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진 그릇

인간의 실존에 대하여 ⸝ 깨져 있어야만 한다

by RABOMI

부제: 어느 가을

나는 생각보다 자존심이 센 것 같다 속이 시끄러울 때 남들에게 털어놓지 않고 해결이 된 후에 말하기도 하고, 일을 하다가 핀잔을 듣는 것도 어려워한다 나보다 못하다 생각하는 이로부터 조언을 들으면 마음이 더 어렵고 , 나는 모르는 것이 없으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안에서 맴돈다


물론 어릴 때부터 열심히 살았고 시도하는 것은 뭐든 다 해냈다 능력 밖의 일이 더 많았지만 노력파이기 때문에 뭐든 될 때까지 했고 이루어낸 것들이 많다 따라서 그에 따르는 자만심 또는 교만인 것일까 뭐가 되었든 잘 못해도 되고 남들로부터 부족하게 보여도 되는데 안에서는 반발심이 먼저 고개를 쳐든다


물론 매번 그런 것은 아니다 내 안을 휘어잡는 주인이 내 자신이 될 때, 나 자신을 스스로 소유하려는 집착의 힘이 주도권을 잡으면 잡을수록 그 마음은 강해진다


나는 더 강해지지 않아도 되는데 내 존재는 원래부터 연약한 깨진 그릇 그 자체로 태어났고 그것이 나의 실존일 터인데 금그릇 또는 절대 깨지지 않을 그릇이 되려고만 하는 그 욕정이 점점 나를 잃어버리게 만든다


연약한 나 자신을 마주하는 일이 너무나 어려워만 보이는 이때. 그러나 나의 약한 실존 그 자체를 끌어안을 수 있는 품이 되었을 때 나는 그 누구보다 강하여질 것이다 내 존재를 바라봄이 아닌 내가 품고 있는 것이 무언인지를 제대로 바라봐야 한다 그리고 나의 실존 그 자체를 전심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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