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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끼의 지혜 Oct 31. 2022

내가 투명 인간이 된다면 3

요즘 엄마들의 최대 관심사

  나는 아들의 학교 가는 뒷모습을 보며 왠지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투명 핀을 준 것이 영 마음에 걸렸다. 안 그래도 요즘 그 투명 핀 때문에 정부에서도 여간 골칫거리가 아니었다. 범죄에 이용될 뿐만 아니라 미성년자들의 무분별한 사용 탓에 미성년자들은 구입할 수 없게 되었고, 구매자나 사용자나 모두 정부에 사용 신고를 해야 다. 사용범위도 제한적이어서 예전같이 매력적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불법이 성행하여 단속하기가 쉽지 않았고, 그 인기는 아직 사그라들지 않아 엄마들 사이에서도 아주 핫 했다.


  나는 자꾸 뭔가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종전에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옆집 엄마가 투명 핀을 샀노라 자랑하던 것이 생각나 얼른 커피를 한잔 내려 옆집으로 갔다.
  "철수 엄마 잘 있었어? 철수는 학교 잘 갔고?"
  "응, 근데 아침부터 웬일이야?"
  "아니, 나 좀 뭐 부탁할게 하나 있어서..."
  "뭔데 그래?"
 나는 선뜻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말이라도 한번 붙여보자 싶어 입을 떼었다.
  "그 투명 핀 말이야, 나 좀 잠깐 빌려 쓰면 안 될까?"
옆집 엄마는 이게 얼마짜리인데 빌려 달라고 하냐며 황당한 표정으로 나를 보았고, 나는 그런 옆집 엄마의 눈총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졸랐다.    

  

  결국, 빌리는 데 성공한 나는 즉시 아들의 학교에 갔다. 아들의 수업태도는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아들은 학교가 끝나기가 무섭게 투명 핀을 사용했고 나는 아들을 따라갔다. 아들은 같은 반 여자 친구를 따라가고 있었다. 어느 허름한 상가 앞에 잠시 멈춘 후, 들어 간 아들은 투명 핀의 성능이 다했는지 안절부절못하며  쩔쩔매고 있었다. 희미하게 아들의 모습이 드러나고 있었다. 나는 저러다 들키지 하며 있는 힘껏 문을 걷어차 버렸다.
  "쾅"

  그 소리에 놀란 여자 친구와 그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아이들이 금세 뿔뿔이 흩어졌다. 그 틈을 이용해 아들의 뒷목덜미를 잡아끌어 건물 밖으로 끌고 나왔다. 다행히 들키지는 않았다. 나는 아들을 좀 더 안전한 곳으로 데리고 갔다. 나는 나의 투명 핀을 뺀 후 아들의 투명 핀도 뺐다. 아들은 거의 모습이 드러나 있어 투명 핀을 하나마나 한 모습이었다. 나는 아들의 몸에서 투명 핀을 확실히 제거한 후 다시 회수하였다. 아들은 얼굴이 사색이 되어 있었다. 만나면 아주 정신이 번쩍 나게 혼내줄 생각이었지만 벌벌 떠는 아들의 모습을 보니 그러면 안 될 것 같았다. 어디 앉을 곳이 없는지 주변을 둘러보았다. 커피숍이 한 군데 보여 아들을 끌고 커피숍 안으로 들어갔다. 커피숍에 자리를 은 나는 차를 한잔 시키고 아들을 보았다. 아들은 아직도 불안한지 좌불안석이었다. 시킨 차를 아들에게 마시게 한 후 아들이 진정되기를 잠시 기다렸다. 평소 나의 성격대로라면 벌써 고성이 오가고 아들을 윽박 질렸을 것이다. 하지만 무슨 일인지 왠지 모를 차분함이 나짓눌렸다.

  아들이 진정되자 나는 그동안의 일들을 캐물었다.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사실 아들이 좋아한다는 여자 친구는 자기를 좋아한다는 것을 이용해 아들에게 부탁을 한 것이다. 그 부탁 들어주고 싶지 않았던 아들은 내심 고민을 많이 한 듯 보였다. 하지만 결국 부탁을 거절하지 못했다. 다행히 일이 치러지기 전에 나에게 발각되어 천만다행으로 못 하게 되었다. 아들은 내키지 않은 일을 안 하게 되어 안도하는 눈치였다.




  "쾅"
그 소리에 놀란 여자아이는 얼른 그 자리를 피했다. 들키는 날에는 생각보다 골치 아픈 일들이 많이 생긴다. 이럴 경우 십중팔구 빨리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다른 친구들은 알아서 잘 피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 남자아이.. 그 친구가 마음에 걸렸다. 무슨 봉변이나 당하지 않았을까 걱정은 되었지만 내 코가 석자이니 다른 뾰족한 수가 없었다. 한참이 지난 후 여자아이는 그 허름한 상가에 다시 가보았다. 다른 친구들은 모두 되돌아간 것 같고, 그 남자아이는 어떻게 됐는지 보이지 않았다. 오늘은 허탕이다. 여자아이는 몹시 속상했는지 얼굴이 영 좋지 다.
  '전화라도 해볼까?'

여자아이는 남자아이가 걱정이 되어 잠시 생각하다 이내 그만두고 다시 상가를 빠져나갔다.

  여자아이는 그 남학생이 자기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난 뒤 쭉 남학생을 지켜보았다. 나름 성실하고 어리숙한 것이 이 일에 제격인 것 같아 별로 내켜하지 않는 것을 알고도 하게 했다.

  여자아이는 성적이 상위권이다. 아주 잘하지는 못했지만 나름 잘하는 편에 속했고, 여자 친구들과 남자 친구들 둘 다에 인기가 있었다. 여자아이는 다른 학교 상위권 학생들과 비밀리에 기말고사 시험지를 빼돌려 답지를 만들어 팔고 있었다. 그중 한 명이 다른 곳에 그것을 팔아넘기고 있다 하여, 그 어리숙한 남자 친구에게 투명 핀을 이용하여 그 한 명을 찾게 한 것이다. 여자아이는 이제 이것도 못 하게 된 것 같아 아까운 마음과 씁쓸한 마음을 느끼며 되돌아갔다.




  나는 아들을 바라보았다. 공부를 잘하지는 못했지만 아직까지 별 탈 없이 잘 자라 주었던 아들이다. 하마터면 한순간에 범죄자가 될 뻔한 일이 아니던가..
  나는 마음속이 갑갑한 것이 화를 간신히 억누르며 참고 있었다. 아들은 그런 나의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스크림을 하나 더 시켜달래서 먹고 있었다. 하...
  나는 이제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좋을지 고심 중이다. 보기는 보았고 아들에게 얘기도 들었지만 증거가 없었다. 무턱대고 들이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잘못하면 그 자리에 있었던 아들만 곤욕을 치를 수 있었다. 그렇다고 그냥 넘어갈 수 있는 문제도 아니었다. 누구하고 상의를 해보아야 할지 머릿속을 떠올려 본다.

마땅히 생각나는 사람이 없다. 여기저기 소문낼 일도 아니라서 나는 혼자 이 일을 조용히 처리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먼저 익명게시판에 글을 올려 그간의 일을 상세히 밝히고 여러 의견을 들어 보기로 가닥을 잡는다. 나는 앞에 놓여 있는 커피를 홀짝거리며 머릿속에는 아들에게 아무 피해도 입지 않을 판을 짜느라 아주 분주하다. 아무래도 오늘 밤은 다 잔 것 같다. 나는 다시 아들을 지그시 바라본다. 원래 좋아하는 감정은 오래가는 법이고 기억에도 오래 남는 법이다. 추억으로도 기억된다. 지금의 이 두렵고 힘든 마음은 좋아하는 추억과 기억들이 모두 잊혀지게 만들 것이다. 본디 두려워서 못하는 일은 있어도 좋아해서 못하는 일은 없다. 나는 이 일을 아들과 의논하고 상의해서 같이 잘 해결하기로 결정한다. 이제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어느 정도 진정이 되었다. 나는 남은 커피를 마시며 아들을 바라보았다. 아들이 분명 좋은 결정을 내리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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