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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비 Jul 02. 2023

편안한 사람

꽤 괜찮은 인생메이트_02


우리가 연애를 시작했을 때 우리는 둘 다 시간 여유가 많았던 터라 거의 매일같이 만나 시간을 보냈다. 아침 9시, 10시면 만나서 여기저기 돌아다니거나 카페에 나란히 앉아 각자 할 일을 하곤 했다. 가끔 일정이 있어 만나기 어려운 날에도 남편은 일과를 마치고 잠시 얼굴만 보자며 집 앞에 찾아오곤 했다. 나는 원래 이렇게 ‘매일 만나야 만족하는 연애 유형’의 사람은 아니었다. 일주일에 두어 번이면 충분하다 생각했고, 그 이상이 되면 피로가 쌓여 버거워하곤 했다. 혼자 쉬며 충전하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것이다. 남편 또한 비슷했다. 그는 자신의 다른 일과에 너무 충실했던 나머지, 의도치 않게 연애에 소홀하게 되는 순간이 많았던 것 같다. 그랬던 우리가 이렇게나 매일같이 함께 해도 괜찮았던 이유를 고민해 보았을 때 ‘사랑’이라는 키워드 보다 먼저 떠오른 것은 ‘편안함’이었다.


누군가와 상호작용을 할 때는 반드시 에너지 소모가 있기 마련이다. 혼자 있을 때와 다르게 행동에 제약을 받고, 더불어 물리/정신적으로 다른 자아로부터 계속해서 자극을 받기 때문이다. 우리는 상대의 언어, 즉 그 사람의 말뜻(의도)을 해석해야 한다. 그리고 그에 따라 계속해서 작문을 해야 한다. 과연 이 문장이 상황에 적절한지, 상대가 어떻게 받아들일지를 충분히 고려해 가면서. 그렇다 보니 피로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부분에서 우리가 ‘편하다’고 여기는 사람은, 언어(표현법)가 닮아 있어서 상대의 말을 해석하고 작문하는 과정에(상호작용의 전반에) 비교적 힘을 뺄 수 있는 상대가 아닌가 싶다.


다행히도 우리는 서로를 편하게 여겼다. 그래서 앞으로 더 오랜 시간 함께 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만약 누군가와 매일을 함께 해야 한다면, 딱 이런 사람이면 좋겠다고..




만난 지 3개월쯤 되었을 무렵, 바닷가로 드라이브를 간 날이었다. 데이트의 마지막 일정은 ‘바다가 보이는 주차장 - 차 안에서 바다를 보며 대화하기’였는데, 딱히 계획했다기보다는 그냥 집에 가기 아쉬운 마음이 즉흥적으로 만들어낸 것이었다. 처음에는 가벼운 이야기를 하다가, 얼떨결에 결혼 이야기가 나왔던 것 같다. 자세한 대화의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분명한 것은 ‘청혼’보다는 그냥 ‘의논’에 가까운 분위기였다는 것이다. 조금은 얼떨결에, 우리는 결혼을 추진해 보자는 부드러운 합의에 다다랐다. 로맨틱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낯간지러운 상황을 질색하는 우리에게는 더없이 완벽한 결혼의 시작이었다.


“그런데 우리, 부모님들께는 어떻게 말씀드려야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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