시 현실로 되돌아오니 적응하기가 여간 쉽지 않았다.

   나는 투명 핀을 손위에 올려놓고 잠시 들여다보다가 곧장 화장대 서랍 속 깊은 곳에 넣어 두고는 주방으로 갔다. 큰아이가 올 시간이 다 되어 가고 있었다. 나는 부지런히 간식을 준비했다. 큰 머그잔을 준비하고, 냉장고에서 미숫가루와 우유를 꺼내와 설탕과 얼음을 넣고 달달하고 시원하게 준비를 했다. 약속이라도 한 듯 큰아이가 오는 소리가 들렸다.

  "다녀왔습니다"

  "많이 덥지?"

나는 아이에게 살갑게 말을 걸며 이것저것 물어본다.

  "오늘은 뭐 했어?" 

  "그냥 뭐 매일 똑같죠 뭐.."

아이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고는 만화책 한 권을 골라 옆구리에 끼고는 머그잔을 들고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러다 불현듯 생각이 났는지 엄마를 부른다.

  "엄마, 그 투명 핀 버렸어요?"

  "아니"

  "그럼 그 투명 핀 저 주시면 안 돼요?"

  "되지도 않는 걸 갖다가 뭘 하게?"

  "그냥 갖고 싶어서요"

  "알았어.. 조금 있다가 줄게"

 나는 화장대 서랍 깊은 곳에 넣어둔 투명 핀을 잠시 바라보다 아이에게 주고는 다시 주방으로 돌아와 밀린 설거지를 했다.


  아이는 방금 전 엄마에게 받은 투명 핀을 보고 있었다. 성능이 다해 깜박깜박하고 있는 투명 핀을 보고 있자니 입가에 미소가 번지고 얼굴에 뭔지 모를 이상한 기류가 흘렸다. 아이는 엄마가 타 준 달고 시원한 미숫가루를 먹으며, 잠시 생각에 잠긴다.

  아이는 중학생이다. 공부를 딱히 잘하지는 않지만 나름 성실하고 말썽 부리지 않는 평범한 중학생이다.

엄마가 투명 핀을 사 가지고 오셨을 땐 아이는 내심 기대를 하고 있었다. 엄마가 자신에게 줄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엄마는 훌쩍 여행을 가버렸다. 그것도 혼자서 말이다. 너무 서운하고 배신감에 아이는 며칠을 잠을 설쳤다. 하지만 이미 투명 핀은 저 멀리 가버렸고 아이의 계획도 틀어져 버렸다.


  투명 핀의 소문은 아이들 사이에서 삽시간에 퍼졌다. 누구는 이 투명 핀으로 전교 1등을 했네.. 누구는 괴롭히는 아이를 혼내주었네, 하며 별의별 얘기들이 나돌았다. 아이는 공부에도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자신을 괴롭히는 친구도 없었다.  아이 혼자 좋아하는 같은 반 여자 친구가 한 명 있었다. 투명 핀이 생긴다면 아이는 그 핀으로 그 여자 친구를 졸졸 쫓아다닐 십상이었다. 그 여자 친구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남자 스타일을 좋아하는지 알고 싶었다. 그렇다고 나쁜 마음을 먹고 여자 친구가 민망할 그런 허튼짓은 하지 않을 참이다. 나를 뭘로 보고...

  아이가 이 쓸모 없어진 투명 핀을 달라고 한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보이지 않는 동네에 사는 이름 없는 과학자가 성능이 다 한 핀을 잠깐 쓸 수 있게 만들어 준다는 정보를 얻어서이다. 아이는 용돈을 탈탈 털어서 갔다. 보이지 않는 동네에 가서 투명 핀을 고치고 온 아이는 너무 신이 났다. 그 여자 친구와 하루 종일 같이 있을 생각을 하니 기분이 좋았다. 일단, 학교가 끝나자마자 아이는 투명 핀을 가슴에 달고 하나, 둘, 셋을 외치고 핀에 달려 있는 버튼을 눌렸다. 과학자가 말하길, 언제 보이게 될지는 자기도 장담을 못 하니 요긴하게 잘 쓰라는 당부의 말이 있었다.

  아이는 그 여자 친구 옆에서 같이 걸었다. 그 여자 친구는 학원에 가는 것도 아닌 것 같고 집에 가는 것도 아닌 것 같았다. 도대체 어딜 가는 것일까?

  아이는 조급한 마음과 불안한 마음이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호기심도 있었기에 계속 그 여자 친구를 따라갔다. 마침내 여자 친구가 멈추었다.

  어느 허름한 상가에 들어간 여자 친구는 주변에 이상한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그런데 마침 투명 핀이 깜박깜박하는 것이었다. 성능이 다한 것인지 아이는 투명 핀을 바라보며 어떻게 해야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내가 투명인간이 된다면 1 - 투명 핀의 사용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