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하다. 나는 나이가 들어 꽃이 좋아진 게 아니라, 어릴 적부터 꽃, 나무, 풀잎을 좋아했다. 갈망한다고 해야 하나?
어린 시절 잠시, 수개월간 경기도의 시골 마을에 산 적이 있다. 지금은 그 마을도 도시가 되어있을 테지만, 그때는 아주머니들이 개울가에 빨래를 하러 나올 정도로 예스러운 마을이었다. 성인이 되어 안 사실이지만 사실은 아빠가 운영하던 작은 공장이 망하고 오갈 데가 없어 잠시 머물렀다고 했다. 엄마는 그 시간이 끔찍하게 힘들었다고 했다. 그런데 당시 유치원생이던 언니와 나에게는 마치 천국의 장소처럼 기억되어 있다.
낮은 담벼락마다 자란 봉숭아를 따, 돌멩이로 빻아 손톱에 올려 잎으로 감싸 실로 묶고 여름밤의 시원한 바람에 발끝까지 이불을 덮은 채 자고 일어나면, 봉숭아꽃잎파리들은 이불 위를 뒹굴고 내 손톱은 붉게 물 들었다. 손재주가 많던 동네의 한 언니는 우리 자매를 보자마자 환대해 주었고, 우리 자매에게 토끼풀을 따다가 반지, 팔찌, 왕관도 만들어주었다. 해가 밝으면 나가 놀다가, 크게 넘어져 무릎에 피 흘린 채 엉엉 집에 돌아와도 다음날 아침이면 설레는 마음으로 흙길을 뛰어놀았다.
수개월 후 우리 가족은 아주 아주 깊어 해가 들어오지 않는 도시의 지하 단칸방으로 이사를 왔다. 그 이후 내 무릎은 상처 날 일이 없어 깨끗해졌다. 유치원에 다니지 않던 나는 굳이 그 많은 계단을 올라 땅을 밟으려 하지 않았다. 햇빛이 아닌 형광등 불빛 아래서 색칠공부, 퍼즐맞추기 그리고 신문지 위에 한글 쓰기 연습을 하였다. 그 당시 내가 가장 사랑하는 존재였던 엄마와 작은 공간에서 꼬박 보내던 그 하루, 하루가 싫지는 않았다. 엄마 품에서 나는 그 냄새가 좋았다. 세월이라고 할 만큼의 시간이 흘러 같은 학교를 나온 친구들이 모두 이사를 가고, 언니와 내가 성인이 된 후에도 우리 가족은 그 동네에 살았다.
그리고 나는 자연을 그리워하게 되었다. 날씨가 좋은 날은 예쁜 나무들이 보고 싶어서, 지치고 힘든 날은 나무를 보고 마음에 힘을 얻고 싶어서. 듬성듬성 한 그루씩의 나무도 좋지만, 아무래도 숲을 이룰 만큼 빼곡한 나무들, 고개를 들면 하늘을 가리는 나무 그늘들이 그리워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큰 공원을 찾곤 했다.
아이를 낳고 나는 거의 매일, 하루에도 두세 번씩 아이와 함께 산책을 나갔다. 나는 나의 아이가 하늘을 바라보고, 햇빛을 쐬고, 울퉁불퉁한 흙길을 걷고, 울퉁불퉁 돌부리와 나무뿌리를 밟고, 또 무르팍이 깨지고, 또 낫고, 종아리 끝까지 짱짱한 근육을 기르게 되어 웬만한 상황에선 잘 넘어지지 않는 운동신경을 갖게 되고, 자기 자신이 자연의 한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고, 인생을 살다가 너무 지치는 어느 순간에는 자연을 보고 행복했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다시금 힘을 낼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