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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쿤투어 Aug 31. 2018

『치비 마루코짱』 작가 사쿠라 모모코 별세

라인 메신저를 통해 일본 매체의 기사를 받아보는데 지난 27일(2018.8.27) 저녁 일제히 속보가 떴다.


『치비 마루코짱(ちびまる子ちゃん, 한국에서는 '마루코는 아홉살')』의 작가 사쿠라 모모코(さくらももこ)가 유방암으로 사망(2018.8.15, 향년 53세)했다는 소식이었다.

(출처: 주식회사 사쿠라 프로덕션 홈페이지)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위와 같은 부고가 올라와 있었다. 


국민 작가라는 평가를 받았던 데다가 투병 중이라는 사실도 알려지지 않은 상태에서 너무 이른 죽음을 맞이했기에 충격을 받은 사람도 많았던 것 같다.

(출처: 원피스 홈페이지)

『원피스』를 그린 오다 에이치로(尾田栄一郎)도 트위터와 홈페이지를 통해 추도의 뜻을 표했다.

마루코와 루피가 사이좋게 '만화 고기(マンガ肉)'를 굽는 그림이었다.                                        


『치비 마루코짱』은 만화로도 인기를 끌었지만 1990년 시작된 TV 애니메이션이 30년 가까이 방영(1990.1.7~1992.9.27, 1995.1.8~)되고 있어서 모르는 일본 사람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작품.

사쿠라 모모코는 만화뿐만 아니라 수많은 베스트셀러를 낸 에세이 작가로도 유명했다. 


한국에서도 『마루코는 아홉살』이란 제목으로 방영되었다.

다만 1970년대 일본, 즉  쇼와 시대(히로히토 일왕 재임기, 1926-1989년)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내용이라 우리의 정서와는 거리가 있어서 인기가 많지는 않았던 것 같다.


나 역시 100% 공감하며 만화나 애니를 보지는 않았지만 부고를 접하니 몇몇 추억이 떠올라서 글을 적어본다.

1. 펜팔(pen pal)


요즘도 펜팔이 있나?

지금은 사어(死語) 취급을 받을지 모르겠지만 '나 어렸을 적'에는 펜팔이란 게 있었다.


한마디로 말해 편지를 주고받는 친구인데 모르는 상대라는 게 핵심.

알고 지내던 친구에게 편지를 보내는 게 아니라 (어떤 경로를 통해서이건) 주소를 알게 된 사람과 편지를 주고받으며 친구가 되는 거다.


1990년, 무료했던 청소년기의 나도 일본으로 편지를 띄워봤는데 오사카에 사는 '친구'한테서 답장과 함께 비디오테이프를 받았다.


일본어는 이치, 니, 산도 모르던 시절이니 멍하니 화면을 봤는데 그 테이프 속에 『치비 마루코짱』이 있었다.

(1986년에 시작, 지금까지 방영되는 음악 프로그램 <Music Station>도 있었다.

한번 시작하면 오래도 한다.)


그리고 그해 연말 신문에 '일본 列島(열도) 휩쓰는 마루코장 신드롬'이란 기사가 실렸다.

"엇, 이 만화네!" 싶어서 오려둔 기사를 고이 간직하고 있다가 부고를 듣고 오랜만에 꺼내보았다.


※ 펜팔과는 만나기도 했다.


내가 대학에 들어가던 해 아버지가 일본에서 근무하게 되셔서 여름/겨울 방학 때마다 일본에서 지냈는데 첫 여름에 펜팔이 오사카에서 약혼자와 함께 도쿄로 놀러 왔다.

나는 일본어를 못하고, 펜팔은 영어를 못하니 아버지가 통역을 해주셨지만 대화다운 대화를 하지는 못했다.


고교 졸업 후 동네 우체국에 취직을 했다던데 몇 년 더 연락을 주고받다가 끊겨 버렸다.

요즘처럼 페이스북으로 짧게 안부를 전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진지하게 편지를 써 내려가기에는 서로 나이도 들고 바빠지기도 한 탓이겠다.

2. 왜색


지금이야 일본 영화, 만화, 드라마, 음악을 쉽게 접할 수 있고 유튜브, SNS를 통해 실시간으로 소식을 듣지만 1990년대까지는 그렇지 않았다.


일본 대중문화가 개방된 건 불과 20년 전인, 1998년.

그나마도 제한적이었다.


그전에는?

해적판이다.

일본 문화는 왜색이라 하여 금기시되던 시절이었으니.


엑스 재팬(정확히는 X를 거쳐 X Japan)이나 시즈카 쿠도(쿠도 시즈카가 아니다. 시즈카 쿠도다.) 정도는 들어봤지만 정식 음반일리 만무했고.

만화도 도라에몽이 동짜몽으로 둔갑하고 도쿄는 서울, 오사카는 부산, 교토는 경주, 요코하마는 인천으로 바뀌던 때였다.


잡지 「보물섬」 이후로 뜸하던 만화에 대한 열정이 되살아난 건 대학에 들어간 후.

『슬램덩크』, 『드래곤볼』을 필두로 만화책을 사기 시작했는데 일본어를 배우고 일본을 왔다 갔다 하게 된 상황과 맞물려 만화를 넘어 음악, 게임, 애니, 영화까지 관심이 뻗어나갔다.


중고등학교 시절에 시작했다면 성인이 된 후 지겨워지거나 유치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다 큰 다음 시작한 취미라서인지 질리지도 않고 20여 년 빠져들어 있다.

늦게 배운 도둑질 운운하는데 맞는 말이다.

덕분에 만화책도 CD도 1,000권/장을 바라보니, 돈이 얼마냐.


『치비 마루코짱』도 물론 샀다.

단행본 14권과 번외 편을 포함하여 15권을 가지고 있는데 이번에야 단행본이 16권까지 나왔다는 걸 알게 되었다.

20년 동안 전(全) 14권이라 믿고 살았는데.

나머지 두 권마저 사고 싶다.

사러 가야겠다.

3. 원서


원서를 읽는 이유야 한둘이 아니겠지만 우선 (드물겠으나) 외국어가 더 편한 경우가 있겠다.

외국 생활이 길었던 한 선배는 움베르토 에코의 『푸코의 진자』를 읽다가 이해가 안 돼서 영어로 읽고, 그래도 이해가 안 돼서 독일어로 읽었다고 했다.

(그런가 하면 역시 외국 생활이 길었던 다른 선배는 술 취하면 영어로 말하기 시작했는데 필름이 끊길 정도로 취하면 프랑스어로 얘기했다.

태어나서 처음 배운 말이 프랑스였으니 어찌 보면 당연하다.)


외국어 공부를 하기 위해 원서와 씨름하는 경우도 있고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원어로 읽고 싶어서 원서를 집어 드는 경우도 있다.

학창 시절에 같은 반에 일본 만화 보겠다고, 일본 음악 듣겠다고 일본어 공부하는 친구 없었는지?


나도 가뭄에 콩 나듯 원서를 읽는데 위에서 언급한 이유와는 좀 다르다.

내 경우는 번역본이 나와 있지 않은 책을 주로 읽으니 어찌 보면 '실용적'인 이유다.


일본 작가의 번역본이 기준이라면 무라카미 하루키, 오쿠다 히데오, 미야베 미유키, 히가시노 게이고 순이겠지만 원서가 기준이라면 사쿠라 모모코가 1등이다.

수십 권의 에세이를 냈고 밀리언 셀러도 여러 권인데 한국어 번역본은 찾아보기 힘들어서다.

일본에서만큼 만화가 인기 있지도 않고 작가의 지명도도 높지 않은 탓일 듯.


번역본이 나와있지 않은 덕분에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많이 읽은 작가가 되었다.

심각하지 않은 내용인지라 상대적으로 쉽게 읽히고 무엇보다 재미있다.


※ 번역본이 많지 않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원서를 많이 읽게 된 작가로는 제임스 패터슨(James Patterson)이 있다.

가장 많이 읽은 영어 작가는 로알드 달(Roald Dahl)이지만.


※ 위 사진은 누나가 소장하고 있는 사쿠라 모모코의 책이다.

북오프나 알라딘에 내다 판 책도 꽤 될 텐데 여전히 많다.

4. 시미즈(清水)


작가의 고향은 시즈오카(静岡)현 시미즈시.

(지금은 시즈오카시 시미즈구)


시미즈에는 2010년에 일 때문에 잠깐 다녀온 적이 있다.

도쿄에서 신칸센 타고 갔다가 시미즈 역 근처에서 저녁 먹고 다시 돌아온 거라 사진도 신칸센 내부를 찍은 한 장이 전부.

언젠가 여유 있게 돌아보는 날이 오기를.


치비 마루코짱 랜드(ちびまる子ちゃんランド)에도 가고 싶다.

(9월까지는 글을 남기거나 헌화를 할 수도 있다고 한다.)

당장은 아니겠지만.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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