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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끼의 지혜 Nov 06. 2022

내가 투명 인간이 된다면 5 - 술을 마시고 싶은 순간

  과학자는 요즘 참 별일도 다 있다고 생각했다. 시간차를 달리해서 같은 학교 교복을 입은 남학생과 여학생이 찾아왔다. 남학생은 투명 핀에 있었던 일들을 다 까발리고 싶다고 하였고, 여학생은 투명 핀에 있었던 일들을 다 지우고 싶다고 하였다. 과학자는 이 두 가지 일들을 아직까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먼저 투명 핀에 있었던 일을 다 알리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았다. 부작용이 있기는 했지만 아주 미비해서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하지만 보통 이 투명 핀을 사 갈 때는 도덕적인 일에 쓰이는 일이 거의 없어 이런 주문을 하는 경우도 드물었다. 남학생이 찾아와 이런 주문을 할 때 과학자는 그 남학생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평범해 보이고 나쁜 일을 꾸미거나 할 아이는 돼 보이지 않았다. 무슨 영문인지 남학생은 투명 핀에 있었던 일을 다 알려 줄 수 있다는 말을 과학자에게 확인을 한 후 얼마간의 돈을 지불하고 그것을 저장해 갔다.


   과학자는 사실 정부기관에서 일을 하던 과학자였다. 실력도 출중해서 능력을 인정받고 승승장구를 달리던 사람이었다. 헌데 이런 보이지 않는 동네에 몰래 숨어서 투명 핀을 개발하여 이것으로 먹고살고 있는 것이다. 처음에는 재미로 발명했던 물건인데 이게 이렇게 핫한 물건이 될 줄은 자신도 몰랐다. 그 덕에 궁핍하게 지내지 않아도 될 정도의 재산도 모았다. 지금은 너도 나도 이 투명 핀을 만드는 통에 별로 수익은 좋지 않으나 초창기에 제법 많은 돈을 모아 놓아 좀 여유가 있는 편이었다.

  정부기관에서 일을 할 때는 자부심과 자긍심이 대단하였다. 하지만 같은 동료의 시샘과 모략으로 한낱 이름 없는 과학자로 전략하고 만 것이다. 과학자는 여지껏 참으며 그때의 분함과 억울함을 늘 잊지 않고 생각했다. 자신을 모략한 과학자는 장관 후보에 거론될 정도로 아주 잘 나가고 있었다. 이름 없는 과학자는 쓴웃음을 지었다. 자신이 너무 바보 같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잘 나갈 때는 깊은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근심 걱정이 없으니 마냥 현재의 지금이 좋아 앞으로 들이닥칠 미래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잊는다. 더러 주변 사람들이 치켜세워주니 가끔 사기를 당하는 사람도 여럿 보았다. 하지만 자신에게는 그런 일이 생기지 않을 거라 장담하지는 말라. 과학자도 한때는 그 업계에서 이름만 대면 알만한 사람이었다.


  과학자는 남학생이 간 후 잠시 옛날 일을 생각하다 속에서 열불이 올라 와 냉장고에 사다 놓은 소주를 꺼내 안주도 없이 들이 켰다. 사실 이 투명 핀을 만든 것도 그 장관 후보 때문이었다. 그래서 사실을 있는 그대로 다 까발리는 것을 염두에 두고 아주아주 공을 들여 만든 것이다.

  그 장관 후보 주변에는 벌써 이 투명 핀으로 비리를 캐기 위해 여럿 사람을 심어 놓았다. 그 장관 후보가 가장 잘 나갈 때 그것을 써먹으려고 아끼고 있는 중이다. 그래도 마음에 성이 차지 않았다. 그 장관 후보의 비리가 다 까발려져서 구속이 된다 해도 과학자의 마음은 그것만으로 풀리지 않을 것 같았다. 과학자는 소주를 음료수 마시듯 쏟아부었다. 그 남학생이 왔을 땐 분명 남학생이 억울한 일을 당했구나 하는 생각을 하였다. 그래서 비용도 거저다 싶을 만큼만 받고 해 주었다. 그런데 같은 교복을 입은 여학생이 찾아온 것이다. 여학생은 있었던 일을 다 지우고 싶다고 했다. 과학자는 여학생에게 있었던 일을 다 지우게 되면 생기는 부작용에 대해서 설명해 주었다. 여학생은 부작용의 내용을 듣고는 그대로 일어나 가 버렸다. 여학생만 그렇게 가버리는 것은 아니다. 사실 투명 핀에 있었던 일들을 지우고 싶다고 하는 사람들은 종종 찾아오기는 한다. 하지만 이 여학생처럼 그 부작용을 듣고는 모두 조용히 가 버렸다. 그래서 과학자는 한 번도 투명 핀에 있었던 일을 지우는 작업을 해보지 못했다. 이것도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하기 위해 과학자가 고심 끝에 만들어 넣은 것이다. 만에 하나 그 장관 후보가 투명 핀에 있었던 증거들을 모두 없애다고 하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 부작용에 대해 설명하자면, 지식이 모두 없어지는 부작용이다. 나이가 어떻게 되든지 간에 세 살 정도의 지식을 갖게 된다. 그래서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 한다. 얼마나 좋은 아이디어인가? 그 장관 후보처럼 도덕성이 없는 사람의 뇌가 다시 세팅이 되어 세 살 아이가 배워야 할 지식부터 다시 배워야 한다면 정직과 도덕성부터 가르쳐야 하지 않겠는가?

  그 여학생이 가고 난 뒤 과학자는 그 장관 후보가 세 살 정도의 지식을 갖는다고 상상하니 괜히 웃음이 나왔다. 기분이 아까보다 조금 좋아졌다. 과학자는 남은 소주를 모두 들이켜고 방에 들어가 잠을 청했다.


  수영이는 너무 심란했다. 과학자를 찾아가면 뭔가 답이 나올 줄 알았는데 오히려 가슴만 더 답답해졌다. 경찰 조사도 그렇고 소문도 심상치 않아서 자신이 잡히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하지만 약간의 희망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증거를 어디서 찾을 것인가? 아직 증거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래서 경찰도 소환을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수영이는 더 확실히 해 두고 싶어서 과학자를 찾아간 것이다. 근데 이건 날벼락도 유분수지 세 살 아이의 지식이라니.. 그럼 내가 다시 유치원과, 초등학교 공부를 다시 해야 한다는 말인가? 덩치는 중학생인데 어떻게 세 살 아이의 지식부터 다시 공부할 수 있냐 말이다. 수영이는 퇴학과 실형, 세 살 아이의 지식.. 어느 것 하나 마음에 드는 것이 없었다. 마음에 안 들다 뿐인가. 전부 없애버리고 싶었다. 수영이는 아무리 머리를 굴러 보아도 답이 보이지 않았다. 나름 나쁘지 않은 머리 이건만 지금은 머리가 영 돌아가지 않았다. 역시 사람은 '죄를 짓고는 살지 못하는구나' 하며  뼈저리게 후회를 했다. 지금은 퇴학과 실형 이 두 가지 안에서 해답을 구해야 했다.


  나는 식탁에 맥주를 한잔 올려놓고 생각에 잠겼다. 학교에 갔다 온 영철이 얘기를 듣고 나니 그냥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못하는 술을 한잔하고 있었다. 나는 맥주를 벌컥벌컥 마셨다. 시원한 맥주가 목구멍으로 넘어가니 막혔던 속이 조금 뚫리는 기분이었다.

  영철이는 수영이 얘기부터 나에게 말했다. 그 후 선생님을 찾아가 수영이의 일과 그간의 일들을 전부 말씀을 드린 모양이었다. 그런데 선생님은 영철이를 보고 웃으시며 수영이가 뭐가 아쉬워 그런 짓을 하냐며 오히려 영철이를 더 이상한 아이로 보셨다는 것이다. 그런 선생님의 반응에 영철이는 적잖이 충격을 받은 모양이다. 나는 남은 맥주를 모두 들이 킨 후 컴퓨터 앞으로 갔다. 이제 내가 나설 차례이다. 그동안 익명으로 올린 글의 댓글들을 읽어 내려갔다. 이 사건은 대부분 소문으로 퍼질 대로 퍼져 뭐 특별한 내용은 없었다. 사람들의 반응이 궁금해서 나는 종종 글도 올리고 같이 동조도 하면서 정보를 모으고 있었다. 새로운 정보나 중요한 정보는 아직까진 없었다. 쭉 내려가며 보고 있는데 그중에 새로운 글 하나가 눈에 띄었다. 내용은 어느 한 아이가 무슨 일인지 모를 협박을 받고 있고 아무래도 이번 일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는 글이었다. 나는 그 글에 자꾸 신경이 쓰였다. 진짜인지 가짜인지 확인이 안 된 글이지만 협박받고 있다는 그 아이를 만나봐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채팅으로 말을 걸어 보았다. 혹시 그 아이를 어디 가면 만날 수 있는지 물어보았다. 상대방은 다짜고짜 정보에 대한 비용을 요구하였다. 나는 잠시  망설 었다. 이것이 가짜 정보면 돈만 날리는 셈인데 옷 한 벌 덜 산다는 심정으로 비용을 지불했고 그 아이 다니는 학교, 학년, 이름 등을 알아낼 수 있었다. 나는 내일 그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 가서 그 아이를 찾아볼 생각이다.

  다음날 나는 그 아이 학교에 갔다.

  "네가 이소유니?"

  "네? 누구세요?"

  "난 영철이 엄마라고 해"

  ".................."

  "너 혹시 시험지 문제로 협박받고 있는 거 사실이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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