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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끼의 지혜 Feb 12. 2024

이주란 <넌 쉽게 말했지만>


모든 것이 더 조심스러워지고 있다. 영화를 보기로 했으면 영화를 보면 되지. 어떻게 가는지가 이렇게나 중요한 문제인가 모르겠다. 데리러 온다고 했을 때 그냥 그러라고 할 순 없었던 걸까.

그러나 결국엔 지금의 나 자신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당연한 말이었지만 쉽지는 않았다. 내가 왜 이렇게 되었는지부터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 205p



  나는 대학중퇴 후 백수생활을 꽤 오래 했다. 근근이 알바를 전전하며 용돈정도만 벌어 썼다. 사실상 그런 생활이 생각보다 오래 지속되어 과연 나는 취업을 할 수 있을까 하는 회의감 마저 들었다.

  매사에 자신감 부족은 물론이거니와 누가 아는 체만 해도 주눅이 들었다. 나는 이 생활을 청산하려 많은 노력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런 점에서 주인공과 나의 처지는 많은 차이가 난다.  "마지막엔 정말이지 뛰어내리고 싶었다"(224p)라고 말하며 서울에서 처절히 직장생활을 하다 그만두고 엄마 집에 얹혀살게 된 주인공과, 무슨 일이든 취직만 되면 열심히 할 각오가 되어 있었나와의 상황은 매우 다르다.


  주인공의 일상을 담담히 서술해 나가는 장면들이 왠지 서글픈 마음마저 들었다.

  엄마가 회사 가신 후 퇴근 전에 미리 밥을 차려 놓는 든지, 1층 벤치에서 노는 초딩들과 친하게 지내는 일이라든지, 그 옆에서 담배와 술을 하는 청소년들을 모른 척하는 일 등등은 내가 백수 일 때의 생활과 사뭇 다르지 않았다.


  처음 엄마에게 회사를 그만두고 내려와 살겠다 했을 때 석연치 않아 하는 엄마의 반응 때문에 적잖이 상처를 받은 주인공은, 그 길로 택시를 잡아 타고 그 새벽에 서울로 돌아와 펑펑 울었다.

  그 서운함이 얼마나 을까. 나도 취업에 대한 부모님의 무언의 압박을 받으면서 상처를 많이 받았다.


   "눈과 입을 닫고 잠깐잠깐 숨을 멈춘 시간. 나는 이렇게 생겼구나. 구멍이 너무 많은 것 같다. 눈과 입을 계속 열어두고 아무거나 보고 아무 말이나 하며 살았던 것 같아. 그러고 싶진 않았는데." -211p


  우리는 살면서 하고 싶은 일보다 안 하고 싶은 일을 더 많이 하며 살게 될 확률이 매우 높다. 그럴 때마다 '내가 왜 이러고 사나.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하며 혼자 되뇌며 삭힐 때가 많다.

  그럼에도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기 위해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지 깊이 고민해야 다.



*이주란

1984년생. 2012년 [세계의문학] 신인상에 단편소설 <선물> 당선.

소설 <모두 다른 아버지>, <한 사람을 위한 마음>, 김준성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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