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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망나비 May 09. 2021

사장은 직원들과 즐겁게 여행할 수 있는가

네, 아니오

개업한지 만으로 2년이 넘었다. 당분간 문을 닫지는 않겠다는 확신이 자리를 잡고 나니 2년간 함께 한 직원들과 컴퍼니 트립을 다녀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봐야 정규직으로 일하는 직원들은 나 포함 6명 뿐이다. 영국인과 아일랜드인 그리고 세 명의 베트남 직원.


4일 동안의 공휴일 중 2박 3일을 여행으로 쓰기로 직원들과 합의를 보았다. 원하지 않는 이는 두고 가려고 했는데 다 따라 나서겠다고 했다. 행선지는 호치민에서 30분 비행기 타면 되는 작은 섬, 푸 쿠옥으로 정했다. 호텔을 예약하고 비행기표를 예매했다. 다행히 호텔에서는 연휴 고객을 타깃으로 프로모션을 진행중이어서 반값으로 예약할 수 있었다. 베트남 직원 중에는 난생 처음 비행기를 타는 친구도 있었다. 다들 며칠 전부터 들떠서 생기가 발랄했다. 수영복은 꼭 챙겨오라고 단단히 일러 두었다.


여행을 떠나기 전 나 혼자서 원칙을 세웠다.


경비를 넉넉히 챙기기. 내가 직원이었던 시절을 돌이켜보았다. 나의 사장들의, 행사때마다 돈을 아끼라던 잔소리가 얼마나 아니꼬왔던가. 어쩌다 한 번 하는 등산, 운동회인데 좀 시원하게 쓰면 안되겠니. 다들 활개를 펴고 놀게 좀 더 너그러우면 안되는 거냐, 라고 속으로 외쳤었다. 그래서 경비 넉넉히 챙겨 우리 끼리 정한 총무에게 넘겼다. 알아서 하라고.


생색내지 않기. 역시 과거의 내 보스들을 떠올렸다. 여행에 의미를 부여하고, 경비가 얼마나 들었는지 브리핑하고, 감사하다는 소리를 원했더랬다. 나는 그러지 말자고 다짐했다.  사실 지난 송년 파티 때 돌아가면서 한마디씩 하자고 해 놓고서는 크게 후회했다. 으레 그런 자리에서는 다들 사장에게 공치사하기 마련인데 도대체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싶었다. 다음부터는 그냥 먹고 놀고 노래하고 말련다.


여행은 재미있었다. 어떤 점이 재미있었는가 하면... 즐겁게 환호성을 지르는 직원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내 관점에서 그렇다는 거다. 뒤에서 다른 얘기를 할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사진속의 그들은 즐거워 보인다. 수영복을 10년만에 다시 입어 본 직원, 수영장 물이라곤 초등학생 때 이후 아예 안들어가본 직원, 이제 막 물에 뜨는 법을 배우는 직원들을 데리고 해변에 붙어있는 리조트 풀에서 물놀이를 했다. 아이들처럼 깔깔거리고 노는 이들을 보고 있으니 여행 잘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6시에 나를 풀로 불러내어 수영을 가르쳐달라는 직원이 내심 귀찮기도 했지만 정말 재밌는가 보다고 이해했다. 그렇게 물놀이 하고 호치민에 돌아와서는 다들 수영 배우겠다고 자기들끼리 풀을 알아보고 난리다.


한가지 맘에 걸리는 게 있기는 하다. 푸 쿠옥의 야시장에 가고 싶어했었는데 내가 나서지 않자 그냥 말더라. 가서 사진을 찍어야 페이스북이나 인스타에 자랑을 할 텐데 많이 아쉬웠을 것 같다. 내가 안가도 지들끼리 가면 됐을텐데 돈쓰기 싫어 안가는 것 같았다. 사장이 같이 가야 돈을 덜 쓰게 되는 법이다. 근데 안가길 잘했다. 비싸기만 하고 음식도 별로인 관광객들만 붐비는 복잡한 거리였다. 3년전에 가 본 내 기억에 의한 그렇다는 거다. 다음에 니네 식구들이랑 다시 오면 가. 그러고 말았다.


시간이 쌓이니 이들에게 애착이 생긴다. 배짱 안맞으면 언젠가 떠날 사람들이지만 같이 있는 동안 잘 살자고 다짐한다. 그렇다고 서로에게 좋은 소리만 하게 되는 건 아니다. 감정이 팽팽하게 맞부딛칠 때도 있고, 속이 뻔히 보이는 거짓말을 마주 할 때도 있다. 사장이 거짓말에 민감하다는 걸 알게 된 이후로 그들이 거짓말을 끊은 건지 더 완벽히 속이는 건지에 대해선 알 방법이 없다. 다행히 지금의 나는, 사람이 바뀌지 않는다는 점을 잘 알게 되었다. 그래서 굳이 누군가를 바꾸려고 노력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해해 버리는 편이 정신건강에도 좋고 효과적이기도 하다. 이해마저도 안되면 헤어진다. 그 역시 정신건강에도 좋고 효과적이다. 시간의 힘은 훌륭하다. 2년여가 지나니 서로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만 남았다. 그러니 같이 여행을 가도 큰 문제 안만들고 돌아올 수 있었다. 어떻든 컴퍼니 트립의 백미는 자기 돈 안써다도 된다는 점이니 나름대로 즐거움이 있지 않았을까 짐작해본다.


돌아오는 길에 다음 여행의 행선지는 서울이나 부산이었으면 하고 바랬다. 그게 몇 년후가 될는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무엇보다 이들은 한국을 정말 좋아한다. 혼자서 유투브로 한국어를 배우기도 한다. 한국 드라마도 한국 가수들도 나보다 훨씬 많이 안다. 그들이 서울 풍경을 보고 뭐라고 할는지 궁금하다. 유일하게 한국말이 가능한 내가 시티 가이드를 도맡게 될터다. 그런 날이 올까?

두가지가 해결되어야 한다. 이 구멍가게가 문 닫지 않고 계속 성장해야 하고, 코로나가 종식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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