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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끼의 지혜 Nov 04. 2022

내가 투명인간이 된다면 4 - 주동자는 누구?

  영철이는 학교에 갔다. 투명 핀 일로 엄마랑 아침부터 한바탕 하고 등교하니 영 마음이 좋지 않았다. 맞은편에 앉은 수영이를 힐끗 보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평소와 다를 바가 없었다. 그것을 보니 더욱더 울화통이 터졌다.

  '누구 때문에 이런 일이 생긴 건데' 

영철이는 부아가 치밀어 올라 더 화가 났다.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며 속으로 화를 삭이고 있었다. 쉬는 시간이 되자 아이들이 수영이 주변으로 빙 둘러서 무언가를 속닥이고 있었다.

  "이번에는 안 되는 거야?"

  "어.. 나 바빠서 못했어."

  "그럼 언제 다시 살 수 있어?"

  "그건 나도 잘 모르겠어.. 이제 못할 수도 있을 것 같아."

  "아...... 아쉽다."

간간이 들려오는 얘기들을 들어보니 빼돌린 시험지 얘기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영철이는 당장 선생님을 찾아가 다 얘기해 버릴까 하고 고민하다가

  '이런 일은 신중해야 한다.'

라는 엄마의 말을 되새기며 꾹 참았다. 점심시간이 되었다. 영철이는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대충 해결하고 수영이에게 가 보았다. 수영이는 다른 반 아이들과 어울려 놀고 있었다.

  "잠깐 나 좀 볼래?"

  "왜?"

영철이는 수영이를 쳐다보았다. 조금이라도 미안한 마음이 있었다면 먼저 와서 사과를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사과는커녕 귀찮다는 표정으로 쳐다보는 수영이가 영철이는 어이가 없었다.

  "너 지난번 그 일...."

  "아... 그거.. 가보니깐 너 가고 없던데.. 왜? 무슨 일 있었어?"

정말 기가 찼다. 영철이는 수영이를 쳐다보았다. 있었던 일을 다 말해야 할까 아니면 우리 엄마가 다 아신다는 것을 말해야 할까 고민을 하다 이내 "아니야" 하며 뒤돌아 와 버렸다. 영철이는 수영이의 태도를 보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기분이 확 상한 것이다. 수영이가 조금이라도 사과하는 마음이 있고 뉘우치는 마음이 있었으면 이 일을 없었던 일로 하고 마무리하려고 했었다. 그런데 수영이 태도를 보니 그럴 마음이 싹 가셨다. 영철이는 교실로 돌아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수업 준비를 하고 평상시와 다를 바 없이 행동하였다.


  나는 그 일이 있고 난 뒤 이런저런 소문을 많이 듣고 있었다. 투명 핀을 다시 돌려주려 옆집에 가니 철수 엄마가 반기는 눈치다.

  "혹시 소문 들었어?"

  "어? 무슨 소문?"

  "그 투명 핀 말이야. 시험지를 빼돌려 아이들이 답안지를 팔았다 나 봐... 그래서 학교마다 다 난리가 났다고 하던데.. 아직 못 들었어?"

나도 여기저기 들은 얘기는 많았다. 아는 체를 해야 하나 잠시 고민을 했다.

  "어머? 그런 일이 있었어? 요즘 애들 정말 무섭다.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가 있어?"

나는 금시초문이라는 듯 맞장구를 치며 대답했다.

  "각 학교마다 엄마들이 재시험을 봐야 한다고 난리도 아닌가 봐"

  "재시험 보는 일이 어디 쉬운가? 정말 문제다 문제"

  "우리 철수야 뭐 재시험 봐도 성적이 같을 건 뻔하지만 이번 일로 등수가 3등급이나 올라간 애들도 많아서 엄마들이 항의하고 학교 찾아가고 교육청에 민원 넣고 할 수 있는 건 다하는 모양이더라고. 영철이 엄마 생각은 어때?"

  "어.. 나? 글쎄? 먼저 주동자를 잡아야 하지 않을까?"

  "주동자?"

  "시험지 빼돌리자고 한 애들이 있을 거 아니야?"

  "그것도 지금 경찰이 조사 중인가 봐.. 근데 증거도 잘 나오지도 않고 시험지 산 애들도 쉬쉬하는 통에 아주 애먹고 있다고 하더라고. 그건 그렇고 빌려 간 투명 핀은 어디다 쓸려고 그렇게 급하게 빌려 갔어?"

철수 엄마는 너무 궁금했었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 보았다.

  "으 응.. 남편이 자꾸 비상금을 챙기는 것 같아서 좀 알아보려고 빌렸지."

나는 대충 남편 핑계로 얼버무리며 말했다.

  "아.. 하  난 또 뭐라고.. 하도 급하게 빌려 가길래 무슨 일이 있나 했네 또."

  "나중에 남편이 솔직히 말해서 이번에는 그냥 넘어가기로 했어."

나는 철수 엄마랑 대충 이런저런 수다로 마무리하고 집에 왔다.


  투명 핀에 관련한 시험지 사건은 한두 명이 가담한 것도 아니고 소문이 날 때로 나서 엄마들이 오히려 그 답안지를 못 구해서 안달이었다. 그 답안지를 못 사서 성적을 못 올린 엄마들은 눈에 쌍지 심을 키고 재시험을 보아야 한다고 열을 올리고 있었다. 사정이 이러하니 학교에서나 경찰에서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사건은 진전이 없이 답보상태였다.

  학교에 갔다 온 영철이는 지난번과 사뭇 다른 행보를 보였다. 지난번에는 수영이 일을 없었던 일로 하고 싶다던 아이가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선생님께 사실대로 말하고 경찰서에 가서 진술도 하겠다는 것이다. 나는 다시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사실 우리 애에게 큰 손해는 없었던 일이라 나도 괜히 일 크게 만들고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아이의 입장이 바뀌다 보니 나도 고민이 안될 수가 없었다. 없었던 일로 하면 이러쿵 저렇쿵 신경 쓸 일도 없고 편한 건 사실인데 아이가 저렇게 강경하게 나오니 나도 다시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학교 선생님부터 만나 보아야 하나 아님 경찰서에 가서 진술부터 해야 하나 결정도 못 내리고 갈피도 잡지 못하고 있는데 뜻밖의 사건이 터졌다.


  수영이는 요즘 입이 바짝바짝 탔다. 재미 삼아 시험지를 빼돌려 용돈이나 조금 벌어볼 심산으로 가담을 했다. 그런데 일이 꼬여도 너무 꼬여 버린 것이다. 멤버 중 한 명이 다른 곳에 시험지를 빼돌리다 대금도 못 받고, 계속 시험지를 갖다 주지 않으면 경찰서에 신고하겠다는 협박까지 받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잔뜩 몸을 사리고 있었다. 그런데 영철이까지 와서 이래저래 신경 쓰이게 하는 것이 영 거슬린다. 못내 모른 척 생까기는 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수영이도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엄마에게 사실대로 다 털어놓자니 자신을 철석같이 믿고 있는 엄마에게는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요즘 같아서는 사는 게 사는 것이 아니었다. 왜 그 일에 가담을 했는지 너무 후회스러웠다. 하지만 엎질러진 물이니 빨리 수습을 해야 했다. 다른 애들은 어떤지 모르겠고 일단 나부터 살아야 했다. 수영이는 자신의 행적을 다 지우기로 결심한다. 발각되는 날에는 징계 수준에서 끝날 것 같지가 않았다. 퇴학은 물론이거니와 형사처벌까지 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수영이는 재빨리 보이지 않는 동네의 이름 없는 과학자를 찾아갔다. 

  "아저씨 저 투명 핀에 있었던 제 행적을 좀 지우고 싶은데 어떻게 좀 안 될까요?"

과학자는 수영이를 쳐다보았다. 사실 투명 핀에 있었던 사실들은 다 지울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부작용이 상당해서 거의 해주지 않는 일이다.  그래서 그 부작용을 들은 사람들은 포기하고 돌아가는 경우가 대다수고 아직 한 번도 그 일을 해본 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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